팔레스타인 우상 숭배와 점술

우상숭배

우상 숭배의 금지

예날 가나안 사람들은 특별히 우상 숭배가 심했으며 많은 신을 섬겼다.그러나 히브리 사람들은 처음부터 우상을 금했다.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난 것도 조상의 신들을 히해 (수24:2) 좋은 땅을 찿아 나간 것이다. 야곱의 떠남도 역시 이상한 신들을 버리기 위함이었다.(창35:1-4) 라반과 라헬은 조상 숭배를 포함한 가정의 신을 섬겼다. 모세의 십계명을 위시하여 성경의 도처에 그 금령과 경계가 기록되어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은 여러 가지 우상을 만들고 이에 예배했다. 계속적으로 거듭 우상 숭배를 비난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우상 섬긴는 자들이 그치지 않는 것을 암시한다. 우상 숭배의 배척은 여러 가지 법전,곧 신명기 법전(신12:3,16:22),언약 법전 (출20:23),성결 법전 (레26:1,26,30)에 포함되어 있다.또 히브리 예언자들도 5세기간을 두고 우상 숭배를 비난했다.

그들이 섬겼던 우상은 바알,아스다롯,밀곰,그모스,다곤,데리빔,신 외에도 돌(레26:1),금(사40:18-2),은(렘10:9),나무(사35:1-7)를 섬기기도 했다.고고학적 발굴로 뼈,진흙,상아,쇠로 만든 우상도 찿았다.우상은 부어 만든 것,아로새긴 것등이 있었다. 그들은 또한 우상 앞에서 음식을 놓고 향불을 피웠으며 우상에 입도 맞추었다.또한 행렬할 때 모시고 다니기도 하고 신당에 모셔서 보호하기도 한 기록을 찿아볼 수 있다.

이제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몇몇 신들을 살펴 보도록 하자.

남신과 바알

바알이란 뜻은 주인,소유자의 뜻인데 베니게인,블레셋인,에돔인들이 섬기던 신이다.그 곁에는 또한 항상 여신되는 아스다롯이 있었으며 바알을 예배할 때는 동물을 잡아 놓고 향을 피우고 그 우상에게 입맞추었다.(왕상18:23,왕하10:21,렘7:9)

바알은 농업 신으로 목초와 결실을 돌보며,우양과 농가의 생식을 돕는데 가을에 죽었다가. 봄에 다시 살아나 모든 생식을 주장하다고 믿었다. 광야에서 유목민으로 엄격한 종교 생활을 해 온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오던 때로 왕국의 멸망까지 이 바알숭배에 영향을 받은 바 컸다, 그리하여 열심있는 여호와 예배자인 사울도 그 아들 이름을 에스바알이라 했으며 그밖에도 므립바알,엘바알 같은 이름들이 많았다.(대상8:33,8:17,9:40)

여호와 예배와 바알 숭배가 혼선을 일으키자 선지자들이 바알 숭배에 반기를 들고 백성들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바알 숭배는 이스라엘의 도덕을 타락시키고 종교를 더럽혔다. 사사기 2장11절에서 14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여실히 그려 주고 있다. 히브리 왕들도 여호와와 바알을 겸해서 섬기려 했으며, 그 중에서도 두로 왕도 바알의 딸,아합의 아내 이세벨과 그 딸 아달랴와 므낫세는 그 대표적 인물들이었다.이세벨이 후원한 바알의 선지자들과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와의 갈멜산 승부는 이스라엘 종교 역사상 회기적 사실이었다.(대하33:,왕상18:)

그러나 바알 숭배 의식은 이스라엘 종교 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그 농사 절기들에 더욱 그러했다. 누룩없는 떡 절기,추수 절기,곡식을 모아 들이느 절기,특히 유월절에 더욱 여향이 컸다.

여신 아스다롯

아스다롯 여신을 성경에서는 시돈 사람의 신이라고 했으나(왕상11:5) 이것은 앗수리아와 바벨론에서 오래 전부터 이시달이라는 이름으로 숭배했던 것으로써 블레셋 사람도 이것을 숭배했다.그러므로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갑옷과 투구를 아스다롯 신전에 둔 일이 있다.(삼상31:10)

이 신도 일찍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숭배되었다.솔로몬왕은 이것을 예루살렘에 수입해서 높게 단을 쌓고 이것을 예배하는 것을 허락했다. (삿2:13,10:6,삼상7:3-4,12:10,왕상 11:5) 앗수리아 왕 아슬나질바는 이시달에게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한 말 가운데 “제신의 여왕이며 우주의 여신되시는 이시며 기도를 들으시는 신”이라고 했고 고대 신화적인 이야기에 의하면 이시달은 생명과 풍요의 여신이라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성욕의 여신이 되고 말았다.남신 바알과 짝을 맞추며 바알이 일신이므로 아스다롯을 월신으로 생각했다. 그 예배 의식은 바알 예배와는 별 차이 없이 음란했다.

화신 밀곰

밀곰은 암몬 족속이 섬기던 신이다 (왕상11:5) 이 우상은 구리로 만든 것인데 그 형상은 머리는 소의 머리이며 몸은 사람의 형체를 띠고 있었다. 또 두 손을 펴고 바로 서 있는 것과 단 위에 앉은 것과 두 가지가 있는데 특별히 그 단의 속을 비게 만들어서 희생 재물을 바칠 때 그 속에다 맹열히 불을 짚혀 그 우상과 단이 빨갛게 달면 자녀를 그 우상의 손위에 올려 놓아 태운다. 이 때는 북을 마구 두둘겨 그 자녀의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게 했다. (왕하16:3,21:6,17:17) 이스라엘 사람은 암몬 사람에게 유혹되어서 이와 같은 우상을 흰놈 골짜기에 세워놓고 그의 자녀를 희생의 재물로 바치므로 이로 인해서 여화와가 크게 진로하시므로 벌을 받은 적이 있었다.(겔20:26,31,암5:25-26)
밀곰이란 말은 “말크,멜렉”에서 나왔는데 “왕””왕자”의 뜻이다.

전쟁의 신 그모스

그모스느 모압의 태양신 또는 전쟁의 신이다.모압 사람은 그 자녀라 하여 몰렉에게와 같이 아이들을 제품로 드렸다.모압왕은 전쟁 때에 그모스를 위해 제단을 쌓고 그의 맏아들을 번제물로 바치고 그의 노를 화해하려고 했다.모압 비문에 “이스라엘이 모압을 정복한 것은 그모스가 분노한 까닭”이라고 했기 때문이다.솔로몬 왕도 그모스를 위해 예루살렘에 그의 신당을 지었는데 약 3세기를 지나 요시야 왕이 이것을 헐어 버렸다.(왕상11:7,왕하23:13)

해신과 다곤

다곤이란 말은 생선이라는 뜻의 “달”과 곡식이라는 뜻의 “다간”과 두 가지와 관련 지워서 해석을 할 수 있다. 북쪽 수리아의 “라스 샴라”에서 발굴된 기록에 보면 바알신의 아버지라 하여 베니게 사람들이 숭배한 농사의 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설명을 보면 분명히 생선과 관련되어 있었다.그 우상의 윗 부분은 사람의 형상이고 아랫 부분은 생선의 형상을 갖추고 있었으며 블레셋 사람이 제사하는 우상이다. 구약에서는 다곤 신당을 중심한 세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첫째,사손이 블레셋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집의 기둥 두 개를 잡아 당겨 이것을 쓸어 뜨리고 3천명을 제품로 바칠 때였다.둘째,블레셋이 법궤를 아스돋에 있는 다곤 신당에 안치하자 다곤이 땅에 넘어진 일이다.(삼상5:1) 세째는 길보아 산에서 전사한 사울의 머리를 벧산의 다곤 신당에 단 것 (대상10:10)들이다.

가정의 신 데라빔

데라빔은 집안의 신으로서 애기 벤 여인들이 행운을 바라거나 가족을 지켜 준다고 믿었다.사람 모양을 한 것인데 실물보다 큰 것도 있었고 작은 입상이 많았다.라헬이 야곱과 함께 하란을 떠날 때 아버지 집에서 몰래 가지고 갔다는 드라빔도 (창31:19) 이런 것이었을 듯하다.데라빔을 가지고 다닌 것과 여호와를 섬기는 것과는 아무 충돌도 없다고 생각했다.데라빔은 사무엘 이후에도 오래 계속되었으며 호세아는 데라빔에 대해 무관심했으나 스가랴는 데라빔의 미신적 사용을 비난했다.요시야왕은 그 불법을 선언했지만 데라빔은 포로 이후에 다시 성행하게 되었다.

점술

율법의 태도

모세의 율법은 마술,점 따위의 모든 행위를 엄중히 벌했다.레위기 20장 27절에는 마술사는 남녀를 물론하고 죽이라고 했으며 중세기까지 그것을 실행했다. 신명기 18장 9절에서 1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 받지 말 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사는 자나 복술가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지언자나 접신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이러한 율법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에는 이 금령을 깨뜨리고 많은 자들이 이러한 데에 의지했던 행적이 역역히 보인다. 여호와는 인생으로 부터 너무 먼 곳에 계셔서 접근하기 어려우니 하나님만은 못해도 사람보다는 유력하고 접근하기 쉬운 귀신들의 도움을 구한 것이다. 이제 몇가지의 점술을 골라 설명해 보겠다.

각종 점술

점쟁이

그들은 길일과 흉일을 알리는 자이다. 어떤 때에는 구름을 보고 판정하는 일도 있었다.소위 거짖 예언자들이란 대개가 점쟁이들이었다.

무당

이들이 쓰는 방법은 잔을 가지고 점을 치는 것이다.애굽에서는 이러한 일이 성행했으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 잔에 물을 부어서 여기에 비치는 광선의 반사 여부로 점을 치는 방법
  • 잔에 녹은 납을 부어 그대로 굳어진 것을 가지고 그 형에 따라서 신의 뜻을 해석하는 방버
  • 잔을 휘두른 후에 물거품의 위치와 대소에 의해서 점을 치는 방법
  • 잔에 물을 부어 넣고 그 가운데에 문자를 새긴 금은 보석을 넣어 주문을 외운 후 그 집어 넣은 것에 새긴 표를 보고 이것으로 알려고 하는 죽은 사람의 소리를 듣고 알 수 있다는 방법
  • 잔의 한 부분을 주시하다가 수면 상태에 들어간 때에 처음으로 이상스러운 것을 보는 방법 등이 있다. 요셉의 잔은 그와 같은 일을 위해 쓰던 것이다. (창44:5)

진언하는 자

그는 반지를 가지고 요술하는 자이다.요술은 모세 때에 바로 앞에 나와서 이상스런 일을 하던 사람 같은 자들이다.

접신하는 자

영을 매개로 하는 것으로서 심령학과 같은 것이다. 사울왕이 그 만년에 접신한 여인으로 하여금 사무엘의 영을 불러 내게 한 일이 사무엘서에 기록되어 있다. (삼상28:7-14)

초혼자

이러한 사람도 접신하는 자와 비슷하다. 어떤 때는 죽은 자의 골을 사용하고 또는 시체에다 뜨거운 피를 붓는 일도 있었다.

박수

박사들을 단수로 쓰면 박수가 된다. 헤로도터스에 의하면 박수 즉 메자이는 메대 나라의 6계급 중의 하나였다.그들은 인도의 바라문같이 메대-바사의 승려 계급이었다. 메자이 사상에는 세 가지 특색이 있다. 즉 점성학,꿈 해몽,마술인데 점성학과 꿈 해몽은 예수 탄생 기사에 나타났다.
꿈은 그들의 갈 길을 인도했으며(마2:12)별과 꿈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큰 것이었다.

점성술

옛날부터 바벨론,갈데아에서 행해지던 것인데 천체의 운행으로써 장래의 일을 점치는 것이다.점성가는 우주의 영원한 것으로서 하나님은 이것을 통솔하시고 천체의 운행은 제신의 협의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항상 천체 운행에 주의 하고 그 운행을 계산했다. 천체를 관찰함으로써 지진,폭풍,비,기온,혜성,일식,월식에 대한 것을 예언하고 천변에 의해 국왁와 국민에게 닥칠 길흉도 예언했다. 그들은 계산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하늘을 12로 구분했다. 소위 12궁이 이것이다. 그들은 궁 안의 별의 위치에 따라서 계산을 하고 이것으로 인간의 생사 등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이사야서에 “하늘을 살피는 자”(사47:13)라는 것은 “하늘을 나누는자 ” 곧 점성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들을 갈데아에서 한 계급을 두고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전승하는 풍습이 있었다. 바사 나라에 있어서는 왕의 즉위 시일을 정하는 것은 점성가의 직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였을 때 그를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이라는 자들은 이 계급의 사람인 듯하다.

화살로 점치는 법

화살에 각각 그 공격할 도시의 이름을 쓰고 이것을 흔들어서 한 개씩 빼내어 그 기록된 도시의 이름을 보고 그 뽑아낸 순서를 따라 도시를 공격하는 제비 뽑기이다. 일설에는 화살을 공중에 소아 그 떨어지는 방향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라비아인도 대사건을 계획할 때에 먼저 화살로 점치는 습관이 있었다. 이것은 세 개나 네 개의 화살을 가지고 그 중의 한 개에는 “주가 나에게 명하신다”라고 쓰고 한 개에는 “주가 나에게 금하신다.”라고 쓰고 한 개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고 이것을 한데 흔든 다음에 만일 첫번째 것을 뽑으면 그 사업에 착수하고 둘째 것을 뽑으면 이것을 그만 두고 셋째 것을 뽑으면 다시 뽑는 습관이 있다.

간으로 점치는 법

새나 짐승을 잡고 그 간의 모양 여하로 길흉을 점치는 것인데 옛날 바벨론에서 성행되었던 습관이다.가령 간이 크면 영화 성공의 징조라고 하고 간이 작으면 실패의 징조라고 했다. 성경에 “바벨론 왕이 갈랫길 곧 두 길 머리에 서서 점을 치되 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의 간을 살펴서”라고 하는 귀절이 나오는데 이것은 화살로 점치는 법과 간으로 점치는 것의 본보기를 보여 준다.

지팡이로 점치는 법

갈대아로부터 시작해서 바사,앗수리아,아라비아인들이 행했던 것인데 지팡이는 대개 버드나무로써 만들었고 그 길이와 수를 서로 다르게 했다. 그 지팡이의 길이를 손으로 재어보고 이것으로써 앞 일을 결정했다. 수는 3,5,7,9와 같은 기수에 한했다. 지팡이를 일정한 거리에 던지고 그 위에 나온 측면 여하에 의해 사건을 결정하는 일도 있었다.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호4:12)라 고 한 데서 지팡이로 점치는 것을 볼 수 있다.

*팔레스틴 풍습 이모 저모 윤두혁 목사 편저 발췌

팔레스타인 교육과 음악

팔레스타인가정

교육

가정교육

유대인은 교육을 중요시 하는 백성이었다. 그것은 신명기에 기록된 “오늘날 내가 네 집에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다.(신6:4-9) 그들의 교육은 태교에서부터 시작된다. 삼손이 잉태되었을 때 천사는 그 어머니에게 “너는 잉태한 아들을 낳기 전에는 조심하여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말라. 또한 모든 더러운 것을 먹지 말라”라는 주의 시킨 일을 찾아 볼 수 있다. 교육의 관해서는 성경에 얼마든지 예증이 있지만 다음과 같은 말은 그들이 얼마나 교육에 열심했던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말하기를 “우리들이 피땀을 흘리며 토지를 경작하는 것은 그 목적이 자녀 교육에 있다”라 하고 또 어느 랍비의 말에 “어미가 자녀의 교육을 게을리 하는 것은 자녀를 장사하는 것과 다름없다.”라 하였고, 또 다른 랍비의 말에는 “어렸을 때에 배우는 것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이것은 마치 백지에 먹으로써 문자를 쓰는 것 같고 노년에 이르러 배우는 것은 휴지에 글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 방침은 물론 가정 교육에서부터 출발했다.교육을 시키는 자는 부모로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딸에게 율법을 가르치던 것이 그들의 관습이다.잠언에 ”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라”한 것은 부모의 자녀 교육을 두고 한 말이다. (잠1:8) 도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내 명령을 지키라.그리하면 살리라.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그가 너를 지키리라”라고 한 것은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말한 것이다. 모세에게 젖을 먹이면서 그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법을 가르쳤고, 디모데는 어릴 때 부터 독실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성경을 공부했다. 그리고 공부는 그의 암기식으로 자녀에게 가르쳤고 또 구전으로 넘겨 준 것이다. 공부한 내용을 요약해 보면, 첫째가 유대교의 기본 신조인 쉐마였었다. 그래서 회당에서 예배 드릴 때는 우선 쉐마를 외움으로써 시작되었다. 쉐마는 듣는다라는 뜻의 히브리어의 명령형 동사로서 ‘오’ 들으라,라는 말이며 쉐마는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의 ‘이스라엘아 들으라,주 너희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시니… 라는 내용이다. 둘째 배워야 하는 것은 할렐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찬양하하라는 뜻의 말로서 하나님께 올리는 찬양으로 가득찬 시편 113편에서 118편이 내용이다. 셋째로 배워야 하는 것은 창세기 1장에서 8장까지의 깨끗한 것이 무엇이며 깨끗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율법의 내용이다. 네째로는 레위기 1장에서 8장 까지의 깨끗한 것이 무엇이며 깨끗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는 율법의 내용이다.
그리고 다섯째로는 두루마리의 성경 내용을 공부하는 방법이었다. 또한 앞에서 조금 다룬 바있는 쉐마를 작은 통에 기록하여 팔과 이마에 붙여 말씀을 외웠고, 내용을 테필림이라 했다. 또 메주자로 문설주에 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다.

학교교육

예나 지금이나 팔레스틴 농민의 집은 대개 담으로 두른 앞 마당에 가축이 산다. 집에 들어서면 마루가 두 층으로 되었는데 무릎 찰 만큼 높은 층에는 가족들이 살며 음식을 만들어 먹고,낮은 층에서는 밤이나 비가 올 때 가축이 먹고 산다. 그래서 한 지붕 밑에서 가족들과 짐승들이 의좋게 산다. 예언자 나단이 다윗 앞에 나와서 말한 중에 한 가난한 자가 그 암얌을 아이들롸 같이 한 방에서 기른다고 했다.(삼하13:3) 물론 이러한 집은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다. 여유가 있는 집은 보통 마다을 중심으로 해서 그 주위에 집을 지었다. 그러므로 가옥은 바깥으로 향하기 보다는 안으로 향했다는 것이 적당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가옥이라도 외부는 보잘 것 없고 몇 개의 창문만 보일 뿐이다. 들어가는 입구가 대한히 침침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가옥이 양편으로 잇달아 있는 거리를 지나가면서 보면 마치 성벽과 성벽 사이를 걸어가는 것 같다.

회당교육

문은 정면 중앙에 있다. 어떤 때는 훌륭한 장식을 하는 일도 있지만 대개는 볼만한 것이 없다. 이는 히브리인들이 그런 장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잠17:19).문은 네부분, 곧 문짝,문지방,인방,문설주로 되었다.문을 나무로 짰으며,쇠나 가죽으로 만든 돌쩌귀에 달려 열리고 닫혔다. 대개 한 짝 문에 쇠로 장식을 했으나 성전문들 만은 금으로 장식했으며,두 짝이었다.문지방은 대개 돌이었으며 특별히 신성하게 생각했다. 문설주는 돌로도 했으나 대개 나무요,신명기 6:4-9,11:13-21을 양피지에 써서 나무나 쇠로 만든 메주자라고 하는 작은 함이 문설주에 달려 있었다. 문에서 가운데 마당에 이르는 통로는 밖에서 들여다 보이지 않도록 칸막이를 세우는 일도 있다. 방은 마당을 중심으로 있기 때문에 어는 방이든지 마당을 향하여 문이 나 있다. 마당은 보통 한 개이지만 그 집의 크고 작은 데 따라 2개나 3개가 있는 집도 있다. 상류 층의 집 마당은 대리석으로 깔고 우물을 파고 화단을 만들어 화려하게 꾸미는 일도 있으며 연못을 만들기도 한다. 또 마당에는 2층과 지붕에 올라가는 층층대가 설치되어 있고 밖에 층층대를 두어 지붕에 올라가게 된 집은 하류층 사회에서 볼 수 있다.

유대의 학자

가옥의 건축 재료는 장소에 따라 일정치 않지만 팔레스틴 지방은 돌이 풍부하므로 대개는 석조 건물이다. 석재가 없는 곳에서는 벽돌이나 진흙을 사용했다. 목재는 팔레스틴에 잘 나지 않으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사용하지 않도록 힘썼다. 그러므로 노송나무로 천정을 짓는 일은 사치한 장식의 하나였다. 예레미야는 이것 때문에 유대 왕을 견책한 일이 있다. 학개서에는 ”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라 고 하였다. 집을 건축하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기초를 튼튼히 할 필요가 있으므로 반석과 같이 다졌다.(마7:24-25)

직업교육

창은 유리도 끼지 않고 종이도 바르지 않고 창살로만 만든 것인데 자유로 옆으로 밀어서 열고 닫고 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통풍과 햇빛을 받기에 편리하도록 된 것이다. 혹 어떤 것은 창이 외부로 튀어 나와서 길쪽에 달리는 것도 있다.창살은 틈이 조금 나게 열면 안에 있는 사람은 밖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으나 자기는 바깥 사람들에게 보이지 안흔다. 다윗왕이 법궤를 맞으면서 기뻐 뛸 대 미갈은 이것을 창살 틈으로 엿보았다고 하였다. 또 창으로 사람을 달아 내린 일이 가끔 기록되어 있다. 창에 앉은 일도 있었으몰 실수하여 그 곳에서 떨어진 사람도 있었다.

필기술

용 지

유대인은 의복을 만드는데 여러가지 재료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모직,무명,삼베들이다. 이외에 후대에 이르러 명주까지 사용했다.그러나 두 가지 이상의 실로 짠 옷감은 율법으로 엄금하였다. 곧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했다. 이것은 다만 단일한 것은 선이고 혼합 한 것은 악이라는 그들의 사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그들의 옷은 세 가지가 있는데 내의와 그 위에 입는 옷과 상의이다.

필기 도구

내의는 직접 살에 닿는 것으로써 가장 단순한 형은 소매가 없고 그 길이가 무릎까지 혹은 발 뒤꿈치까지 닿게 되어 있다. 이것보다 좋은 것은 소매도 있고 길이도 발뒤꿈치에 닿게 된 것이다. 남녀가 같이 이것을 입었다. 그러나 모양은 다르다. 율법에는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고 했다.(신22:5) 더울 때에는 하류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은 다만 이 내의만 입었지만 귀족들은 실내에 있을 대만 이렇게 입고 외출할 때는 반드시 겉옷을 입었다. 성경에는 내의만 입는 자를 벗은 몸이라고 했으나 이것은 완전히 벌거벗은 몸은 아니다. 마가복음 겟세마네가 기록된 부분에 ”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라고 한 기사도 이 풍속을 따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막14:51-52)

성경의 복사

이것은 내의 위에 입는 것인데 성경에는 여러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그냥 옷 또는 속옷,겉옷이라 한 곳도 있다. 그러나 모두 하의를 가리킨 것이다.예수가 입고 있던 하의는 “호지않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통으로 짠 것이다”그러므로 군사들은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고 했다. 이것은 머리와 두 팔이 나갈 곳을 내고 아래를 터 놓은 것이다.

음악

유대인의 음악 취미

유대인의 주식은 떡이다. 떡을 제조 판매하는 자를 구약에서는 보지 못하겠으나 신약에서는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가지시고 5천명을 먹이신 사실 중에서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하신 말이든지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옵소서”우리가 가서 200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는 말을 보아서 떡 판매자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요6:5,마6:35-36) 떡을 만드는 데는 먼저 밀이나 다른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느 집이든지 한 개나 두개의 절구를 두고 가루를 쓸 일이 있을 때마다 절구에다가 곡식을 빻는다.가루를 미리 만들어 놓지는 않았다. 그래서 종일토록 절구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솔로몬의 잠언 중에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 하느니라”하는 말이 있다. (잠27″22) 절구 외에 가루를 곱게 하는 기구는 맷돌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것과 같은 것인데 돌을 매우 단단한 것으로 사용했다. 그 돌의 크기는 보통 직경은 40cm 정도이고 두께는 12cm가량이다. 그러나 나귀의 힘으로 돌리는 연자 맷돌도 있었다. 맷돌을 가는 것은 부인의 일거리였으나 삼손과 같이 포로된 남자를 시켜 맷돌을 갈게 한 일도 있었다. 맷돌을 갈 때는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하는데 둘이 할 때는 마주 앉아서 한다. (삿16:21) 앞에 말한 것과 같이 유대에는 매일 맷돌 가는 소리가 들리고 절구질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활동의 소리를 뜻하는 것이다. 즉 번영의 소리를 말하며 이 소리가 나지 않을 때면 패망으로 향하는 징조로 알았다.(렘25:10,전12:4) 맷돌은 이와 같이 매일 쓰는 것이므로 히브리인은 이것을 전당 잡는 것을 급하였다. 즉 “맷돌을 전당 잡지 말지니 이는 그 생명을 전당 잡음이니라.”하였다. (신24:6) 가루를 개는 데는 판을 사용했다. 이것은 나무로 만든 것과 가죽으로 만든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가죽으로 만든 것은 쓰지 않을 때는 접을 수 있도록 간편하게 만들었으므로 이것을 귀한 물건으로 여겼다. 또 여행할 때에는 가루와 떡을 넣는 그릇으로도 썼다. 가루는 물이나 양유를 넣고 손으로 갠다. 또 떡에는 누룩을 넣은 것가 넣지 않은 것이 있다.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은 손쉽게 될 수 있다.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한 떡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이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두껍게도 만들고 얇게도 해서 화로에 굽는다. 누룩을 넣은 것은 얇게 자르지 않고 그냥 뜯어 먹는 것이 보통이다. 또 떡에는 밀로 만든 것과 보리로 만든 것이 있는데 밀떡을 좋은 것이라고 여겼다. 예수가 5천명을 먹이실 때 그 아이가 갖고 있던 떡은 보리떡이었다.(창18:6,요6:9) 떡 외에 주식으로는 육식을 했다. 그러나 새나 가축을 일반적으로 먹기는 했지만 많이 먹는 것은 아니다. 생선은 호숫가에 사는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먹었지만 물고기 날 만한 강이 적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음식물이 되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먹는 데 대해서는 엄밀한 제한이 있었다. 즉 짐승은 소와 양 같은 새김질하는 것으로 또 발굽이 둘로 갈라진 것이라야 되고 생선은 비늘과 지느러미가 갖추어진 것을 한했다. 새는 수리와 매같은 육식 조류와 참새와 까마귀같은 잡식 조류를 금했다. 벌레는 메뚜기와 같이 날고 뛰는 긴 다리가 있는 것에 한했다. 그러므로 토끼와 돼지,뱀장어,낙지,문어 같은 것은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었다.고기는 찌거나 구워서 먹고 말려서 먹기도 했다. 산양이나 양을 그 어미의 젖으로 찌든지 복든지 하는 일은 율법으로써 엄금하였다.(민11:32,신14:21) 메뚜기를 먹는 일은 상류사회에서는 거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으로 사용했다. 세례 요한이 메뚜기를 먹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찌고 혹은 기름에 복고 가루를 내어 과자를 만들고 또 소금에 저려두고 혹은 말려서 오래도록 보존하고 때에 따라서 음식에 넣어 먹었다.

부식

세수

식탁

청결례

교제와 여행

인사

유대인과 오락

여행

객사=나그네의 집

*팔레스틴 풍습 이모 저모 윤두혁 목사 편저 발췌

팔레스타인 가정의 생활

팔레스타인가정

주택

동굴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동굴이 많이 있다. 특히 사해에는 가는 곳마다 굴이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주하기 전부터 있던 것으로써 자연적인 것과 혈거민 호리인이 인공적으로 만든 것도 있다. 또한 적의 약탈을 피하기 위해서나 다른 일시적인 필요에 따라 동굴을 만든 일도 있다. 이러한 동굴은 유랑인과 도적들의 은거소가 되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에도 동굴을 은거지로 하고 있던 기록이 남아 있다.(삿6:2,삼상22:1,삼상24:3)

가옥

예나 지금이나 팔레스틴 농민의 집은 대개 담으로 두른 앞 마당에 가축이 산다. 집에 들어서면 마루가 두 층으로 되었는데 무릎 찰 만큼 높은 층에는 가족들이 살며 음식을 만들어 먹고,낮은 층에서는 밤이나 비가 올 때 가축이 먹고 산다. 그래서 한 지붕 밑에서 가족들과 짐승들이 의좋게 산다. 예언자 나단이 다윗 앞에 나와서 말한 중에 한 가난한 자가 그 암얌을 아이들롸 같이 한 방에서 기른다고 했다.(삼하13:3) 물론 이러한 집은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다. 여유가 있는 집은 보통 마다을 중심으로 해서 그 주위에 집을 지었다. 그러므로 가옥은 바깥으로 향하기 보다는 안으로 향했다는 것이 적당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가옥이라도 외부는 보잘 것 없고 몇 개의 창문만 보일 뿐이다. 들어가는 입구가 대한히 침침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가옥이 양편으로 잇달아 있는 거리를 지나가면서 보면 마치 성벽과 성벽 사이를 걸어가는 것 같다.

문과 마당

문은 정면 중앙에 있다. 어떤 때는 훌륭한 장식을 하는 일도 있지만 대개는 볼만한 것이 없다. 이는 히브리인들이 그런 장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잠17:19).문은 네부분, 곧 문짝,문지방,인방,문설주로 되었다.문을 나무로 짰으며,쇠나 가죽으로 만든 돌쩌귀에 달려 열리고 닫혔다. 대개 한 짝 문에 쇠로 장식을 했으나 성전문들 만은 금으로 장식했으며,두 짝이었다.문지방은 대개 돌이었으며 특별히 신성하게 생각했다. 문설주는 돌로도 했으나 대개 나무요,신명기 6:4-9,11:13-21을 양피지에 써서 나무나 쇠로 만든 메주자라고 하는 작은 함이 문설주에 달려 있었다. 문에서 가운데 마당에 이르는 통로는 밖에서 들여다 보이지 않도록 칸막이를 세우는 일도 있다. 방은 마당을 중심으로 있기 때문에 어는 방이든지 마당을 향하여 문이 나 있다. 마당은 보통 한 개이지만 그 집의 크고 작은 데 따라 2개나 3개가 있는 집도 있다. 상류 층의 집 마당은 대리석으로 깔고 우물을 파고 화단을 만들어 화려하게 꾸미는 일도 있으며 연못을 만들기도 한다. 또 마당에는 2층과 지붕에 올라가는 층층대가 설치되어 있고 밖에 층층대를 두어 지붕에 올라가게 된 집은 하류층 사회에서 볼 수 있다.

건축 재료와 기초

가옥의 건축 재료는 장소에 따라 일정치 않지만 팔레스틴 지방은 돌이 풍부하므로 대개는 석조 건물이다. 석재가 없는 곳에서는 벽돌이나 진흙을 사용했다. 목재는 팔레스틴에 잘 나지 않으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사용하지 않도록 힘썼다. 그러므로 노송나무로 천정을 짓는 일은 사치한 장식의 하나였다. 예레미야는 이것 때문에 유대 왕을 견책한 일이 있다. 학개서에는 ”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라 고 하였다. 집을 건축하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기초를 튼튼히 할 필요가 있으므로 반석과 같이 다졌다.(마7:24-25)

창의 구조

창은 유리도 끼지 않고 종이도 바르지 않고 창살로만 만든 것인데 자유로 옆으로 밀어서 열고 닫고 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통풍과 햇빛을 받기에 편리하도록 된 것이다. 혹 어떤 것은 창이 외부로 튀어 나와서 길쪽에 달리는 것도 있다.창살은 틈이 조금 나게 열면 안에 있는 사람은 밖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으나 자기는 바깥 사람들에게 보이지 안흔다. 다윗왕이 법궤를 맞으면서 기뻐 뛸 대 미갈은 이것을 창살 틈으로 엿보았다고 하였다. 또 창으로 사람을 달아 내린 일이 가끔 기록되어 있다. 창에 앉은 일도 있었으몰 실수하여 그 곳에서 떨어진 사람도 있었다.

지붕의 구조

지붕은 보통 평면으로 되었는데 이것을 만들려면 먼저 견고한 목재를 늘어놓고 그 위에 석회석을 깔고 다시 흙을 덮고 그 후에 이것을 다져서 비가 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혹 그 흙 위에 풀이 자라는 수도 있기 때문에 지붕에 산양이 올라가서 풀을 먹는 진기한 모습도 있다 (시129:6) 어려운 사람의 집은 종려나무의 잎이나 밀짚 또는 풀로써 지붕을 만들로 그 위에 흙을 얹는다. 그런데 다가 지붕이 평면이므로 비가 새는 것이 예사였다. 잠언에 “다투는 부녀는 비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고 하였고,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라고 하였다. 이렇게 집에 물이 새는 것이 귀찮은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잠19:13,27:15)

지붕의 이용

그러면 왜 지붕을 평면으로 짓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지붕을 여러 가지 용도로 쓰기 위해서이다. 여름철에는 사람들이 지붕에서 낮잠을 잔다. 또 친교의 장소로도 쓴다. 고요히 묵상하기 위해서도 좋은 장소이다. 다윗은 또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그 곳에 올라갔다. 베드로는 기도하기 위해 올라간 일이 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도 옥상에서 하신듯 하다. 느헤미야 시대에는 사람들이 옥상에 나무가지로 초막을 치고 장막절을 지킨 일이 있다. 기생라합은 두 사람의 히브리 정탐꾼을 널어 놓은 삼대에 숨겼다는 것이 있다. 또 곡물과 같은 것들을 볕에 쬐여서 말리는 습관도 있다. 또는 무슨 이상한 일이 일었났을 때나 화재가 있을 때 구경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가기도 한다. 다윗과 압살놈의 전쟁 때 파숫군이 망대로 사용한 일이 있다. 옥상은 또한 선언의 장소로도 사용하였다. 예수가 그의 제자들을 향해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하신 말씀은 이러한 풍습에서 온 명령이다. 요사이도 지방 관리가 옥상에서 명령을 내리는 일이 있다. 또한 옥상에 탑 모양으로 방을 만들어서 더위를 피하도록 사용한 일이 있다. 열왕기에 수넴 여인이 예언자 엘리사를 위해 지은 “작은 방”이 이러한 방이었다. (왕하4:10) 지붕은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쓰이는 곳이므로 옥상에 오르는 사람의 위험을 막기 위해 난간을 만들라는 한 가지 율법이 생기게 되었다. 즉 “네가 새 집을 건축할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가 흐른 죄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고 한 것이 이것이다.(신22:8)

화로와 연통

집에는 연통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다만 옥상에 작은 구멍을 뚫어 놓은 것 뿐이다. 이러한 시설도 없은 집에는 방 한가운데나 한모퉁이를 우묵하게 파고 철판을 깔고 불을 담는 것이 보통이다. 연료로서는 나무,지푸라기,가축의 마른 똥(겔4:15) 또는을 사용했다.

실내의 좌석

방의 필요한 곳에 방석을 두어 이것을 깔고 앉게 하였으며, 부잣집은 이것을 대리석으로 만들고 여러가지 모양으로 장식하였다.낮에는 좌석으로 쓰고 밤에는 그 위에 침대를 놓은다. 이것은 왕족이나 귀족의 일이고 보통으로는 침대를 못쓰고 돗자리 같은 것을 깔고 배개를 배고 자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로는 가장 간편하다고 하겠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자리와 베개만 가지고 오면 몇명이라도 잘 수가 있다. 까는 것이나 양탄자는 상류 사회에서만 사용하였다.또한 어떤 때에는 의자를 사용한 일이 있었지만 보통으로는 방석에 앉는 것이 이들이 풍습이다.

등잔과 촛대

등잔은 기름을 부어 쓰는 것인데 부자들의 것은 금,은,놋쇠,청동과 같은 금속으로 만든 비싼 것 이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흙으로 구워서 만든 도자기 같은 것을 사용했다. 그 모양은 가지가지어서 예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지만 대개 우리나라에서 쓰던 접시보다 좀 오목한 것을 썼다. 그 가운데에 기름을 붙고 등잔에 심지를 넣고 불을 켰다. 이것을 상 위에 놓으면 방안을 두루 밝힐 수 없으므로 높은 대, 즉 촛대를 만들어서 그 위에 놓았다. 촛대는 보통 나무나 놋쇠와 같은 재료로 만들었지만 금이나 은으로 만든 것도 있다. 또 방안이 항상 어둡기 때문에 작은 등잔을 밤낮으로 켜 놓았다.

의복과 장신구

옷 감

유대인은 의복을 만드는데 여러가지 재료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모직,무명,삼베들이다. 이외에 후대에 이르러 명주까지 사용했다.그러나 두 가지 이상의 실로 짠 옷감은 율법으로 엄금하였다. 곧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했다. 이것은 다만 단일한 것은 선이고 혼합 한 것은 악이라는 그들의 사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그들의 옷은 세 가지가 있는데 내의와 그 위에 입는 옷과 상의이다.

내의

내의는 직접 살에 닿는 것으로써 가장 단순한 형은 소매가 없고 그 길이가 무릎까지 혹은 발 뒤꿈치까지 닿게 되어 있다. 이것보다 좋은 것은 소매도 있고 길이도 발뒤꿈치에 닿게 된 것이다. 남녀가 같이 이것을 입었다. 그러나 모양은 다르다. 율법에는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고 했다.(신22:5) 더울 때에는 하류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은 다만 이 내의만 입었지만 귀족들은 실내에 있을 대만 이렇게 입고 외출할 때는 반드시 겉옷을 입었다. 성경에는 내의만 입는 자를 벗은 몸이라고 했으나 이것은 완전히 벌거벗은 몸은 아니다. 마가복음 겟세마네가 기록된 부분에 ”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라고 한 기사도 이 풍속을 따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막14:51-52)

하의

이것은 내의 위에 입는 것인데 성경에는 여러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그냥 옷 또는 속옷,겉옷이라 한 곳도 있다. 그러나 모두 하의를 가리킨 것이다.예수가 입고 있던 하의는 “호지않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통으로 짠 것이다”그러므로 군사들은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고 했다. 이것은 머리와 두 팔이 나갈 곳을 내고 아래를 터 놓은 것이다.

허리띠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허리 띠인네 남녀가 같이 이것을 썼다. 그 재료는 가죽,무명,삼베 등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소박한 것은 가죽 띠이다.선지자들은 이것을 띠고 있었다. 훌륭한 것은 삼베로 만든 것으로 금이라든가 보석의 장식이 있었다. 예레미야서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 말라”라든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띠가 사람의 허리에 있는 것 같이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집과 유다 모든 집을 내게 있게 하고 저로 하여금 내 백성도 되고 내 이름도 되고 내 명예도 되고 내 영화도 되리라”고 한 것을 보아 이들이 띠를 얼마나 중하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다. (렘13:1-13) 제사상의 복장에 대한 기록 중에 띠에 대해서는 “금실,은실,자실,홍실과 삼베를 가지고 이것을 지으라”고 했다. 어떤 때는 값비싼 대로 예물을 하는 풍습도 있었다. 띠를 허리에 매는 것은 노동의 준비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활발한 노동을 할 때 또는 달음질할 때는 띠를 단단히 매지 않으면 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러므로 띠를 띠는 것은 힘,준비,경계 등의 기호가 된 것이다. (욥38:3,눅12:35-37,엡6:14,벧전1:14)

상의

세째로 입는 옷이 상의인데 4방 아홉자가 되는 천이다.옷단 네 귀에 푸른색 노끈을 달고 그 아래에 술을 달았다. 이것을 다는 이유는 성경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이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쫓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 말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술을 크게 하는 것은 종교적 열심을 표시하는 기호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이것이 외식화하고 말아서 예수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 상의는 낮에는 입고 밤에는 침구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율법은 채권자가 채무자의 상의를 야간에 전당잡아 두는 것을 금했다. 즉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 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신24:13,출22:26-27)

경문

신구약의 과도기로부터 그들은 출애굽기 13장 6절,신명기 6장 4절 ~9절,11장과 18절을 문자 그대로 지키기 위해 경문을 만들어서 이것을 매었다. 그들은 4매의 양피지에 출애굽기 13:2-10,11-17,신명기 6:4-9,11:13-22의 4귀절을 써서 적게 접어서 4개의 작은 통에 넣고 또 이 네 개의 아주 작은 통을 두꺼운 가죽에 붙여서 이것을 이마 가운데에 놓고 실로 잡아 매었다. 또 이것을 한 개의 통에 넣어서 사두개파는 손목에 붙이고 바리새파는 신명기 6장 6절의 말씀을 쫓으려고 될 수 있는 대로 심장 가까운 곳을 택해 왼쪽 팔에 이 통을 실로 매어서 소매로 덮었다. 이 통은 깨끗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고 이것을 검은 색으로 바른 것이다. 탈굼이라는 경전이나 랍비의 저술에 의하면 유대인은 이것을 테피림 즉 “기도”라고 했다. 이것은 기도하기 위해 붙이기 때문이다. 일반 유대인은 다만 예배 때만 이것을 붙였지만 바리새파는 항상 붙이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종교적 열심을 표시하기 위해 경문을 넓게 하고 가죽의 폭을 넓게 해서 이마에 잡아 매었었다.

신 발

신은 가죽이나 나무로 만들로 끈으로 발에 맨다. 그러므로 이것은 다만 발다닥만을 보호할 뿐이다. 그러나 앗수리아인의 신은 발바닥 뿐만 아니라 그 옆이나 발뒤꿈치를 싸고 또는 장식까지 하였다. 히브리 귀부인들도 이와 같은 것을 신은 듯하아. 아가서에 “그대의 여자들이여 너희들의 발은 신 가운데 있어서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한 것은 이것을 가리킨 것이다. 버선과 양말은 이 나라에서 신는 일이 없다. 사람이 집에 들어가면 반드시 신을 벗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종은 주인의 신들메를 풀고 물을 가지고 발을 씻는 의무를 가졌다. 여러 종이 있는 경우에는 가장 낮은 종이 이것을 하는 예가 있었으므로 들메를 푸는 일, 발을 씻어 주는 일은 겸손의 상징이 된 것이다. 또는 신을 벗는 것은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성전에서 그 직무를 행할 때는 반드시 신을 벗고 발을 씻었다. 신에 관한 기이한 풍습은 형이 아들을 두지 못하고 죽은 때에 동생은 형의 처를 취할 의무가 있다. 만일 동생이 이것을 원치 않을 경우에는 형의 처는 이것을 마음 장로에게 일러서 동생을 설득하여 주기를 신청한다. 그의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하기를 ” 그 형의 집을 세우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대접할 것이라”고 한다. (룻 4:7-8) 그리고 그 동생의 이름을 ” 신 벗긴 집”이라 부른다.(신25:5-10) 또한 신을 집어 던지는 것은 그를 낮게 보고 또는 천한 일을 맡기는 뜻을 표하는 것으로 여겼다. (시60:7-8)

머리와 수염

머리와 수염은 애굽인들과 같이 깍지 않고 길게 기르며 이것을 꾸민다. 그 뿐만 아니라 수염을 깍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로 인정했다. 그러나 마음에 근심이 있을 때는 그 수염을 꾸미지 않았다. 또 다른 사람이 수염에 손대는 것도 매우 싫어했다. 그러나 다만 친한 벗과 입맞출 때는 특별히 예외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인장과 목거리

인장은 목으로부터 가슴 앞에 느리기도 하고 혹은 가락지에 새겨서 끼기도 한다. 요셉이 바로에게로부터 받은 가락지에는 왕의 인이 있었다. 금,은 보석의 목거리를 귀족들은 귀중한 장식품으로 걸고 다녔다.솔로몬이 아버지의 교훈과 어머니의 법도를 중히 여길 것을 청년들에게 권할 때 ”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라고 말한 것은 이 습관으로부터 나온 비유이다.(시 73:6,잠1:9)

기타장신구

신부가 신랑 앞에 나올 때 겸손과 복종의 정신을 표하기 위해 사용하던 너울이라든지 방울을 단 발장식이라든지 금,은,황동,상아,뿔,산호,진주,보석,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귀거리,팔찌,코거리,반달 빗,목거리,뺨의 머리 땋은 장식,화관들의 장신구가 있다.

눈과 눈썹에 바르는 분

코올이라는 흑색 분으로 눈과 눈썹을 바르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을 말할 것도 없이 그 얼굴을 아름답게 보이돌록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여인들이 너를 경시하여 네 생명을 찿느니라”는 공격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렘4:30)

의복의 색

의복의 색갈은 흰색을 청결의 표로 하고 검은 색으로 비애와 고통을 나타내었다. 왕후와 귀족은 자주,청,홍색의 의복을 입는 풍습이 있다. 또는 채색 옷 혹은 수 놓은 옷도 입었다. 요셉이 어렸을 때 채색 옷을 입었다고 하는 것이 한 예이다. 또한 느헤미야는 다니엘이 놓은 자리에 올라간 때에 자색과 홍색의 의복을 입은 것이 기록되어 있다.

제사장의 복장

제사상의 복장에 대해서는 출애굽기 28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설명을 약하기로 한다. 그러나 한 마디 붙일 것은 그 옷은 일일이 특별한 정신적 의미가 있으며 제사장의 특권과 책임을 상징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음식과 식사

주식

유대인의 주식은 떡이다. 떡을 제조 판매하는 자를 구약에서는 보지 못하겠으나 신약에서는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가지시고 5천명을 먹이신 사실 중에서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하신 말이든지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옵소서”우리가 가서 200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는 말을 보아서 떡 판매자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요6:5,마6:35-36) 떡을 만드는 데는 먼저 밀이나 다른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느 집이든지 한 개나 두개의 절구를 두고 가루를 쓸 일이 있을 때마다 절구에다가 곡식을 빻는다.가루를 미리 만들어 놓지는 않았다. 그래서 종일토록 절구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솔로몬의 잠언 중에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 하느니라”하는 말이 있다. (잠27″22) 절구 외에 가루를 곱게 하는 기구는 맷돌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것과 같은 것인데 돌을 매우 단단한 것으로 사용했다. 그 돌의 크기는 보통 직경은 40cm 정도이고 두께는 12cm가량이다. 그러나 나귀의 힘으로 돌리는 연자 맷돌도 있었다. 맷돌을 가는 것은 부인의 일거리였으나 삼손과 같이 포로된 남자를 시켜 맷돌을 갈게 한 일도 있었다. 맷돌을 갈 때는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하는데 둘이 할 때는 마주 앉아서 한다. (삿16:21) 앞에 말한 것과 같이 유대에는 매일 맷돌 가는 소리가 들리고 절구질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활동의 소리를 뜻하는 것이다. 즉 번영의 소리를 말하며 이 소리가 나지 않을 때면 패망으로 향하는 징조로 알았다.(렘25:10,전12:4) 맷돌은 이와 같이 매일 쓰는 것이므로 히브리인은 이것을 전당 잡는 것을 급하였다. 즉 “맷돌을 전당 잡지 말지니 이는 그 생명을 전당 잡음이니라.”하였다. (신24:6) 가루를 개는 데는 판을 사용했다. 이것은 나무로 만든 것과 가죽으로 만든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가죽으로 만든 것은 쓰지 않을 때는 접을 수 있도록 간편하게 만들었으므로 이것을 귀한 물건으로 여겼다. 또 여행할 때에는 가루와 떡을 넣는 그릇으로도 썼다. 가루는 물이나 양유를 넣고 손으로 갠다. 또 떡에는 누룩을 넣은 것가 넣지 않은 것이 있다.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은 손쉽게 될 수 있다.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한 떡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이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두껍게도 만들고 얇게도 해서 화로에 굽는다. 누룩을 넣은 것은 얇게 자르지 않고 그냥 뜯어 먹는 것이 보통이다. 또 떡에는 밀로 만든 것과 보리로 만든 것이 있는데 밀떡을 좋은 것이라고 여겼다. 예수가 5천명을 먹이실 때 그 아이가 갖고 있던 떡은 보리떡이었다.(창18:6,요6:9) 떡 외에 주식으로는 육식을 했다. 그러나 새나 가축을 일반적으로 먹기는 했지만 많이 먹는 것은 아니다. 생선은 호숫가에 사는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먹었지만 물고기 날 만한 강이 적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음식물이 되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먹는 데 대해서는 엄밀한 제한이 있었다. 즉 짐승은 소와 양 같은 새김질하는 것으로 또 발굽이 둘로 갈라진 것이라야 되고 생선은 비늘과 지느러미가 갖추어진 것을 한했다. 새는 수리와 매같은 육식 조류와 참새와 까마귀같은 잡식 조류를 금했다. 벌레는 메뚜기와 같이 날고 뛰는 긴 다리가 있는 것에 한했다. 그러므로 토끼와 돼지,뱀장어,낙지,문어 같은 것은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었다.고기는 찌거나 구워서 먹고 말려서 먹기도 했다. 산양이나 양을 그 어미의 젖으로 찌든지 복든지 하는 일은 율법으로써 엄금하였다.(민11:32,신14:21) 메뚜기를 먹는 일은 상류사회에서는 거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으로 사용했다. 세례 요한이 메뚜기를 먹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찌고 혹은 기름에 복고 가루를 내어 과자를 만들고 또 소금에 저려두고 혹은 말려서 오래도록 보존하고 때에 따라서 음식에 넣어 먹었다.

부식

보통 부식물은 팟죽이었다. 창세기에 보면 그 빛은 붉다고 했다. 또 열왕기에는 야생 오이를 솥에 썰어 넣고 끓인 이야기도 있다.(창25:29-34,왕하 4:38-41) 소금은 요리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으로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이것을 사해 근방의 산에서 파내어서 썼다. 떡과 소금을 같이 먹는 것은 우정의 상징이 되어 있다. 음료로는 술이 사용되었는데 술은 포도 또느 과즙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발효한 것과 발효하지 않은 것이 있다. 또한 소와 양,산양의 젖이 음료로 사용 된 것은 물론이다.

세수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은 그들의 습관이었다 (막7:3-4) 식사할 때는 때를 따라 바로 앉기도 하고 비스듬히 앉기도 한다. 주님의 만찬 그림에서 주님과 제자들이 몸을 비스듬히 앉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습관이 구약 시대 때부터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히브리인은 특별한 집회에서 비스듬히 앉고 평일에는 바로 앉은 듯하다.

식탁

히브리인의 앉은 의자는 긴 의자로서 보통 세 사람이 앉아도 충분하다. 혹은 세 사람 이상이 앉는 일도 있다. 식탁을 중앙에 놓고 긴 의자를 세 군데 놓고 한 곳은 열어두어 심부름하는 사람이 편리하게 했다. 앉는 데는 몸의 왼쪽을 아래로 하고 머리를 조금 들고 두 발을 충분히 뻗거나 조금 굽히고 앉는다. 그러므로 첫재 사람의 발은 둘째 사람의 등 뒤에 있고 둘째 사람의 머리는 첫째 사람의 가슴 앞에 있게 된다. 요한복음 13장 23절에 요한이 예수님의 가슴에 의지하였다고 한 것은 요한이 예수의 바른 편에 앉은 까닭이다. 발은 신을 벗은 대로 뒤에 뻗기 때문에 누구든지 쉽게 그 발에 닿게 되었다. “예수의 뒤로 그 발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우니”라고 한 것은 이러한 방법으로 앉아서 식사를 한 유대 풍속을 증명한 것으로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눅7:38,요13:2) 또한 누구든지 식사 중에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했다. 좌석에는 상하의 구별이 있다. 상좌에 앉는 자는 가장 귀한 사람이었으므로 바리새인들은 그 자리에 앉는 것을 원했다. 식사할 때 상좌는 주인의 자리 옆에 앉는 것이다.어떤 성서학자는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서 앉은 순서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음식을 집는 데는 왼손을 사용했다. 젓가락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한 것은 그와 같은 습관에 의한 것이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종은 그릇에 물을 담아 가지고 와서 부은 사밧의 아들 엘리사”라고 기록한 것은 엘리사가 엘리야를 위해 이 일을 한 것이다. (왕하3:11)

청결례

그들이 식사 전후에 손을 씻는 일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지만 이거은 다만 청결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청결하면 너희도 청결하라”함과 같이 문자 그대로 실행하려 하는 종교적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같은 손을 씻는다고 할지라고 이것은 쓸 만한 그릇,물을 부을 만한 사람,손을 씻는 방법들이 학자의 연구거리가 되어 있다. 이외에도 그들은 여러 가지 씻는 예식을 행했다.그들은 물건 중에 깨끗한 것과 불결한 것을 가리고 손을 씻고는 물건을 깨끗하게 하고 목욕할 물까지 가려서 썼다. 완고한 유대인 중에는 술에 빠져 죽는 지극히 작은 벌레도 혹시 삼킬까 봐 두려워 해서 이것을 걸러 먹는 일도 있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라고 책망하신 것은 이러한 습관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막7:1-5,마23:24)

교제와 여행

인사

유대인은 서로 인사하는 습관이 있는데 상대방의 신분에 따라 머리만 숙이거나,허리를 굽히건,땅에 엎드려 예를 표시한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세명의 여행자를 보자마자 곧 몸을 땅에 굽혀 인사하며 말을 했고 또 그의 처 사람의 묘지를 찾을 때에도 헷사람 앞에서 몸을 굽힌 일이 있다. 야곱은 그의 형 앞에서 일곱 번 몸을 굽혔다고 했다. 또한 지극히 높은 사람 앞에 나온 때에 땅에 엎드려 절한 예는 요셉의 형제들이 애굽의 총리인 요셉에게 절한 것이다. 신약에도 그리스동게 타원하러 온 자들이 그의 앞에서 끓어 엎드린 일과 요한이 하늘의 사자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려 한 기사를 볼 수 있다. 친한 사람과 만날 때에는 몸을 굽히는데 그치지 않고 서로 목을 안고서 입맞추는 풍습이 있었다. 이와 같은 풍습은 부자간 혹은 친족과 친한 벗 사이에 행해졌다. 또한 제자가 그 선생에게 입맞추는 것은 사랑과 경의를 표시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만찬식을 행할 때 먼저 입맞추는 예가 있었다고 옛글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인사에쓰이는 용어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즉 “여호와가 당신들가 같이 계실지어다. “여호와가 당신을 축복할지어다.””평안할 지어다.” “당신의집이 평안할 지어다.””당신이 가진 모든 물건이 평안할지어다”라고 했다. 가장 보편적인 인사는 “평안하시기 바랍니다.(shalom)”샤롬이요 그 대답은 “당신에게도”였다. 여러가지 긴 인사는 사무에 분주한 사람에게는 귀찮을 정도였다.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경우 즉 여행에서 돌아올때,식사 전후,경조의 경우,조석,심지어는 새 옷을 입을 경우까지 판에 박은 듯한 인사와 대답하는 말이 있다. (룻2:4)

유대인과 오락

오락에 대해 기록된 곳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데 아이가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통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한 말 가운데 아이들이 혼례와 장례를 흉내를 내면서 놀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외에는 별로 말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오락이 있었던 것은 물론읻. (마11:26-27) 유대인들이 대중 오락을 한 일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안디옥,에피파네 시대에 제사장 야손이라는 자가 헬라풍의 오락을 거행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운동장을 설치하고 그 후에 헤롯은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와 베레스에 극장을 설치하였으나 유대인은 자기들의 풍습에 위반되므로 일반인들은 이것을 피했대, 헬라와 로마의 대중 오락은 규칙이 있고 승부를 결정하는 심판관이 있어 우승자에게는 이를 표창하였는데 그 승리자의 명예는 매우 귀한 것이었다. 신약 성경에는 이것을 인용하여 신앙상의 전승을 기대하였다. (딤후 2:5,엡6:12,고전9:26,히12:1-4,딤후4:7-8)

여행

유대인은 여행 할 때 남녀를 막론하고 대개 나귀를 사용했다. 안장은 다만 나귀 등에 모포 같은 것 하나만 얹은 것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제자들이 “옷을 그 위에 얹고”예수를 타시게 했던 것이다. 이들이 먼 곳을 여행할 때 그 첫째 날은 다른 날에 비해 극히 단거리에 숙박하는 것이 통례였다.이것은 충분히 여행 준비를 했다해도 떠나온 후에 혹 잊어버리고 온 것이 있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또는 동행할 사람이 뒤에 떨어졌어도 빨리 쫓아 오도록 이렇게 했다. 이러한 풍습으로써 예수가 12세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하루를 지나 그 부모가 예수께서 같이 없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간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이 하루 걸리는 거리 곧 36km 온것이 아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루살렘 북을 향에 떠난 사람이 그 날에 숙박하는 곳은 옛날 벧엘이라는 곳이라 한다. 이 땅은 예루살렘 북방 10~12km 되는 곳으로서 불과 3시간의 거리에 지나지 못한다하며 옛부터 이 이땅을 예수의 양친이 숙박했던 곳이라고 전해 온다. 이외에도 유대인의 여행에 대한 기이한 풍습은 안식일의 노정이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1장 12절에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고 했다. 이것은 그들이 안식일에 관한 모세의 율법을 엄중히 지키려는 정신으로부터 나온 것으로서 그 거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고 대개 900m이다. 팔레스틴은 기후가 몹시 덥기 때문에 폭양에는 여행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행인들은 해뜨기 전과 해지고 난 후에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눅11:5-8)

객사=나그네의 집

여행자들이 숙박하는 객사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단순히 자신을 위해 설치한 초막으로 다만 여행자나 비나 이슬을 피하게 한 것 뿐이다.(렘9:2) 또 하나는 비교적 좋은 것으로 높이가 6m가량의 벽을 사방에 둘러 쌓고 그 주위에 다락과 같은 높은 방을 지어서 여행자가 쓰기에 편리하도록 했다. 입구에는 아취형의 문이 있다. 그 방은 다만 잠만자기 위한 곳으로서 전혀 부속 시설이 없도 음식도 여행자 자신이 휴대한 것을 먹을 뿐이다. 그러나 여행자가 병에 걸리는 때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 있는 것 같이 여관 주인이 그 사람을 맡는 풍습도 있었다.(눅10:35) 말,낙타,나귀,짐 등은 넓은 마당에 두는 것이다. 가운데 마당에는 우물이 있고 마굿간의 경우 지붕있는 마굿간을 짓는 일도 있다.보통 마굿간은 객실 아래에 짓는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구유는 동굴이 아니고 이와 같은 구유라는 말이 있다.

*팔레스틴 풍습 이모 저모 윤두혁 목사 편저 발췌

팔레스타인 가정의 풍습

족보의 존중

족보의 보존

마태복음을 펴면 그 첫머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길게 기록되어 있어서 처음으로 성경을 대하는 사람의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저자는 왜 이렇게 복잡한 이름들의 나열로부터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이 글이 유대인을 위하여 쓴 것이라는 것을 염두해 두면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그것은 유대인처럼 족보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보존하기에 노력한 민족은 어디에서도 찿아 보기가 힘들 정도이기 때문이다.그러면 유대인은 어찌하여 그렇게 족보를 소중하게 여겼을까? 그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족보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는 다르다.그들은 지파의 구별과 토지의 소유권과 지위와 권력이 모두 그 족보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대상 5:1-3,민3:10,스2:61-62,느13:27-28) 그러므로 유대인의 족보는 대대로 내려오면서 많은 소란과 변동 중에서도 안전하게 보존되어 왔다 (대상 1: – 9:) 마태복음 첫 머리에 기록된 예수의 족보는 약 2천년 간 내려 온 것이고 누가복음 3장에 기록된 족보는 아담에서 부터 시작하여 4천년 간이나 길게 내려온 것이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저자가 제일 먼저 예수의 족보를 기록한 이유는 그러므로 예수는 예언의 응답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탄생하시고 또한 예언의 응답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하여 그 왕통을 이어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유대인에게 납득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족보의 기재법

족보의 기재법에는 두가지가 있는데,아버지로부터 자자 손손에 저하여 온 순서를 따라 기록된 것과 법률상 산업을 계승하여 온 순서를 따라 기록된 것이다. 마태복음 첫 머리에 기록된 족보는 다만 예수가 혈통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후손만 되는 것을 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손으로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산업,또 다윗에게 준 왕통을 계승하여 이것을 완성하실 분이신 것을 나타낸 것이다.(창22:17-18,삼하7:12-16,눅1:30-33) 또 한 가지 족보의 기재법에 대하여 주의할 것은 마태복음 1장 17절에 기록된 것과 같이 14대식 세계를 구별한 것이 이 시대의 풍습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스미스(W.Smith)씨는 그의 [성서사전]에 이와 같이 썼다. “자기가 마음대로 세계를 구분하고 또는 신비스러운 방법으로써 같은 숫자를 만들고 또 이것을 만들 때에 대를 중복시키든가 생략하는 것이 유대인의 통상적인 습관이다” 예수의 족보에 있어서도 그 저자는 몇 사람을 생략했다. 즉 8절에 “요담은 웃시야를 낳고”라고 하였지만 요담과 웃시야 사이에 아하야,요시야,아마야 3대가 생략되었고 11절에 “요시야는 여고냐를 낳고”라고 하였지만 그 사이에 여호야김이 생략되었다. 또한 그 저자가 예수의 세계를 완전 수인 7의 배수 되는 14대를 세 번 중복하여 42대로 한 것은 수에 특별한 의미를 포함시켜서 생각한 유대인의 좋아하는 수에 맞춘 것인데 이것으로 보아도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는 구주라고 인정하게 하기 위하여 저자가 고심한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가족 제도

아버지의 권리

부부가 있고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고 품군과 종이 있으면 자연히 상호간에 가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생기는 것이다. 옛날 유대에서는 그 아비된 자의 권리는 거의 전제권이어서 자녀의 생명이라도 다스릴 수가 있었지만 모세의 율법은 이에 제한을 두어 아버지는 마음대로 자녀를 죽이지 못하게 되었다.만일 자녀에게 죄가 있는 경우에는 마을의 장로에게 재판을 받은 후, 그의 부모를 친자나 또 이를 욕하고 천대한 자나,아버지의 첩을 빼앗은 자나,불량 방탕하여 함부로 악한 짓을 하는 자들은 사형에 처했다. (출21:15,17,신21:18-21,레20:10-)

장자의 권리

율법에서 아버지는 그 아들의 장자권을 중히 하라고 명했다.그러기 때문에 아들들에게 자기 소유를 분배할 때 장자에게는 다른 아들들의 2배를 주지 않으면 안된다. (신21:17) 장자권은 다만 이에 그치지 않고 전 가족을 지배할 권한이 있다. (창27:29,창49:8) 그리고 또 모세 시대 이전에는 제사권도 장자에게 속해 있었다.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봐서 장자라고 하는 말은 존귀와 특권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출4:22,히1:6,히12:23)

본처와 첩

첩은 돈을 주고 사온 자와 또는 산 처의 노비로서 가족에 들어온 자나 혹은 전쟁에서 잡아온 자이다. (출21:7-11,창29:24,29,신21:10-13) 그러나 본처와 첩과의 사이에는 엄연한 구분이 있으며 그 권리도 같지 않았다.첩의 자녀는 아버지의 특별한 허가가 없으면 본 처의 자녀와 같이 권리를 가지지 못했다.아브라함의 처 사라는 첩의 아들 이스마엘이 본처의 아들 이삭을 보고 비웃었다는 이유로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같이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했다.(창21:9-10) 또한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고 혹은 저주한 자의 구별을 보면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한 시므온,레위,유다,잇사갈,요셉,베나민 등은 야곱의 본처의 소생이지만 에발산에서 저주를 한 자들은 그 큰 죄로 말미암아 장자권을 잃은 르우벤과 야곱의 첩에게서 난 아들들이다. (신 27:12-26)

이 혼

이혼은 아내가 수치스러운 소행이 있을 때 이혼 증서를 준 후에 이혼을 성립시킬 수가 있다. (신24:1-4) 그러나 아내가 남편에게 이혼을 성립시킨 예는 없다.또 첩은 산 주인이 법대로 하지 않을 때는 마음대로 나갈 수가 있었다.포로로서 첩이 된 여자는 이별할 때에도 마찬가지 규례로 주인은 결코 그 여자를 돈으로 파는 일은 할 수 없었다.(출21:11,신21:14)

간 음

간음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아내나 혹은 약혼한 여자를 범하는 일로서 이에 대한 형벌은 사형이다.당사자는 돌로 쳐 죽인다.(신22:22-27) 물론 형벌을 집행하기 전에 확실한 증인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증인도 없고 또 남편의 눈에 발각되지도 않았지만 간음의 의심이 있을 때는 그 부인을 제사장에게 대리고 가서 “의심의 헌물”을 손에 들리우고 “저주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하여 그 진부를 시험하였다.(민5:11-31) 약혼하지 않은 여자와 관계한 남자는 그 여자의 아버지에게 폐백을 드리고 그 여자를 대리로 온 후 평생 이 여자와는 이혼하지 못했다.(신22:28-29) 그러나 여자의 아버지가 이것을 승락하지 않은 경우에는 폐백 대신에 그 가치 만큼 대금으로 지불하도록 되어있다. (출22:16-17)

종의 대우

종은 보수를 주는 일이 없고 완전히 그 주인 지배하에 있는 것으로서 만일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팔려고 할 때에는 본인의 의향 여하에 구애 받지 않고 팔 수가 있다.종이 되는 자는 포로,부채자 또는 그의 자녀,도둑,종의 자녀 등이다 (신20:14,레25:39,출21:2,4) 히브리인의 종으로 일하는 연한은 6년 간이어서 7년째에는 풀려 나기를 요청하지 않아도 자유로 내어보내는 법이었다.그러나 희년을 당할때는 6년이 차지 않았어도 해방하는 법이다. (레25:39-43) 그러나 아내와 자녀는 그 주인에게 속한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그는 홀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그러므로 아내를 사랑하므로 가기를 원히 않은 경우에는 이것을 명백히 주인에게 말하여 주인과 같이 사사 앞에 가서 일생을 주인에게 섬기는 증거로 송곳으로 주인에게 귀를 꿰게 한다. (출21:1-5) 이 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와 같이 종 학대하는것을 허락치 않으며 긍휼의 정신을 가지고 종을 우대할 것을 명하였다.그러기 때문에 만일 주인이 종의 눈이나 이를 다치게 했으면 곧 그를 해방시키지 않으면 안 되며 또 만일 종을 처죽인 때에는 이를 벌하는 율법이 있었다 (출21:2-21,36,27)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종교상의 특권까지 비복에게 주었는데 즉 안식일에는 일을 쉬게 하고 민족적 제사에도 출석하는 것을 허락했다. (신 5:14,12:13,18) 이 외에 할례까지도 비복에게 의무적으로 베불었다. (창17:13,27)

품군과 임금

고용인은 종과 달라서 고용주에게 일정한 임금을 받기 위해 고용주를 위하여 일정한 일을 하는 자이다.일을 마치고 임금을 받은 이상에는 전혀 관계과 없다. 품군의 임금은 그 날에 반드시 지불하라는 엄중한 율법이 있었다.만일 이것을 이행치 않은 자는 노동자를 학대하는 자라 하여 여호와께 죄를 범한 자로 인정하였다. (신 24:14-15,마20:8,약5:4)

약혼과 결혼

약 혼

유대 사람의 약혼하는 풍속은 과거 우리 나라와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다.즉 부모는 그들의 자식을 위해 처녀를 선택하며 혹은 선택하지 않더라도 약혼과 혼인에 대해서 맡아서 관리를 하므로 당사자의 선택권은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창24:4,28:1-2,21:21,38:8-12) 창세기 24장에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 (그는 당시에 40세였다)의 신부될 처녀를 택하러 간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드 종은 도중에서 리브가를 만난 사실을 그의 아버지와 형에게 이야기하고 결혼을 정한 즉 그들은 리브가에게는 아무 의향도 듣지 않고 곧 대답하면서 ” 이 일이 여호화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오와의 명대로 그도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하였다.이렇게 하여 약혼이 이루어질 때에 신랑의 부모로부터 신부의 부모형제에게 예물을 보내고 혹은 돈을 보내는 일이 보통이었으므로 아브라함의 종은 이야기의 결정을 지은 후 금은풍물과 의복을 리브가에게 주고 또 그 형과 모친에게 보물을 주었다고 하였다. (창24:48-52)또 예물을 주는 대신에 시부될 부모에게 일을 해 주는 일도 있었다.야곱이 그의 아내를 얻기 위해 14년 간 라반에게 일해 준 것과 모세가 이드로의 양을 친 것들이 그 일례이다 (창9:18,27,출2:21,3:1,삼상18:23-27) 전쟁 때에는 부녀를 포로로 대려다 아내를 삼는 경우에는 그 아내가 될 부인은 머리를 깎고 손톱과 발톱을 손질하고 포로 때의 의복을 벗어버리고 그의 부모를 위해 일개월 간 통곡한 후에 결혼하는 것이다. (신21:10-14) 또 형이 아들이 없이 죽은 경우에는 동거하던 동생은 형의 아내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게 하고 형의 가계를 계승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율법도 있었다.이는 그들의 가계를 중히 여기는 데서 생긴 풍습이 규범이 되고 만 것이다. (신25:5-6,창38:) 신부의 아버지가 혹시 그의 딸에게 재산을 주는 일도 있었다.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웃니엘에게 줄 때 ‘남방 땅’과 ‘윗 샘과 아랫 셈’을 준 일이 있다.(삿1:15,창24:59-61)약혼과 결혼의 사이 기간은 보통 일년 쯤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신20:7,삿14:8) 그렇게 해서 약혼한 사람은 벌써 부부가 된 것 같이 남편이라 하며 아래라고 부를 만한 자로서 쌍방이 정조를 굳게 지키지 않으면 안 되므로 만일 다른 사람과 관계가 있으면 이를 간음 죄로써 곧 처벌하였다. (마1:19-20,신22:23-24). 그러기 때문에 만일 요셉이 마리아를 오해하고 송사하여 그 여자의 임신을 공포하였더라면 유부녀로서 간음한 부인이라고 돌로 쳐 죽였을 것이다.

결혼의 절차

혼례는 보통 밤에 거행하였다. 당일이 되면 신랑은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를 데리고 신부의 집으로 가서 결혼식을 거행하였다.요한복음 3장 29절에 ‘신랑의 친구’라 함은 소위 둘러리로서 특별히 신랑을 돕는 자이다. 이 때 신부는 일생에 한 번 있는 경사이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어느 곳을 막론하고 틀림없는 풍습이다. 요한 계시록에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데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라고 하였고,이사야서는 “신부가 보물로 단장한 것 같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계21;2,9,사61:10) 신부의 집에서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은 신부와 그의 여종들과 같이 큰 행열을 지어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간다.그 행열이 행진할 때 모든 따라오는 사람들은 등불을 가지고 또 음악대가 행열 앞에 서서 가는 일도 있다.이렇게 해서 신부의 집에서 열리는 혼인 잔치에 청한 소님들은 밤 행렬이 이르는 길에 나가서 그들을 맞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다.마태복은 25장에 있는 열 처녀의 이야기는 이러한 풍속의 한 예이다. 마태복음 22장의 비유에 왕자 혼례의 이야기가 있다. 그 중에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석에 앉은 사람을 처벌한 일이 있다. 이는 유대 풍습으로 그와 같은 혼인 잔치에 왕은 관대한 은혜로써 초청한 사람들에게 예복을 공급하는 풍습이 있는 것을 알 때 우리들은 이 사람이 핑게 할 수 없게 된 것과 왕의 처벌이 대단했던 것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혼인 잔치

혼인 잔치는 보통 1주간 혹은 2주간도 된다. 요한복음 2장에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진 이야기가 있지만 집에서 담은 포도주를 쓰는 그 나라의 풍습으로서는 그와 같은 일도 있을 것이다. 잔치 중에는 말할 것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구약서서 중 아가는 유대의 혼인가를 모은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많이 있다. 또 그 때에 여러 가지의 여흥도 있었던 것 같다. 또 그 때에 여러가지의 여흥도 있었던 것 같다. 삼손이 속옷 30벌과 것옷 30벌을 걸고 내기를 할 때 “먹는 자에게 서 먹을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오나니라” 한 수수께끼가 그 일례이다. (삿14:10-20). 혼례의 주간은 어떤 사람이라도 그 기쁨과 즐거움을 막거나 금하지 못하였다. 금식 등의 의식상 의무를 면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엄격한 날인 “대 속죄 일”이라 할지라도 이것으로 그 의식의 일부를 생략하는 것을 허락하였다.또 이 기간은 모든 슬픈 행사는 정지하였다. 그러므로 요한의 제자가 예수께 와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치 않습니까”하고 질문할 때 대답하시기를 “신랑의 친구가 신랑과 같이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는가”라고 말한 것은 그와 같은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요3:29,마9:14-15)

신혼 부부의 대우

결혼 후 1년 간은 모든 공직의 의무를 면제하는 풍속이 있었다. 모세의 율법 중에도 “새로이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를 군대로 내어 보내지 말 것이요 무슨 직무든지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년 동안 지에 한가히 거하여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신 24:25)

다처의 풍습

성서에 기록된 또 하나의 풍습은 다처의 풍습이다. 이 풍속은 노아의 홍수 이전부터 행해진 것으로서 당시의 타락된 인류가 그의 욕정을 마음대로 채우기 위해 생긴 악풍이다. (창 4:19) 그 중에서도 아브라함과 같이 아들을 낳아서 가계를 계승하려는 좋은 생각으로 한 사람도 있지만 그 결과는 생각과 같지 않고 조금의 잘못으로 가정에 풍파가 일어난다 (창 16:3,21:9-14,삼상1:4-7) 그러므로 신명기에는 “왕 될 자는 다처를 피하라”고 경계하였다. 이 경고를 깬 솔로몬와의 만년에 참혹한 왕실 풍파는 누구나 아는 바이다(신17:17,왕상11:1-11) 한편 욥은 그 무죄를 주장하는 말 중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렷던가, 그리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는 중죄라. 재판장에게 벌 받을 악이오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라. 나의 소산을 뿌리까지 없이할 것이니라. (욥31:1-12) 바벨론 포로 이후에 예어자들이 일부일처의 제도를 중요시하여 고조하였고 이혼의 죄를 역설한 이후로 크게 다처의 풍습을 고쳤으나 예수 당대에 있어서도 아직 그 자취를 완전히 끊지 못하게 된 것 같은 증거는 때때로 이혼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말2:15,마19:4-9)

잡 혼

한 가지 더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될 풍습은 잡혼에 대한 것이다. 즉 유대 민족과 다른 종족과의 결혼은 율법으로 엄금하고 많은 선지자들이 경계하였던 일이었지만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깨고 잡혼을 감행해서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으며 이것 때문에 그들의 세력도 크게 쇠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포로기 이후에 여기에 대해 더욱 더 분분히 논하게 되었다. (신7:3,스9:-10,느10:30) 또한 사마리아 땅의 차별 경우도 잡혼에서 생겨진 것이다.

해산과 영아

산파

순산할 때에 산파의 도움을 받는 것은 어느 나라든지 같지만 유대인의 산파가 어떻게 하였는가에 대해서 에스겔서에 기록된 것을 보면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라고 하였다.(겔 16:4)

해산의 기쁨

이 나라에서는 특히 아들을 낳는 것은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한 것으로 믿었으며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믿었다. (창14:50,시127:3) 그래서 아이를 못 낳은 여자를 “석녀 가 불러 남에게 멸시를 받았다. 그러므로 야곱의 아내들은 자기가 아이를 못낳을 때는 자기 여종에게 아이를 낳게하여 자기의 아이와 같이한 웃으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여호와의 전에서 울면서 기도한 것도 아들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 부터 멸시를 받아 비에에 잠겼던 까닭이다. 또한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잉태하였을 때에 “주께서 나를 돌아 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한 것은 이상의 풍습을 알게 될 때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 (창30:1-24,삼상10: 눅1:24-25) 이러한 풍습이 있었으므로 아이를 낳으면 본인은 물론이고 이웃 사람들,친척,아는 사람들은 다 함께 기뻐하였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이삭을 낳은 때에,”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시리로다”라고 한 것을 비롯해서 성경 안에 이와 비슷한 기사를 여기 저기서 찿아 볼 수 있다. 또 생일을 기념하여 잔치를 베푸는 풍습도 있는 듯 하다.(창21:6,눈1:58,룻4:13-15,욥1:4,마14:6)

명명과 할례

이름 짓는 것은 대게 출생 후 8일 되는 날에 하였다. 그리고 이 날에 남자는 할례를 받았다. 또 이 때 친족들과 같이 모이는 풍습이 있고 이름은 보통으로 부인이 지은 듯하다. 그러나 혹은 아버지난 친척 중에서도 지은 일이 있다. 그 이름은 일일이 의미가 있는데, 즉 난 때의 감상에 다라서 지은 것 선조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들 등 여러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아담은 “적토” 하와는 “생명”가인은 “얻음”아벨은 “호흡” 에녹은”받침” 노아는 “안식”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 사라는 “왕비” 이삭은 ” 웃다” 야곱은 “압제자”모세는 “구출 ” 예수는 “구원” 등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들의 이름을 연구함으로써 그들의 신앙을 알 수 있다. 할례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남자된 자는 누구든지 받아야만 하는 의식이다. 창세기에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은 너희 자손이 아니요 아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물론하고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다.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하는 이 의식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언약의 은혜에 참여하려는 특권의 표현이므로 유대인으로서는 매우 중대한 것이다. 세례 요한도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예수도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으로서 할례를 받았다. 바울은 자기를 해치려는 무리들 앞에서 육신상으로 말하면 나도 이러하다는 말 가운데 “내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자손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중에 히브리 사람이요”라고 말하였다. (창17:12-13,빌3:5).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의 자손인 이스마엘 사람도 할례를 행하였지만 그들은 이스마엘이 13세 되던 때에 할례를 받았으므로 생후 13일 되는 날 할례를 베푸는 관습을 갖게 되었다. (창17:25)

산모와 결례

출산 후 산모는 불결한 사람이라 하여 남자를 낳은 때는 40일,여자를 낳은 때는 80일 간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못하였으며 40일 혹은 80일이 지난 후 결례를 행하고 비로소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산모의 결례에 대해 레위기에 명기되어 있지만 이 의식을 행하는 데는 본인 자신이 꼭 성전에 참여할 필요가 없고 근친되는 사람이 대리로 행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 의식을 행할 때는 번제를 드리괴 일년생의 어린 양을 드리고 속죄제에는 산비둘기나 새끼 비둘기를 바치는 것이 통례이었다. 그러나 양값이 비싸서 사기 어려운 때에는 번제나 속죄제외 산비둘기나 새끼 비둘기를 대용함을 허락하였다.그 때에는 내용의 헌물은 “빈민의 헌물”이라고 말하였는데 예수의 부모가 바친 것도 “빈민의 헌물”이었다.(레12:,눅2:22-24)

장자를 바침

맏아들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상으로부터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율법이 생겼다. 즉 “사람과 집승을 물론하고 모든 이스라엘의 자손 중에서 처음 난 자마다 다 성별하여 나에게 돌릴지어다. 이는 나의 것인 연고이다.”라고 하였다.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목적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예날 가족 제도에서 가장은 제사직을 겸하였으므로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렸다. 9출 13:11-16)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서는 제사직을 전담하는 제사 제도가 되어 레위 족속이 그 직책에 선택된 후로부터는 가장은 그 직책을 보지 않은 대신에 5세겔의 금전을 지불하며 이 돈을 속금이라고 하였다. 또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침에는 이스라엘인의 선조가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된 기념도 겸하였다. 당신의 애굽에서의 노예 사람은 국왕의 맏아들로부터 옥에 있는 죄인의 맏아들까지 전부 멸하였으며 이스라엘 사람 만은 양의 피로써 구해낸 고로 하나님은 이 일을 기념하여 맏아들을 바치라고 명하신 것이다.(출 13:11-16).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의식은 거의 매일 성전에서 행하게 되었다. 그 의식은 극히 간단하여 제사장은 부모가 데리고 온 맏아들을 안고서 두가지 기도를 한다. 즉 하나는 족죄에 관한 것이고 하는 맏아들을 하나님께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이다. 기도가 끝나면 부모는 다시 제사장의 손에서 아들을 받아 가는 것이다.

젖 때기

아이의 젖 때는 나이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오늘 날에도 서방 아시아쪽에서는 사내 아이가 4~5살이 되도록 적을 주고 특히 사랑하는 아이는 7살까지 주는 풍습이 있다. 사무엘 상에서는 사무엘은 젖 뗀 해에 성전에서 봉사한 일이 기록되어 있고 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입성하실 때에 호산나 호산나 하고 찬미한 사람 중에 영아와 유아가 있었던 것이 보인다. 젖 떨어진 잔치를 베풀고 축하는 풍습도 있었다(창21:8)

*팔레스틴 풍습 이모 저모 윤두혁 목사 편저 발췌

팔레스타인 명칭,위치와 지리,계절과 기후

이스라엘 예루살렘 유대인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명칭,위치와 지리,계절과 기후

명 칭

팔레스틴“이란 이름의 기원은 샘족에 속하지 않은 에게바다 근방에서 온 “블레셋”(Philistine),즉 그들의 역사적 원수 족속에게서 온 것이다.블레셋은 다윗,솔로몬 시대에도 유대 영토에 들어오지 않았고,다윗이 간 지 여러 세기 후, 이스라엘이 독립을 잃고 외국의 속지가 된 후에야 블레셋 땅도 팔레스틴의 한 부분이 되었다.제일 처음으로 쓴 것은 희랍 “역사의 아버지”인 헤로도터스(Herodotus)가 주전 5세기에 성지를 가리켜 팔레스티네(Palestina)라 했고,후대 로마인들이 팔레스티나(Palestina)라 불렀다.영어의 팔레스틴도 희랍어에서 온 것이다. 더 오래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족장시대에는 팔레스틴을 ‘낮은 땅’이란 뜻이 있는 가나안이라 불렀고,주전 14세기에 팔레스틴에 있던 애굽 관리들은 성지를 “키나니”혹은”키나히”라 불렀다고 한다. 가나안 사람들은 역시 샘족에 속한 민족으로 그 문화,정치 정도가 이슬라엘보다 높았다.아브라함의 자손들은 가나안을 여호와의 언약으로 보증된 “허락하신 땅”이라 했으며 (창17:8,출6:4),여호수아와 그 후계자들이 팔레스틴을 정복한 후에는 그 곳을 “이스라엘”이라 불렀다(삼상 13:19)
팔레스틴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기록된 사건이 많이 있는 여호와의 나라라 하여 성지(Holy Land)라 부르기는 성경에서 또 한 번이 있다 (슥 2:12).희랍 시대와 (주전 333-63),신약 시대가 포함된 로마 시대에는(주전 63-주후325) 유대(Judaea)라 불렀는데 이 이름은 원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정착한 예루살렘 근방을 가리킨 말이었다.
“팔레스틴”이란 이름을 법적으로 쓰기는 주후 138년 이후였다.처음에는 불레셋 지방을 가리켰고,다음에는 요단 동쪽의 전토를 가르켰다.요단 동쪽 땅은 예수 때 베리아와 데가볼리로 알려졌다. 최근 세계 제1차 대전 후에는 요단 동지방(Trans-Jordan또는 Esatern Palestine)이라 불렀으며 1948년 아랍,유대인의 팔레스틴으로 가를 때 요단 동부와 서부의 한 부분은 요단 왕국(아랍)이 되고 요단 서부의 해안 지대는 이스라엘 공화국이 되었다.

위치와 지리

위 치

보통 유대라고 잘 불리워지는 이 땅은 지중해와 요단강 사이에 있는데 대개 레바논 남부,애굽-시내산 동북,지중해 동쪽,아라비아 사막 서쪽,북위 31-33도의 지방을 가리킨다.거의 나란히꼴로 된 이 작은 땅은 동서로는 평균넓이가 112킬로,제일 넓은 데가 144킬로 밖에 되지 않는다. 남쪽 브엘세바에서 북쪽 단까지가 240킬로 가량이다. 성경 시대의 팔레스틴 면적은 약 16,000평방 킬로로서,서쪽 팔레스틴이 약 9,600 평방 킬로,요단 동쪽이 약 6,400평방 킬로 였다.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틴은 로마 지배 하의 유대로서 3부에 나뉘었다.북쪽에 갈리리(주님의 고향),중앙의 거치른 고지인 사마리아(에브라임), 곧 솔로몬 왕국이 갈려 북 왕국 이스라엘된 지방, 남쪽에 이두매까지 뻗은 유대 등이었다. 이두매 남쪽은 나바티아 왕국 서쪽 국경이었다.

지 형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팔레스틴은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네 줄로 나란히 놓여 있다. 그 네 줄은 두 가지 산록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첫째는 레바논 산맥이 요단 서쪽, 중앙으로 내리 달아 사막에서 잠겼다가 브엘세바 남쪽 400킬로 지점에서 시내산으로 다시 솟았다.둘째는 안티 레바논(헬몬산) 산맥이 요단 동쪽으로 내리 달리며 바산,길르앗,모압 고산지대를 이루고,계속하여 단에서 400킬로 지점인 에돔의 호로산까지 내려갔다.이상 두 가지 산맥으로 인해 팔레스틴은 길게 4부로 가렸는데 그것은 서쪽에 평평한 해안지대,이스라엘 중앙 산맥의 고산지대,요단 골짜기,동쪽 팔레스틴이다. 이 4지역을 좀 더 살펴 보면,해안 지대는 굴곡이 별로 없는 해안선에 갈멜산이 돌출하여 해안선을 남북으로 갈라 놓았다.이 갈멜산의 북쪽에 기손강이 흐르고 있으며 에스드렐론이라 부르는 평원이 있고 이 평원의 북쪽에 나사렛이 있다. 또한 갈멜산의 남쪽에는 샤론이라고 부르는 평원이 있는데 그 너비가 10-24킬로 정도가 된다 이 두평지를 빼고 나면 팔레스틴은 거의 산악 지대이거나 토질이 좋지 못한 땅이다.중앙 산맥 즉 길르앗-이스라엘 산들은 예수의 사신 땅의 척추격이다. 레바논의 호르산에서 시작하여 브엘세바까지 내리 달리는데 아크레 만 동남,에스드렐론 평원에서 잠간 멎었다가 계속된다. 이 중앙 산맥에는 갈릴리,사마리아,예루살렘,헤브론,세겜 등 중요한 곳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 요단 골짜기는 안티 레바논에서 시작된 요단강이 흘러 사해로 들어가는 골짜기인데 사해가 가까와지는 데로 넓어졌다. 또한 요단 골짜기에서 지중해보다 수면이 390미터나 낮은 곳으로 흐르는 요당강은 물살이 비교적 급한 편이 된다. 사해는 물이 빠지지 못하므로 생물이 살지 못하는 염분이 많은 곳이다.
  • 팔레스틴 동부 지방은 헬몬산에서 에돔의 호르산까지 내려가며 고원 지대를 이루었다.인구가 많던 바산,길르앗,모압 땅들이 여기 있었으며,비록 이스라엘에게 배정은 되었으나 대개 독립적이었다.아라비아 사막은 요단 골짜기에서부터 50킬로 미만이다. 유대 광야는 예루살렘 동쪽 감란산 기슭에서 시작하여 사해까지 내려갔는데 팔레스틴의 가장 황무한 곳이다.

지 질

팔레스틴의 땅은 대페로 석회석으로 되어 있어서 금속과 석탄과 같은 고생대층은 전혀없다. 흔히 볼 수 있는 예루살렘의 큰 건물들은 다메섹 근처에서 나는 단단한 석회석 ‘밀라키’라는 돌로 지었다. 또한 역사 이후에 화산은 한 번도 일어난지 않은 것 같으나 화산암은 많이 있으며 해안 지방과 요단 골짜기에는 지진이 지금도 잦다. 성경의 기자들도 지진을 알았다 (시 18:7,사13:13등) 특히 팔레스틴의 물은 땅 위로 솟아 오르지 않고 땅속에서 지중해나 사해로 빠진다. 그것은 농사에 큰 장애를 주는 것이다. 팔레스틴의 제일 큰 강인 요단강이 1년에 7얼 갈론을 사해로 부어 넣으나 그 강 바닥이 너무 깊어서 그 물을 농사에 사용하기에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든다. 우물은 매우 깊어야 하므로 작은 저수지들을 개인 혹은 동네마다 만들고 빗물을 보존하기에 힘쓴다.예로부터 우물과 저수지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부엘세바,가나,여리고,예루살렘,엔세메스,나사렛,수가 등이 그 좋은 예이다.

계절과 기후

계 절

팔레스티은 우리 나라와 같이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이 있지만 장마철과 한발기 때문에 현저한 변화가 일어난다. 대부분은 북 아열대지방이고,여리고 가까운 요단 골짜기는 열대성 지방의 특징들을 갖고 있다.크게 봐서 장마철과 한발기의 두 계절로 보는 것이 좋다.장마철이란 10월 초순경으로부터 그 이듬해 5월 초순경까지 다소 비가 내리는 계절을 말하며 비내리기 시작하는 10월을 신년이라고 하고 밭갈이를 시작하는 때이다.감사절,나팔절,속죄일이 뒤따른다. (시65:) 10월 초순부터 시작하는 비는 점점 강우량이 많아지면서 이듬해 1-2월에 최고조로 내리고 3월 부터 차츰 줄어들어 5월이 되면 완전히 그쳐버린다.팔레스틴 북쪽의 “메툴라”의 강우량은 36인치,남단의 브엘세바에는 8.8인치 정도이다.먼저 말한대로 유대는 언제나 물이 귀하기 때문에 비를 퍽 소중히 여겨 이를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라고 생각하였다.유대인들은 10월과 11월에 비나림을 따라 파종하고 이듬해 3-4월 경에 추수한다. 이른 비란 파종할때 오는 비를 말하며 늦은 비는 추수할 즈음에 오는 비를 말한다.한발기란 비 한 방울 안 내리는 더운 5-10월 초순 경을 말한다.

기 후

강우와 한발 이외에 팔레스틴의 기후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곧 산악과 계곡들이다. 본래 그 지형의 높고 낮음이 심해서 헬몬산과 사해는 그 높이의 차이가 3333미터나 된다.따라서 기후의 차이가 현저하여 예루살렘과 같은 고지에서는 비교적 더위가 덜하지만 여리고와 같은 계곡지는 매우 무덥다. 또한 요단강 별두리에서는 여름에 화씨118도 가량 올라가는 일이 가끔 있는데 레바논과 헬몬산 상봉에는 가을철까지도 흰 눈이 덮여 있다. 이와 같이 기후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팔레스틴은 좁은 땅이지만 한대 지방과 온대,열대 지방의 동식물을 함께 산출하여 눈 속에서 사자가 사는 등 기이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삼하 23:20)레바논 근처에서는 북부 유럽 지방의 동식물을 볼 수 있으며, 중부 유럽 것들은 예루살렘 – 갈멜 부근에서, 서 인도의 열래 동식물은 여리고 근처에 번성한다. 또한 하루 사이에도 낮에는 덥다가 저녁에는 갑자기 서늘하여지는 등 변화가 심하다.지중해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기후가 조금 누그러지지만 사막지대에서 바람이 불어 올 때에는 날씨가 매우 무더워진다.지중해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서풍이라하여 장마철에 비를 몰고 온다 (눅 12:54) 또 아라비아 사막에서 모래를 싣고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동풍이라고 하여 한발기를 이룬다. 초목을 시들게까지 하는 뜨거운 동풍외에도 사막에서 올라 오는 남풍도 역시 뜨거운 바람이다. (눅 12:55)

*팔레스틴 풍습 이모 저모 윤두혁 목사 편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