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서 하는 기도

깨어서 하는 기도란?

지난 밤, 나는 깨어서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가서 주님을 기다렸다. 나는 가끔 깨어서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주님을 기다리며 그의 존전에 조용히 앉는다. 예수님은 “깨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깨어 있는 것기도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바울은 고린도 후서 6장 4~10절에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열거하였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금식과 철야란?

금식이란 얼마 동안 영적 유익을 위하여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며,철야란 얼마 동안 영적 유익을 위하여 잠을 자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잡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는 동산까지 자기를 따라온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이 잠자는 모습을 보셨다. “너희가 나와 같이 한시도 깨어 있을 수 없더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 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을 주무시지 않으셨다.그는 깨어서 기도하셨다. 갈보리의 승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성취되었다.

깨어 있음은 하나님께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간단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듣기 위하여 정신을 차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깨어 있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동안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다.나는 때때로 깨어서 기도하려 하지만 어떤 때는 깨어 있기가 무척이나 힘든 때가 있다.
예수께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하고 말씀하신 의미를 알만하다.
나의 육신은 무릎을 끓은 지 오래지 않아서 곧 말한다. “이젠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나는 이러한 충동에 굴복 당할 것 같았다. 그러나 좀 더 오래 머물러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에 또 다시 무릎을 끓고 주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린다.
예수께서 나에게 나타내시고자 하시는 것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다음 30분 동안 나는 주께로부터 온 매우 만족할 만한 확신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나에게 어떠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무엇을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6년 전에 나에게 주셨던 환상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나의 현재 환경이 내가 그 길에서 벗어나고 하늘의 환상에 순종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한 때야말로 얼마나 복된 시간인가! 나는 이날 아침 주님에 대해 새로운 확신을 가진다. 주님은 이날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여러가지 세부사항을 말씀하시고 기억해야 할 일들을 기억하게 하신다.

깨어서 기도하는 일

깨어서 기도하는 일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장이 있는 사령부를 방문하는 것과 같다.우리는 신령한 전쟁을 하는 가운데 있으며 사령부와 상호 연락하는 선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께서는 만약 우리가 충분한 시간을 내어 듣기만을 계속한다면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들을 갖고 계신다. 나는 종종 기도할 때 펜과 종이를 가지고서 주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대충 메모해 둔다.

내가 하나님께서 내개 말씀하신다고 말하는 것은,나의 귀에 들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심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니님의 ‘세미한 음성’은 나의 마음과 심령에 감명을 자아내고 있다. 나는 그것이 나의 목자의 음성임을 안다.

예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하셨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가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들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 음성을 아는고로 따로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요10:3-5)
우리가 만일 예수님의 기도생활의 모본을 따라 행한다면 그가 우리에게 흔히 말씀하시는 즉 목자의 음성을 구분하게 될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누가복음에서 찾아 읽을 때 예수께서 기도하기 위한 시간을 정하셨음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것은 어떤 사이나 우연한 기회가 아니었다. 그는 광야로 기도하러 가셨다. 그는 기도계획을 세우셨다. 그는 일찍 새벽 미명에 일어난 기도하셨다. 그는 기도하시기 위해 한적한 곳에 가셨다. 그는 등산가지 위해 나가신 것이 아니셨으며 등산과 기도를 혼합하지 않으셨다.우리의 활동계획 중에서 기도할 계획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매우 중요한 간구와 중보의 기도를 천부께 올리기 위해 시간의 일부를 할당하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루터가 기도와 명상을 위해 매일 세 시간을 보낸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다. 안드레 주교는 매일 5시간을 하나님과 교제했으며,죤 웨슬레는 골방에서 하나님과 8시간에서 10시간을 교제하지 않고 보낸 날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장시간의 기도가 우리에게는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쉽다. 사람들이 만일 그들의 이웃이나 친구로부터 많은 부탁을 받고 시장에 간다면,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일만 위해서 갈 때보다 더 오래 지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기 쉽다. 다른 사람의 일로 인해서 우리가 주님앞에서 더 오래 지체한다면 이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 마이어 –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