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하는 기도

짧게 하는 기도란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7~8)

최근에 나는 신약에서 기도에 관해 기록된 것은 모두 읽어 보았다. 나는 그들 기도가 거의 예외없이 아주 짤았다는 데 놀랐다. 나는 우리 기도의 길이가 역사하는 힘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우리 중 대부분이 기도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아주 크고 강렬하고 길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느끼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밤이나 낮이나 어떤 순간에도 나는 아버지께 짧은 기도를 드릴 수 있고 또 그 기도가 상달되어서 응답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큰 위로를 받았다.

다음에 나오는 몇 가지는 신약에 나오는 짧은 기도에 관한 것이다.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나아와 기도했다. “주여,주님이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간단히 여덟 단어의 기도이지만 응답은 즉각적이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등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8:2~3)
제자들은 바다에서 폭풍 때문에 무서워 하였다. 그들은 깨우면서 “주여,우리를 구하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잔잔하여졌다. (마8:25~26) 이 간단한 여섯 단어가 즉각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어떤 직원이 예수께 나와와 “내 딸이 지금 죽었으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라고 했다. 이 사람은 온 즉시 그의 사건에 대해 간단히 말하고 짧은 문장으로 구원을 청하였다. 응답은 왔다. 예수께서는 일어나 그를 따라가서 그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켰다.(마9:18~26)
두 장님이 간구하였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셨고 그들은 보게 되었다.
하나님 말씀 가운데는 이렇게 짧은 기도가 많이 있다. 그의 모든 경우에 이들 기도는 즉각적이고도 신기한 응답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쓸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러한 짧은 기도를 드리자.

나는 공무차 상당한 여행을 하였으므로 고속도로로 달릴 때 매우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명상한다. 때때로 혼자 운전해 나가면서 라디오를 들을 때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러한 느낌에 순종하여 나의 관심을 끌고 있는 수백가지의 문제에 대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나에게 참으로 유익하고 영구한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들이 매우 짧은 기도이지만 매우 강력하고 은혜가 많은 것들이다.

나는 우리가 기도와 말씀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지만 또한 은혜의 보좌 앞에 우리의 필요를 쏟아 놓기 위해 우리의 ‘부스러기’ 시간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짧게 하는 기도가 나의 기도생활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일신시켜 놓았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대한 굳스피드(goodspeed)역은 이 점에 있어 흥미롭다 . 킹 제임스 역은 “성령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기도하고”라고 되어 있으나 굳 스피드역은 이것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라고 하였다.
모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기도하고 하나님과 사귀는 시간을 만들라는 것이다.

느헤미야의 기도

느헤미야 2장 가운데서 우리는 짧은 기도의 능력에 대해 아름다운 실례를 보게 된다
느혜미야는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울었다. 하나님은 그의 슬픔을 보셨으며 성벽을 쌓기 위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어느날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수종들 때 그 왕은 느헤미야의 슬픈 모습을 보고, “네가 병이 없거는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라고 물었다. 느헤미야는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내가 얼굴에 수색이 없으오리이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은 “네가 무엇을 요구하느냐?”라고 물었다.
느헤미야는 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무릎을 끓지 않았다. 그는 크게 말하지도 않았다.
사실상 그것은 매우 짧았으며,그 묵상 기도를 하늘로 올렸던 것이다. 왜냐하면 느헤미야는 왕의 앞에 있었으며 왕은 그 자리에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계속하였다. “종이 왕에게 말하리이다.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대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여행하는데 얼마 동안이 소요되겠느냐 언제면 다시 돌아 오겠느냐 하시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이렇게 하여 예루살렘 상벽은 재건되었다. 그러나 이 사역은 부스러기 시간의 짧은 기도와 금식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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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주의자들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받지 못해도 만족하나 그러나 참으로 간구하는 자들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마음을 잠잠케 하고 의지를 누르는 기도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일어나서 하늘로부터 오는 실제적인 응답을 받아야만 하며 그렇지 못할 때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들은 가능한 한 이러한 응답을 즉시 받고자 한다.
그들은 언제라도 하나님의 침묵하심이 있을까 봐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대단한 진동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지축을 뒤흔든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간절히 간구하는 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께서 그의 귀를 막으시는 것같이 보일 때 우리는 우리의 입을 다물지 말고 더욱 열정적으로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의 음성이 더 열정적으로 비탄 속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지체지 않으시고 우리의 간구를 들으신다. – 스펄젼 –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 내용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