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일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가장 이상적인 교양은 무엇이든 열중하는 습관,열심히 일하는 습관을 들여서 정신을 단련시키고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 힘차게 도약할 자유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곳에서는 성실하고 견실한 성격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다.이러한 성격에는 주의력과 근면함,그리고 학문의 길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에너지가 항상 담겨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러한 성격의 사람은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결단력이 있고,임기 웅변에 능하며,일처리를 잘 하는 능력과 융통성을 갖추고 있다.

생각을 넘어 행동할 것

몽테뉴는 진정한 현인에 대해서 “만일 그가 과학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행동력은 그보다 더 뛰어나다.자신이 입증한 사실이 거부당하면 갑자기 폭풍처럼 감정이 고조되고,지식에 의해 영혼이 이상하리만큼 끓어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극단적인 공상 문학과 철학 문학에 너무 깊게 심취하거나 하여 그것이 습관으로 자리하게 되면,일상생활에서는 실무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색능력과 실무능력은 별개의 것이다. 서재에 틀어박혀 펜으로는 원대한 이상을 펼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서재를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단 한줄도 구체적으로 써 내려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사색능력은 와성한 사고력을 필요로 하고 실무능력은 정력적인 행동에 의해 발휘된다. 그리고 보통 이 두 가지 능력은 균형이 부족한 상태에서 서로 결합되어 있다.
사색적인 사람은 우유부단한 경향이 있다. 그는 한가지 문제를 모든 각도에서 생각한다. 교묘학 짜여진 찬반양론데 끼어 행동은 엉거주춤한 상태가 되고 결국은 애매하게 끝나는 일이 많다. 그렇지만 실무적인 사람은 이론을 앞세우기 전에 분명한 확신에 도달하면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전진하는 것이다.
위해한 과학자 중에도 뛰어난 실무능력을 증명해 보인 사람이 많다. 아이작 뉴턴이 학문 지식이 풍부한 현인이었다고 해서 조폐국 감독관으로서의 평판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독일의 흄볼트 형제는 문학과 철학,언어학,광업,게다가 외교와 정치 등, 이 모든 일에 똑같은 재능을 발휘했다.


환영받는 인재,선택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나폴레옹 1세는 과학자의 도움을 빌려 행정력 강화를 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선택된 과학자 중에는 실패한 사람도 있지만 멋지게 성공한 사례도 있다. 프랑스의 천문학자 라플라스는 내무장관의 지위에 올랐는데 임명받자마자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후에 나폴레옹은 그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라플라스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항상 말초적인 것만 쫓고 있었다. 그의 의견들은 하나같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미분적분의 세밀한 계산법을 실무 관리에 적용시키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미 서재 안에서 완전히 굳어져 버린 습관을 현실에서 응용하기에 그가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던 것이다.
다르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그에게는 실제로 실무 훈련을 받았다는 강점이 있었다. 마세나 원사 밑에서 군대 감독관으로 스위스에서 일한 적이 있고,그 사이의 작가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정부의 평의원 및 궁정 감독관이라는 직책을 나폴레옹이 권했을 때 다르는 망설였다.
“나는 책 속에 파묻혀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고,조정의 신하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배울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이렇게 대답했다.
“조정 신하라면 남아돌 정도로 얼마든지 있네.숫자상으로는 절대 부족하지 않아. 다만 내가 워하는 것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성실하헤 일하고 모두를 계몽시킬 능력을 가진 감독관이야.그렇기 때문에 자네를 선택한 것일세.”
다르는 황제의 청을 받아들여 나중에는 수상의 자리에 까지 올랐다. 거기에서도 능력을 충분히 발휘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겸허하고 청렴했으며 공명정대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취미 생활도 부지런해야 한다.

노동능력을 갖춘 사람은 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기에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어떤 사정이 있어 자신의 전문적인 일을 버리게 되더라도,곧 바로 자신이 헌신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는다. 부지런한 사람은 일한 뒤에 찾아오는 여가시간의 즐거움을 알기에 일을 안 하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여가가 있지만 게으른 사람에게는 일도 여가도 없다.
“여가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여가는 없다.”라고 조지 하버드는 말하고 있다.
“활동적인 사람,바쁘게 일하는 사람은 일의 성과를 기대하면서 해방된 여가 시간을 맘껏 즐긴다. 하지만 하루종일 빈둥거리는 사람,일을 금방 싫증내고 제쳐놓은 사람,다른 사람이 잘 하는 것을 시기하며 은근히 방해하거나 경박한 야심을 품은 사람은 여가 시간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은 베이컨이다.
이와 같은 위대한 업적은 대부분 부지런히 일하는 게 빈둥거리는 것보다 더 즐겁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여가시가’을 이용해서 이뤄낸 것이다.
취미생활도 노동능력을 기르는 데 효과적이다.취매생활을 하려면 부지런해야 하며,적어도 당사자에게는 즐거움을 제공해 주는 것이기도 한다. 다만 공포정치를 펼쳤던 로마 황제 드미티아누스처럼 파리 잡는 취미는 곤란하다.
랜턴을 만든 마케도니아 왕,자물쇠를 만든 프랑스 왕의 취미는 거기에 비하면 훨씬 낫다. 기계처럼 정해진 일이라도 늘 어떤 압력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될 수 있다. 업무 주의 휴식이도 기분전환이든 결과를 떠나서 그 과정이 즐거운 것이다.
하지만 취미 중에는 지적인 것이 가장 좋다. 하루 일을 마친 활동적인 사람은 또 다른 일로 즐거움을 찾는다. 과학에,예술에,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은 문학으로 여가를 보낸다. 이러한 취미생활은 자기 본위의 사고방식과 진부하고 저속한 취미를 막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지적인 취미도 지나친 집착은 좋지 않다. 집착은 무리를 가져오게 되고,그 결과 기운을 잃고 기분마저 침체될 뿐이기 때문이다.
일을 끝낸 후 글을 쓰며 여가를 즐겼던 유능한 정치가는 많이 있다. 세계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것들도 있는데 그 중에 시저의 [갈리아 전기]는 지금도 위대한 고전으로 남아 있다.

수명을 단축시키는 인생


어쨌거나 과로만 하지 않는다면 정신과 신체를 위해서도 유익하다. 인간이란 육체를 빌어 생생함을 유지하는 지적 존재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해가 되는 것은 지나치게 일하는 경우이지 일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힘든 일보다는 더 나쁜 것을 지루한 일,체력 소모가 심한 일,전망이 전혀 없는 일이다.
장래를 기대할 수 있는 일은 건강한 일이다. 사회에 보탬이 되면서 희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행복의 열쇠를 쥐는 비결이다. 적당한 두뇌노동은 다른 일에 비해 결코 고된 것은 아니다. 절도와 규칙만 지킨다면 신체를 단련하는 것과 똑같이 건강을 증진시킨다. 건강에 주의만 기울이고 있으면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 것 이상의 부담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먹고 마시고 자며 인생을 빈둥거리며 사는 쪽이 훨씬 더 해롭다. 일하는 것보다 나태한 생활이 훨씬 더 빨리 인간을 소모시키는 것이다.
단 과로로 뭐라고 해도 비 경제적이다.게다가 걱정거리까지 있다면 정신적 소모는 특히 더 심해진다. 걱정거리는 일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시종일관 초조하거나 흥분해서 몸이 쉽게 약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극심한 마찰을 발생시켜 기계의 톱니바퀴를 마모시켜 버리는 모래와 같다. 지나친 과로나 지나친 걱정에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과도한 두뇌 운동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한 부담이 된다. 능력 이상의 무거운 짐 때문에 쉽게 지치거나 절망에 빠져 버리기도 한다. 체력의 한계를 넘어선 놀라운 기량을 보이려다 근육과 척추의 고통을 견뎌야만 하는 체조 선수처럼 두뇌 노동자도 도를 넘어서면 신경이 극도로 피로해서 균형을 잃게 된다.

글을 읽고

즐겁게 일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내가 좋아한는 일을 하면서 성공까지 한다면 두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자신의 취미를 직업으로 삼을 수 만 있다면 또한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못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볼 때 많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난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니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다.

취미 생활도 부지런해야 할 수 있다. 모든 일들이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 것 같다.
외국 여행을 가도 새벽부터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여행도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데 한국사람들은 여행조차도 정말 부지런하게 다니는 것 같다.

수명을 단축 시키는 인생에서 걱정 근심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정말 근심 걱정은 생각을 경직시키고 좀 먹으며 육체의 피로 또한 유발하는 것 같다. 아무것도 안하고 걱정을 하면 쉽게 피곤하고 나태해 지고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낀다.
무엇에 집중할 때 시간도 빨리가고 뭔가 내안에 끓어오르는 열정이 생긴다.

우리는 짧은 생을 살면서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열정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보고,듣고,읽곤 한다.
우리의 삶이 이런 삶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거센 파도는 1등 항해사를 만든다. 새뮤얼 스마일스 지음 일부내용

인생을 살아나갈 실무능력을 익혀라

거센 파도는 1등 항해사를 만든다. 새뮤얼 스마일스 지음 일부 발췌

어떤 격언을 교훈으로 삼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스콧은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역사학자 로버트슨은 겨우 15세 나이에 “지식을 습득하지 않은 인생은 죽음과 같다.”는 교훈을 선택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의 좌우명은 “항상 열심히 일하라”였고,프랑스의 생물학자 라세페드가 가장 좋아하는 격언은 “살아 있음은 곧 관찰하는 일”이었다.
일은 인격형성을 돕는 교사의 역활도 가지고 있다.일의 결과가 형태로 남지 않더라도 일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기에 아무것도 안 하는 동면상태보다는 낫다. 적어도 자신의 소질을 발전시키고 성공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하는 습관은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가르쳐준다. 시간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게 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 시간을 뜻 깊게 사용할 방법을 익히게 해준다. 그리고 실제로 훈련을 쌓아서 평생을 불태워도 좋을 직업을 갖게 된다면 1분 1초도 헛되이 쓰는 일은 없다. 이렇게 얻어진 여가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진한 행복감을 안겨다 줄 게 틀림없다.

유능한 주부는 유능한 커리어우먼

“게으름뱅이는 쓸모없이 시간만 죽이는 인간이라면,근면한 사람은 시간에 생명과 도덕과념 불어넣어 실제 결과로서 나타내 보이며,그것도 시각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통해서도 보이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근면한 사람은 시간을 순서대로 잘 정리하고 혼을 불어넣어,자칫하면 날아가 버릴 시간에 불멸의 정신을 갖게된다. 그렇게 방향이 정해진 에너지가 순서대로 정리되면 시간은 순종적이고 충직한 하인이 된다. 시간이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시간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된다. 연월일은 사람이 인생에 부여받은 임무를 기록하는 표시로서 세계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것이다. 아니,시간 자체가 지상에서 모습을 감출 때까지 존재할 것이다.”라던 시인 콜리지의 말은 진실이다.
일에 몰도하는 것은 이와 같은 조직적인 방법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르쳐 주기 때문에 인격 형성에도 매우 효과적이다. 일에 필요한 능력은 매일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 타인과 적극적으로 접촉함으로써 갈수록 더 발전해 나간다. 그 일이 가정생활이든 국가 운영이든 마찬가지다.
또한 유능한 주부는 동시에 유능한 커리어우먼이어야만 한다. 자잘한 가사를 훌륭히 관리하고 지갑을 단단히 조여 계획을 세우고 모든 가사를 자신이 정한 규칙에 따라 현명하게 처리해야만 한다. 능률적인 가정관리란 근면과 조직적인 방법,도덕적 훈련,신중함,예측,실무능력,상대를 꿰뚫는 통찰력,그리고 통솔력을 의미한다. 이것들은 어떤 일이든 잘 해내려면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인생을 위한 실무능력

실무능력은 여러 분야에서 활용된다. 실무능력이란 일을 처리하는 기민성과 일상적인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한 능력은 가정관리와 사업 경영,장사와 무역,혹은 국가 정치에도 필요하다.
여러 분야에서 생기는 이러한 문제를 재빨리 처리하는 훈련은 실생활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즉 근면함과 주의력,자기 희생,판단력,인내,그리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훈련은 문학적 교양을 쌓거나 철학적 사색에 몰두하는 것보다 훨씬 충실한 인생과 행복을 약속해 준다.
왜냐하면 긴 안목으로 보면 실무능력은 지성과 연결되며,기질과 습관은 재능으로 변화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은 쉼 없이 주의력을 발휘하고 신중하게 경험을 쌓아야만 얻어지는 일종의 교양임을 덧붙여 둔다.
뛰어난 대장장이가 되기 위해서는 평생 동안 쇠를 단련해야만 한다. 실력 있는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실무를 배워 실천해야 한다.
뛰어난 실무능력의 소유자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 스콧의 특징이었다.
“아무리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도,실생활에서 실력있는 사람,특히 1급 지휘관 등과는 절대 비교해서는 안 된다.”라고 그는 단언하고 있다.
워싱턴도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실무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한 가지에 열중하는 습관,공부하는 습관,그리고 일을 계획에 따라 실천하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의 노트가 지금도 남아 았다. 그것을 보면 불과 열세살에 영수증을 비롯해 약속어음,대체어음,계약서,채권,임대계약서,토지권리증까지 종류도 다양한 서류를 꼼꼼히 옮겨 써놓았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이러한 습관이 후에 부조리한 정치문제를 훌륭하게 처리하는 놀라운 실무능력의 모태가 된 것이다.

일에 대한 정열이 천재를 만든다.

실무 능력을 발휘해 위대한 업적을 거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명예를 얻어 마땅하다. 명화를 그린 작가,명작을 세상에 남긴 문학가,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장병과도 필적할 만하다. 그들은 많은 고난에 직면했고 혹독한 전쟁을 경험한 끝에 성공을 거두었을 게 틀림없다. 게다가 전쟁에서 이겼지만 평화적인 승리이고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었다.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은 힘든 일보다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하지만 그것만큼
잘못된 생각도 없다.
위대한 천재들은 거의 모두가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했다.보통 사람보다도 더 힘든 노동을 견뎌냈을 뿐더러 자기 일에 높은 재능과 불타는 정열을 쏟았다.후세에 남는 위대한 작품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불굴의 인내력과 근면성이 있었기에 천재들의 걸작은 오늘날까지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재능만으로 걸작이 탄생된 것은 아니다

영국의 초기 작가들은 실무에 종사하면서 동시에 글도 썼기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당시에는 다른 분야에는 신분에 계층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문단 분야는 신분이 확실하게 구별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래서 다른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사람들이 대거 참여하여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이다. 그는 극장 경영자이면서 서툴지만 연기자로도 일했다. 그는 초기에 문학적 재능을 닦기보다는 돈 버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아 극장 경영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그 경험을 바탕으로 불멸의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의 시대는 문학 활동이 매우 활발하여 수많은 명작을 남겼던 시대이기도 하다.
사실 어떤 분야이건 간에 그 분야의 실무능력은 과학적 혹은 문학적인 직업에 부적합한 것이 아니라 다시없는 좋은 경험이고 훈련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볼테르는 “문학도 실무도 정신은 같다.”고 주장했다.
활력과 신중함,세련된 지성과 실제적인 지혜,활동적 요소와 사색적 요소가 각기 하나가 되지 못하면,즉 베이컨이 “응축된 인간성의 극치”라고 말했던 결합이 이뤄지지 못하면 어느 것도 완성된 것이 아니다. 설사 풍부한 재능을 가진 작가라도 매일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나 일상적인 일을 다뤄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은 쓸 수 없다.
이와 같이 오늘날 현존하는 명작의 대부분은 직업작가가 아니라 다른 분야에 종사했던 사람들에 의해 쓰였다. 그들에게 문학은 일이라기보다 오히려 기부전환이었던 것이다. 비평지 [퀄털리 리뷰]의 편집장 기포드는 생활의 양식을 얻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지만, 어느 때인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야 얻어진 1시간의 글쓰기는,문학을 장사로 삼는 남자의 만 하루의 노동에 능가하는 가치가 있다. 이 1시간은 마치 사슴이 시냇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하듯이 환희로 가득 찬 영혼을 소생시켜한다. 문학가 에게 하루분의 노동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길을 걷는 일일 뿐이다.”


일을 통해 깨닫는 진정한 삶의 의미

거센 파도는 1등 항해사를 만든다. 새뮤얼 스마일스 지음의 일부를 발췌함

열심히 일할 의무는 모든 계층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든,가난하든 부자든 각기 해야 할 일이 있다.설사 좋은 집에서 태아나고,훌륭한 교육을 받고,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해도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 마땅히 책임져야할 의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현재를 있게 해준 사회에 보답은 전혀 하지 않고 타인의 노동에만 의존하여 먹고 입거나 남의 보살핌만 받는다면 진정한 만족감은 얻을 수 없다. 성실한 사람이라면 함께 먹고 마신 후에 계산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행동에 반감을 느낄 것이다. 게으르고 세상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사람에게는 명예도 특권도 있을 수 없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낭비하는 것으로 만족하겠지만,목표를 이루고자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올바른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명예나 존엄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고통은 극복하는 것,일을 완수하는 것

신학자 스탠리 경,즉 더비 백작은 글레스고를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사람이 좋고 존경받는다해도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일은 우리의 인생 그 자체이니 누군가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당신의 실력을 당당히 보여 주십시오.”
자기 일에 갖는 애정이야말로 저속한 취미에 매달리는 것을 막는 최선의 예방책이다. 게다가 일을 사랑하는 것은 별것도 아닌 고민과 자기애로 발생한 분노를 푸는 최선의 수단이라 해도 좋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난과 고뇌로부터 도망치려면 자기만의 세계에 숨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많은 사람이 이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항상 뻔했다. 결코 고통과 노동으로부터 도망쳐서는 안된다. 이 두 가지는 인간의 숙명이다. 고난과 맞서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고난이 저절로 다가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게으른 사람은 가능한 한 늘 작고 편한 일을 하려고 꾀를 부린다. 그러나 자연은 노동 본능을 공평하게 분배하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는 사소한 일이라도 게으른 사람에게는 힘들게 느껴지도록 만들어 놓았다. 자기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언젠가는,아니 금방이라도 자연의 엄중한 가르침을 배우게 될 것이다.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도 어떤 식으로든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다소라도 유효했던 정신력은 텅 빈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날조된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계속해서 소모될 것이기 때문이다.
즐거운은 적어도 항상 세상에 뭔가 도움되는 일에 종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보수를 받는 기쁨을 맛볼 수 없다.
“일을 가지고 있으면 깊은 잠을 잘 수 있고,아침에 기분 좋게 눈 뜰 수 있다. 여가를 맘껏 즐기려면 학문이든,의무를 수반하지 않는 일이든,일하고 싶다는 느낌을 가질 필요가 있다.”라고 월터 스콧은 말하고 있다.
사실 과로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키는 대로 나태하게 살다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과로로 숨지는 사람은 건강관리를 잘못 해서이거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인 경우가 더 많다.

진정한 삶의 의미


실제로 살아온 세월의 길이로 인간의 수명을 헤아릴 수는 없다. 어떤 업적을 남기고 무엇을 생각했는냐에 따라 살아온 길이를 헤아려야 한다. 남에게 봉사하면 할수록,사색하거나 감동하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늘 게을리 살며 주변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사람은 아무리 오래 살았다 해도 그저 숨만 쉬고 있는 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 옛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설파한 사람들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며 노동의욕을 불태웠다.
사도 바울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며, 타인에게 폐 끼치지 말고 스스로 손을 더러혀가며 일할 것을 가르쳤다. 선교사 보니파티우스는 영국에 도착했을 때 한 손에 복음서를,또 한 손에는 목수의 연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후 영국에서 독일로 건너갈 때에는 건축 기술을 익힌 상태였다. 루터도 원예사와 목수,선반공,게다가 시계기능공등 갖가지 직업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며 매일의 양식을 자기 손으로 얻었다.
나폴에옹은 훌륭한 장인의 기술을 견학하러 가면 신분 계층과는 상관없이 그 장인에게 깊은 존경을 나타냈으며,돌아오는 길에는 겸손하게 머리 숙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살게 된 나폴레옹이 어느 부인과 길을 걷고 있을 때의 일읻. 짐을 짊어지고 오는 몇 명의 하인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부인은 성난 목소리로 길을 비키라고 거칠에 명령했다.하지만 나폴레옹은 “부인,그들은 무거운 짐을 나르는 중입니다.”라고 주의를 환기시켰다고 한다.
아무리 눈에 띄지 않는 하찮은 일이고 더럽고 추한 일이더라도 그들은 사회의 행복에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허탈감과 무력감을 떨쳐내는 비결

어느 중국 황제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한 명이라도 일하지 않는 남자가 있다면,그리고 한 명이라도 게으른 여자가 있다면,반드시 이 나라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굶주림과 추위에 허덕이고 있을 것이다.”
항상 유익한 일을 하는 습관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도 행복의 열쇠를 쥐는 기본 조건이다. 일하지 않는 여성은 두통과 히스테리를 동반한 권태감과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어떤 어머니는 시집가는 딸에게 절대 그런 무기력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얘야,나도 휴일에 아이들이 모두 나가버린 후에는 뭘하면 좋을지 몰라 한낮의 부엉이처럼 멍해진 적이 있단다.그래도 너는 젊은 주부들이 쉽게 빠지는 그런 기분에 휩싸여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열심히 일해라. 게으른 습관은 악마가 쳐놓은 함정이라고 했던 네 할아버지의 말씀은 참으로 옳은 말씀이란다.”
끊임없이 도움되는 일을 하는 것은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도 건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게으른 사람은 스스로를 희생물로 삼는다.

게으른 사람은 인생의 길을 축 늘어져서 질질 끌려가듯 걷고,설사 아직은 일할 능력과 여력이 남아 있다 해도 깊은 잠에 빠져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활력이 넘치는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 힘과 기쁨을 주는 원천이 된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이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시인 찰스 램은 감옥살이에서 풀어나 회사에 근무했는데,매일 정해진 단조로운 책상 업무에서 해방되었을 때에는 하늘로 날아오를 듯이 기뻤다.
“하루에 1만 파운드를 받더라도 저 감옥에서 10년을 더 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환희로 가득 찬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
“난 지금 편지를 쓸 수 없을 정도로 몹시 들떠 있다네.나는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어! 단언컨데 인간에게 최고의 순간을 아무 일도 안 하고 쉬고 있을 때야.그 다음은,그래.아마도 좋은 일을 하는 거겠지.”
그 후 지루한 세월이 2년이나 흘렀다. 램의 생각은 그 사이에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그는 단조롭기는 했지만,’매일 정해진’ 그 사무적인 일이 자기에게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예전에는 친구였던 시간이 지금은 적이 되었다. 그는 다시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일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일하는 것보다 더 나쁘더군,정신이 내 자신을 갉아 먹고 있어. 가장 나쁜 음식이지.
세상 일에 전혀 흥미를 못 느끼겠어….. 인생에 절망한 인간에게는 천국에서 은총의 비가 내리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산책뿐, 그것도 이젠 너무 걸어서 지쳐 버렸어. 나는 시간을 말살하는 흉악한 살인자야. 내 앞에는 지금 어떤 길도 보이지 않아.”

지식은 남에게 뺏기는 일이 없다.

스콧은 피로를 모르고 일하는 사라이었다. 부지런함이 실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스콧만큼 잘 깨달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스콧은 근면이 사회에 보탬이 되고 행복을 가져오는 중요한 수단임을 다음 편지에 잘 나타내고 있다.
“노동이란 신이 모든 지위의 사람에게 부여한 계약임을 자넨 아직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 농부들이 땀 흘리며 얻은 빵은 말할 것도 없고, 부자들이 권태감을 잊고자 즐기는 사냥에 이르기까지 몸을 움직이지 낳고 얻은 것은 아무 가치도 없어.쟁기로 땅을 경작하지 않으면 보리가 자랄 수 없듯이,일하지 않으면 지식은 사람의 마음속에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없지. 하지만 실제로 이 두 가지 사례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어. 보리의 경우에는, 그 때의 조건과 환경에 따라 씨앗을 뿌린 사람이 반드시 곡식을 수확한다고는 할 수 없어.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는,사고가 나든 불행이 닥쳐오든 공부해서 얻은 지식을 남에게 뺏기는 일이 없어. 스스로 획득하고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는 풍부한 지식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사용되지.그러니까 지식을 얻도 습득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야. 시간은 값지게 써야 해. 젊을 때는 발거움도 가볍고 순수하기 때문에 지식을 흡수하기가 그만큼 쉬워. 하지만 노력을 게을리 하면 봄과 여름은 의미 없이 지나가 버리고 결국 가을에 수확할 거라곤 쭉정이뿐.그리고 늙어서 맞이하는 겨울은 누구에게도 존경받을 수 없는 황량한 삶이 될 뿐이야.”

현대의 지식이란

현대 사회는 지식은 무엇을 의미할깨? 라고 깊이 생각해 본다
지식보다는 지혜롭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삶는 것이 더 현명한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왜냐하면 요즘은 AI,챗GPT등 지식의 홍수에서 살아가는 세대다. 휴대폰만 있으면 거의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머리에 넣지 않아도 손안에 지식이 너무 넘쳐 흐르는 시대를 살아간다. 심지어는 언어 또한 동시 번역을 통해 소통이 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지식을 얼마나 나에게 맞게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가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보여진다.
옛날의 노동은 몸을 움직여서 생산된 것으로 부를 축척하곤 했지만 지금은 버튼 몇번으로 부를 축척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노동의 개념이 달라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나태해 지지 않기 위해 많은 것에 도전하는 것은 참으로 칭찬할 만 하고 이것들이 나를 권태기로 부터 탈출시켜준다고 보여 진다. 나 또한 근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많이 나태해 진것 같아 안타깝다.
시대에 맞춰 부지런함을 떨어보자

한 가지 일을 잘하면 만사에 응용할 수 있다.

거센 파도는 1등 항해사의 일부분입니다.

한 가지 일을 잘하면 만사에 응용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각기 꿈꾸는 삶이 있다.그 삶은 특별한 재능을 가졌거나 특별히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다스리고,성실하고 끈기있게 자기가 맡은 일을 끝까지 완수사는 사람,그런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삶을 누릴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삶이 가장 인격적인 삶인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하게 되면 행동력,자제력,집중력,적응력,끈기,대인능력이 싹트고 단련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한 가지 일에 끈기있게 도전하다 보면 그 사람만의 전문기술은 더욱 발전되어 인정받는 사회인이 된다. 그 결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재빨리 대처하고 해결하는 능력과 기술까지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일은 인간을 발전시키는 살아있는 법칙이자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법칙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주어진 인생을 의미 있게 열심히 살고자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무건운 짐이자 가혹한 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명예이면서 긍지이기도 하다. 일하지 않고는 어느 것도 성취할 수 없다. 인간 안에 내재된 재능은 일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고 문명은 노동의 산물이다. 일하기를 그만 둔다면 아담의 자손들은 순식가에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되고,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열심히 일해야만 얻어지는 삶의 기쁨

일하지 않고 놀면서 거저 얻으려는 사람에게는 화가 따르게 되어 있다. 녹이 튼튼한 쇠도 부러뜨리듯이 게으름은 인간과 국가를 좀먹는다. 페르시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대왕은 그 국민들의 생활상을 보고 “쾌락을 추구하는 생활만큰 천박한 것은 없으며,일하면서 날을 지새우는 삶만 큼 존중받아 마땅한 것도 없다. 그들은 그것을 전쳐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탄식했다.
영국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 무렵,로마 황제 세베르스는 요크셔 주 요크에 있는 르란피앙 언덕 기슭의 풀숲에 쓰러져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부하에게 다음과 같은 최후의 말을 남겼다.
“일하는 거야.”
로마군의 지휘관이 사기를 잃지 않고 권위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평범한 전원생활이야말로 시민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삶으로 여기고 있었다.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는 그 내용을 기록했는데.승리를 거둔 로마군 지휘관들은 부하와 함께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낫과 쟁기를 드는 생활로 돌아갔다고 쓰고 있다.
“당시에는 장군이라고 해도 자기 손으로 땅을 일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월계관을 쓴 쟁기를 쥐고,승리의 기쁨과 영광을 거머쥔 농부의 손에 경작되는 땅의 기쁨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하는 것은 수치이며,맹목적으로 타인에게 순종하는 일읻.”라고 천시하게 된 것은,모든 분야에서 많은 수의 노예를 부리게 되면서부터이다. 로마의 지배계층들은 순식간에 이하는 것을 망각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로마 제국의 붕괴는 늦든 빠르든 닥쳐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으름은 악마가 기대어 쉬는 쿠션

게으른 습관은 미개인과 폭군이 가진 특질읻.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일하지 않고도 노동의 대가를 얻기를 원하다. 이 소망은 전 세계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으로,제임스 밀 등은 “애초에 인간 사회에 정치가 행해지게 된 것은 이 소망이 사회 일반의 이익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라고 주장했을 정도이다.
게으름은 인간을 타락시키고 국력을 저하시킨다. 게으름뱅이가 사회적으로 이름을 알린 예는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게으름뱅이는 언덕을 애써 오를 노력도 하지 않고 고난에 맞서려고도 하지 않는다. 결곡 평생 동안 계속해서 실패를 반복할 테고 무엇을 하든 성공하지 못할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타인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어두운 얼굴로 불평만 늘어놓는 애처로운 인각이고,사회의 짐이며,방해꾼이고,걸림돌일 뿐이다.
새뮤얼 존슨은 탐험가 버튼이 쓴 책을 읽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그래서 평소보다 2시간이나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버튼이 쓴 책 속에는 “사람이 우울해지는 원인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데 큰 원인이 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생명을 단축시키며,사악의 온상이고,모든 재앙의 근원이며,7가지 대죄의 하나이고,악마가 기대어 쉬는 쿠션이며,배개이고,믹음직한 후원자이다.게으른 개의 털은 불결하고 온몸은 피부병 투성이다. 게으른 사람이 이와 같은 상태를 피할 수 있을까?”

게을리 살지 말라

“몸을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하는 것보다 정신이 나태해지는 것이 훨씬 더 두려운 일이다. 머리가 좋은데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병이다. 나쁜 병이자. 정신을 좀먹는 녹이고,지옥 그 자체이다. 고인 웅덩이에 벌레가 생기고 물이 썩듯이 게으름뱅이의 머릿속에 들어찬 나쁜 생각은 온몸으로 가득 퍼진다. 영혼마저 악마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좀더 과감하게 표현해 보자. 예를 들어 별로 부자는 아니지만 비슷비슷하게 만족하며 사는 게으른 사람들에게,넘칠 정도의 물건과 워하는 만큼의 행복과 만족이 주어졌다고 하자. 게으른 습관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은 언제까지나 행복할 수만은 없다. 마음도 몸도 병든 채 변함없이 피로에 지친 표정으로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툭하면 눈물 흘리고,한숨을 내쉬며,불행을 한탄하고,시기와 질투심으로 끊임없이 세상을 탓하고 원망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어디론다 사라녀 버리거나,죽어 버리거나,환상의 세계로라도 빠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버튼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상냥한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다음 말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찿아내기 바란다.
고독과 게으름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고독하게 살지 말라.게으리게 살지 말라.”

게으름은 정신을 소모시킨다.

곡식을 심어 열매를 거둘 수 없다면,게으름뱅이가 걷는 인생길은 온통 가시덩쿨로 엉키게 될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두뇌와 신체 기능이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건강과 활력의 기쁨을 잃는 것은 몸을 너무 써서가 아니라 게을렀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 정신적인 피로와 고민이 생길지 모르나 게으름 피울 때의 정신은 에너지가 가장 불필요하게 소모된다. “병에는 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라고 생각하는 현명한 의사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여유 있는 시간이다.”라고 마샬 홀 의사는 경고하고 있다. 프랑스의 마엔느 대주교는 “사람의 마은은 맷돌과 같다.밀을 넣어 갈면 가루가 된다.그러나 밀을 넣지 않고 계속해서 돌리면 마침내는 자신만 갈려지고 만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열심히 일한 뒤에 얻는 여유의 기쁨

게으른 사람은 변명이 많다. 게으른 사람들은 일하기 싫은 구실을 잘 댄다. “난 몸이 약해서”라거나 “저 언덕을 넘기가 힘들어서”라거나. “해봤지만 이미 실패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하고 싶지도 않아.노력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어”라고 말한다.
‘전혀 힘들이지 않고 뭔가를 얻고 싶다.’는 소망은 나약하다는 증거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되었든 간에 성공하려면 행동력을 길러야 하고 그 행동력은 일을 통해서만 길러지는 것이다.
여가도 일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 아니면 진정한 즐거운을 맛볼 수 없다. 일은 어디에나 있고 일하면 당연히 여가가 주어진다. 그러나 일하지 않고 얻은 여가는 맛있는 음식을 과식하는 것과 다름없다. 일이 없거나,혹은 일이 있어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똑같이 따분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부루주 감옥에 여덟 번이나 수감된 40대 남자는 오른 팔에 다음과 같은 문신을 새겼다.
그 문신의내용은 세상의 모든 게으른 자들의 좌우명과 같은 것이었다.
“과거는 나를 속이고,현재는 나를 괴롭히며,미래는 나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일에 관한 나의 생각

이 책을 읽고 게으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게을러러 진 것 같아 매우 걱정이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난 일 복이 많은 것 같다. 어딜 가도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지 게으르고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
명문대를 나와도 일을 하는 스킬은 다른 것 같다. 지방대를 나오고 고등학교를 나온다고 해서 일을 잘 못할 것이라는 평견을 버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을 외우거나 이런 것은 머리의 지능의 수준차이는 있을 지라도.
나랑 같이 일하는 후배 직원이 있었는데 그 후배는 나름 괜찮은 대학을 나왔는데 일을 잘 못하는 것 같았다.
평소에 상사로 부터 심한 질책도 수시로 받는 것 같아 안타까운 적이 있었다.
누나의 식당에서 일을 하는 직원들 중에 누구는 한 번 말하면 금방 알아듣고 적응하는 반면에 누구는 몇번을 말해도 못 알아들어서 매우 힘들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결론은 공부하는 머리하고 일하는 머리 즉 일머리 하고는 다르다고 말을 많이 한다. 우리는 공부머리가 아니라 일하는 머리가 더 좋아야 될 것 같다.
내 주위에 박스 상자를 주워서 고물상에 파는 분들을 주위에서 여럿을 보곤한다.
이 글에 비추어 볼때 그들은 과연 젊었을 때 게을러서 지금 폐지를 줍고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나도 게을러지면 나의 미래 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곤한다.

“과거는 나를 속이고,현재는 나를 괴롭히며,미래는 나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이 말처럼 미래는 나를 공포로 몰아 넣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살고 있으리라 본다
그렇기에 미래에 대한 준비를 나름대로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요즘시대 같으면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도 버거운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과연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해본다.
게으름은 나의 미래를 좀 먹는 것과 같은 것임을 알고 게으르지 말고 조금씩 나의 미래를 준비하는 현명한 삶을 살아가야 됨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