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삶을 벗어나는 방법

어차피 삶은 문제와 고통의 연속이다.

삶은 고해다.

이것은 위대한 진리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 중의 하나다.
이것이 위대한 진리인 까닭은 진정으로 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삶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면 즉 진정으로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삶은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된다.
일단 받아들이게 되면 삶이 힘들다는 사실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힘들다는 이 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대신에 드러내 놓고 또는 은근히 자신이 지닌 어려움 걱정 문제가 엄청나다고 끊임없이 불평한다.
그들은 마치 삶은 기본적으로 편안한 것처럼 다시 말해 삶은 응당 편안해야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이 특별히 자신이나 가족 부족,계급,국가,인종 혹은 인간에게만 들이닥친 유례 없는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내놓고 또는 은근히 발설한다.
나 자신도 그래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불평이 어떤 것인지 안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저 불평하고 싶은 걸까
우리 아이들에게 이 문제들의 해결 법을 가르치고 싶은 걸까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도구는 훈육이다.
훈육 없이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부분적인 훈육으로는 일부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
온전한 훈육이 있어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삶이 힘들다는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말한다.
문제가 생기면 어떤 문제냐에 따라 절망 비애 슬픔 외로움 죄책감 후회 분노 두려움 걱정 고뇌 좌절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감정들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불편해진다.
종종 아주 불편해지고 육체적인 통증과 같은 고통을 느끼며 그 고통은 때로 가장 심한 육체적 고통과 맞먹는다.
우리가 문제를 문제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건이나 갈등이 야기하는 바로 이 고통 때문이다.
삶은 끊임없이 문제를 연속적으로 배출하고 있으므로 삶은 항상 힘들고 기쁨과 동시에 고통으로 가득차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삶의 승패를 가르는 것이 이 문제들이다.

벤저민 플랭클린의 말대로 고통을 느껴야 배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명한 사람들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은 문제를 환영하며 실제로 문제가 주는 고통을 환영하는 법을 터득하려 한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현명하지 못하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리들 거의 대부분은 당면한 문제를 두려워하면서 피하려든다.
문제를 질질 끌면서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란다.
문제를 무시하고 잊어버리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심지어는 문제를 잊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 약을 복용하여 결국에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마비시킴으로써 고통을 안겨준 문제를 잊기도 한다.
우리는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다는 주면에서 맴돌려고 한다.
문제 안에서 괴로워하기 보다는 문제 밖으로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
문제와 이에 따르는 고통의 감정을 피하려는 이러한 성향이 정신병의 근본 원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든 작든 이러한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크든 작든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다.
정신적으로 완전히 건강한 상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문제와 이에 따르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상당히 멀리 가버린다.
쉬운 길을 찾기 위해서 분명히 건전하고 지각 있는 모든 방법에서 아주 멀리 벗어나 안주할 수 있는 환상을 최대한의 공력을 들여 만들어낸다.
때로 이러한 현상은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 되기도 한다.
칼 융의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표현대로 라면 신경증 즉 노이로제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피하려고 했던 그 고통보다 피하려는 마음이 더 고통스러워 진다.
신경증 자체가 가장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통과 문제를 피하려고 시도하는 동안 신경증은 더욱 더 쌓인다.
그런데 다행히 어떤 이들은 신경증에 대겨할 용기를 지니고 있어서 대체로 정신분석가의 도움을 받아서 정당한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나간다.
어떤 경우든지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정당한 고통을 피하려 하면 역시 문제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성장을 놓치게 된다.
우리는 만성적인 정신병 상태에서 더 이상 성숙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치유되지 않으면 인간의 영혼은 시들어간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과 자녀들에게 정신적,영적으로 건강해지는 법을 늘 가르치도록 하자.
고통을 겪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으며 문제에 직면하고 그에 따르는 고통을 겪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자는 뜻이다.
이미 나는 훈육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적인 도구라고 말했다.
이것이 괴로움을 견디게 해주는 테크닉이고 문제가 주는 고통을 겪으면서 끝까지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다.
그 과정 중에 우리는 배우고 성장한다.
우리 자신과 자녀들을 훈육 시킨다는 것은 괴로워하는 법과 동시에 성장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의미다.
훈육은 괴로움을 감당하게 하며 문제로 인한 고통을 건설적으로 겪게 한다.
그렇다면 훈육이라는 이 도구는 과연 무엇인가.
훈육에는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책임을 지는 것,진리에 대한 헌신,균형잡기,이렇게 4가지가 있다.
이것은 복잡한 도구가 아니라서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훈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아주 단순해서 거의 모든 아이들이 열 살이 될 때쯤에는 사용법에 능숙해 진다.
그런데 대통령이나 왕과 같은 힘 있는 사람들이 종종 이 단순한 사용법을 잊어버려 삶을 망치기도 한다.
문제는 이 도구의 복잡함이 아니라 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이 도구들은 고통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피하고자 한다면 이를 사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각각의 도구들을 분석해 보고 그것을 사용하려는 의지 즉 사랑이라는 것을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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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통해 삶의 고통,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다.
나는 삶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떤 방법으로 대처를 했는가? 라고 반문해 보고 나의 대처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스캇펙의 글처럼 나 또한 그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회피했던 순간들이 대부분 이었던 것 같다.
어차피 고통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삶은 평탄해야 하고 힘들지 않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 같다.
정반대로 고통이 동반된 삶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면서 살아내는 능력이 진짜 삶인 것 같다.
이 글을 보면서 독자들도 자신의 삶의 문제와 고통을 지혜롭게 해쳐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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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캇 펙] “어떻게 내 삶은 문제와 고통의 연속일 수 있을까? 라며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인생의 패스포트를 가져라

탁월한 재능이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탁월한 재능을 지닌 천재도 흔하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하더라도 정직하지 못하면 즉 진심이 없으면 신뢰할 가치가 없다. 진심이야말로 세상으로부터 존경받고 신뢰받는 요인인 것이다. 진심이야말로 세상으로부터 존경받고 신뢰받는 요인인 것이다. 진심은 모든 미덕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진심은 그 사람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 모든 일에 공평한 자세를 잃지 않고 언행이 일치하는 진실한 사람은,말과 행동 하나하나에도 빛을 발한다. 진심은 곧 신뢰를 의미하고,남에게 “저 사람은 믿어도 돼”하고 확신을 갖게 하는 길이다.
“저 사람은 믿을 만한 인물이야.그가 알고 있다고 할 때는 정말 알고 있는 것이고,뭔가를 하겠다고 말할 때는 반드시 실천하는 사람이지”라고 인정 받았을 때,이미 그 인물은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신뢰는 사람들의 존경과 신용을 불러모으기 위해 꼭 지녀야 할 패스포트이다.

양식보다 나은 지혜는 없다.

일상생활에서나 직업에서나 지성은 인격만큼 도움이 되지 못하고,두뇌 활동은 마음의 활동만큼 효과가 없다. 비범한 재능도 자제력과 인내력,판단력에 입각한 신념에는 미치지 못한다.
개인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하려면 어디에 치우침이 없는 공평한 양식을 익혀 두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풍부한 경험과 선의에서 나온 양식은 지혜가 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적인 재능을 한껏 발휘하여 타인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그들은 어는 상황에서든지 자제력을 잃지 않는다. 또한 표면에는 나타나지 않는 어떤 잠재적인 힘,즉 자제력에 따라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목적에는 사심이 없고 결백하며 타인에게 자기 생각을 억지로 강요하지도 않는다.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명성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진가를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다. 제 3자에 의해 잘못된 평가를 받거나 오해를 사기도 한다. 불행한 일을 겪거나 역경에 놓일 때도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인내와 노력으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신망을 사는 날이 반드시 오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사람의 인격은 크고 작은 일들을 기준을 세워 처리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특히 삶의 어려운 시련과 역경을 통해 닦여진 인격은 더욱 빛을 발한다. 싫든 좋든 인격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실처런 가느다란 머리카락도 그늘을 만들 듯 아무리 시시한 일이라도 반드시 결과를 낳느다.
행동,사고,감정은 모두 그 사람의 성격과 습관,판단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고,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이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항상 변화하면서 성장하는 것이고, 향상하는 면도 있으면 추락하는 면도 있기 마련이다.
작용과 반작용은 서로 대등하다는 역학의 법칙은 도적에도 적용된다.선행은 베푼 당사자에게 작용도 반작용도 미친다. 악행도 마찬가지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범을 보인 상대에게도 어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작용한다. 그러나 인간은 환경의 창조주도 아니지만 노예도 아니다. 자신의 자유 의지로 약보다 선을 선택하고 창출하면 행동해 나갈 수 있다.
어떤 성지자는 “자기 자신보다 더 자신을 상처 입히는 것은 없다. 계속 참고 견뎌온 결점은 결국 몸에 배어버린다.
자신의 결점에 대한 고민 이상으로 심각한 고민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최고의 인격은 노력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끊임없이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자제력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망설이거나 주저하거나,혹은 일시적으로 포기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온갖 장해나 유혹과 과감하게 맞서 물리쳐야만 한다. 불굴의 자세와 고결한 정신만 있으면 최후의 승자느 바로 당신이 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높은 인격을 갖도록 노력하고 발전하고 향상되도록 노력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용기가 되고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자신을 이끌어줄 위대한 인물을 본보기로 삼는 것은 좋지만 이상적인 인물상을 막연히 칭송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그 높이까지 도달하겠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물질적으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고,세상의 명성이 아니라 진정한 명예를 추구하며,학문의 이상을 추구하기보다는 덕망 있는 인간이 되고,권력을 등에 업고 권위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정직하고 성실하며 고결한 인격을 목표로 삼아야만 한다.
인격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향기처럼 자연스럽게 스며 나온다.그리고 신념과 고결함과 지혜로 인해 그 사람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이상적인 것은 인격이 종교,도덕,이성을 수용하여 생생하게 약동하는 개인의 의지 자체가 될 것이다.
신중하게 나아가야 할 길을 선택하고,명성보다 의무를 중요히 여기며,세상의 평판에 좌우되지 않고,양심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하면서,열심히 그 길을 추구해야 한다. 타인의 개성을 존중함과 동시에 자신의 존재와 자립을 지켜야 한다.
거기에다 도덕심을 관철시킬 용기를 가지고 시대와 선구자의 지혜와 경험을 믿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물레방아를 돌리는 힘

우리는 인격형성 과정에서 훌륭한 모범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자신의 정신에서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는 지구력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힘이야말로 우리에게 자립의 정신과 활력을 주며,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인생을 헤쳐나가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에 이르려하지 않는 사람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다.”라고 엘리자베스 왕조의 시인 다니엘은 말한다. 인격의 뿌리가 되는 의지력,줄기인 지혜-실제로 도움이 되는 이 두 가지 힘이 없으면 인생은 애매모호해지며 돌리면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그저 고인 웅덩이와 같다.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높은 목적을 추구하며,인격이 활동을 시작한 그 때,사람은 의무에 눈 뜨고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용감하게 목적을 달성하고자 다짐하게 된다.
그 때야말로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발견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다운 인간의 이상상으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인격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의 행동은 타인의 인생과 행동 속에서 되풀이된다. 말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행동이 되어 나타난다.
이리하여 루터의 말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트럼펫의 울림처럼 독일 전체에 울려 퍼졌던 것이다. 독일 정치가 리히터가 말했듯이. “루터의 말이 있는 것만이라도 전쟁은 이긴 것과 같다.”루터의 삶은 조국의 구석구석에까지 침투되어 현대에 와서도 독일인의 국민성 안에 생생하게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마음이 따뜻하다.


청렴결백하고 양심적인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라도 재앙의 근원이 될 뿐이다. 이런 타입의 인간에게서는 지구를 멸망시키고자 선택한 악인들과 세계를 유린한 야만스러운 정복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와 정반대되는 곳에는 숭고한 정신을 가진 열정적인 인격자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들은 일에서도 사회적인 행동면에서도 공평한 판단을 가지고 의무를 첫 번째 원칙으로 삼아 행동한다. 또한 가정생활에서도 거짓 없이 깨끗하다.가정에서도 한 나라를 통치하는 것처럼 항상 정의가 기본으로 되어 있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관대하며 배려할 줄 안다.
정치에도 관여했던 극작가 셰리든은 선견지명에는 약했지만 마음이 넓었기에 남에게 상처 입히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다음 말은 그를 잘 평가하고 있다.
“한창 논쟁 중에 그기 보이는 위트는 날카라운 지적을 보이면서도 온화하고,그 끝에는 항상 따뜻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정치가 폭스도 이 같은 인격의 소유자였다. 항상 변함없는 그의 진심과 호의가 사람들의 공감과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의 명예와 관련된 일에는 그는 항상 곧 바로 마음을 움직였다.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상인이 찾아와 약속어음을 보이며 지불을 요구했다. 마침 그 때 폭스는 돈을 계산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상인은 그 돈으로 지불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폭스는 “아니,그럴 수 없네.명예를 담보로 나는 셰리든에게 이 돈을 빌렸어.만약 내가 갚지 않는다면 그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말걸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상인은 “좋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명예를 담보로 잡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어음을 눈앞에서 찢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폭스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을 믿어준 상인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하고는 돈을 지불했다.
“셰리든에게는 나중에 주리고 하지.자네에게 우선권이 있으니까.”

세월과 함께 마음에 힘이 넘치는 삶

인격자는 야심적인 사람이다. 양심에 따라 일하고,말하며,행동한다.
인격자는 또한 경건한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질을 갖춘 사람은 남녀를 막론하고 매우 품위가 높으며,숭고한 인간상을 갖고 있다. 즉 시대와 함께 전승되어 온 여러 가지 것 – 높은 이상,순수한 사상,높은 목적,과거의 위대한 인물,그리고 고결한 마음으로 일하며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다.
경건한 마음은 개인과 가정,그리고 국가의 행복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다. 경건한 마음이 없으면 이 세상에는 신앙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을 신뢰하거나 신을 믿을수도 없다. 사회의 평화와 진보도 기대할 수 없다. 경건한 마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고 나아가 우리와 신의 사이를 잇는 끈이 되는 종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숭고한 정신을 지닌 자는 모든 일을 경험으로 바꿔 버린다.경험과 이성이 결합한 결과로 행동이 탄생된다.그는 큰 사람으로 둘러싸여 행동한다. 뭔가를 기대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명예를 중요시 여기고 불명예를 수치스러워한다. 사고방식이 일관되기 때문에 항상 변함없는 태도로 자기를 억제하며 행동한다. 이성은 자연이 전수해 준 최고의 선물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인다.그에게는 진리가 여신이고,그는 진리탐구의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태양과 같은 존재다.세상 사람들은 그의 순수함에 이끌려 올바른 길을 걷는다. 그는 현인을 친구로 두고 있으며,중용을 지키고,타락한 인간을 바로잡는 약이 된다.
시간은 그와 함께 흘러간다. 육체적으로 쇠약해서가 아니라 갈수롤 마음에 힘이 솟는 것으로 나이 먹는 걸 느낀다. 이리하여 그는 고통을 모르는 자,족쇄를 풀고 감옥에서 구출해주는 자로서 모든 사람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시인 토머스 오버베리의 말이다.

거센 파도는 1등 항해사를 만든다. 새뮤얼 스마일스지음 일부 내용임




인생의 원동력을 찾아라

인격이란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 중의 하나이다. 고결한 인격에는 인간으로 갖춰야 할 이상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누구든 부지런함,청렴결백함,고매한 지성,건전한 사상 등의 훌륭한 자질을 지닌 인물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어 있다. 우리가 이런 인물의 말을 믿고 인품을 신뢰하고 나아가 본받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세상의 모든 선은 그들에 의해 그 가치가 높아진다. 이러한 인물이 한 사람도 없었다면 세상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비범한 재능은 세상으로부터 상장을 받게 되어 있지만,훌륭한 인격은 존경을 받게 된다. 전자는 지적 능력의 산물이지만 후자는 정신적인 힘이다. 긴 안목으로 보면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정신이다. 천재는 뛰어난 지능을 무기로 사회에 진출하는 한편 인격자는 양심을 무기로 삼는다. 세상은 천재를 표창 받을만한 사람으로 볼 뿐이지만,인격자의 삶은 본받으려고 애쓴다.

인생이란 보통의 의무를 다하는 것

위대한 임물은 모두 예외적인 존재들이나 위대함 그 자체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활동범위가 상당히 한정되어 있어 위대한 인물이 될 기회는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역활을 있는 힘껏 열심히 수행하고,자신의 재능을 남용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그러한 삶도 결코 위대한 인물의 삶에 뒤지지 않는다.
누구나 의지만 있다면 사소한 일도 진심을 다해 성실한 자세로 일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각기 의무를 다해야 하고 또 그것이 인생이다.
그처럼 맡은 바 의무를 다하는 것이야말로 인생과 인격을 가장 높은 차원에서 표현하는 길이다. 거기에는 영웅적인 화려함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다사의 일반인은 평범한 매일을 보낸다. 주어진 의무를 받아들이는 의식은 삶에 대한 의욕을 높여주는 것과 동시에 매일 일상적인 일을 처리하는 데도 큰 버팀목이 되어 준다.
인생의 중심은 흔하고 평범한 의무지만 그 의무를 다하는 데 있다. 미덕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다. 이러한 미덕에는 무엇보다 가치가 있고 영속성이 있다.
“화려한 미덕이 중심인 인간은 타락성과 나약함 등을 반드시 가지고 있다.”라는 정치가 버크의 말은 정확히 핵심을 찌르고 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하고자 할 때 작가,강연가,정치가라고 하는 상대의 ‘사회적 위치’를 기준으로 하기보다,그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보이는 태도나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생활의 의무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쪽이 더 정확한 답을 도출해낼 수 있다.
이러한 의무감은 대부분 보통 사람의 일상생활에 일어나는 일을 처리할 때 필요하다.그와 동시에 훌륭한 인격자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재산도 토지도 교양도 권력도 없지만 강한 의지와 성실함과 의무감과 풍요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인생의 목적을 이루고 인격을 쌓는다. 훌륭한 인격 외에는 가진 게 없지만 왕관 쓴 왕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세계를 군림했던 인물도 결코 적지 않다.

학문도 부도 성실성을 이길 수 없다.

지적 교양은 순수한 인격이나 훌륭한 인격과 반드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신약성서에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지성에 호소하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 “한 줌의 신앙심은 태산만큼의 학문에 버금간다.”라고 시인이자 성직자인 조지 하버드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학문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학문적 지식을 갖고 있어도 도덕적인 선과 양립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위가 있는 사람이 학문의 노예가 되고,지위가 없는 사람이 훌륭한 행동을 보이는 것처럼,학문적 재능이 도덕적으로 하위 인격과 결부되는 예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미술,문학,과학 등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어도 성실성,미덕,의무간,정직성 면에서는 가난하고 배움 없는 농민보다 뒤지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월터 스콧이 출석했던 강연회 석상에서 어떤 사람이 “문학적 재능과 업적 두 가지만이 무엇보다 인정받고 상 받아 마땅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놓았다.그러나 스콧은 다음과 같이 반론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만약 지금 당신 생각이 진리라면 이 세상은 아주 천박해졋을 거요!나는 많은 책을 읽었고 유명하다는 교양인들의 연설도 들었고 그들과 대화도 나눴소.나는 당신에게 이 말을 분명히 해두고 싶소.나는 성서에 나오는 어떤 말보다 더 가슴 울리는 목소리를 배움이 없는 가난한 사람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소.고통과 갈등에 시달리면서도 용기로 가득 찬 영혼이 얼굴을 내밀 때,주변의 많은 친구와 이웃에게 소박한 의견을 말할 때,그 말 하나 하나에 감명을 받았단 말이오.늘 풍요로운 마음을 기르고자 노력하는 것에 비하면 그 밖의 것은 모두 하잘 것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는 인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필요치 않다. 아니 오히려 인격을 왜곡시키고 추락시키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부와 타락,사치와 악덕,이것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목적의식이 약한 사람,자제력이 부족한 사람,감정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부를 손에 넣는 것은 인격에 매우 치명적이 될 뿐더러 유혹의 함정에 지나지 않는다. 즉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엄청한 악영향을 미치는 원인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반하여 적당한 빈곤함과 최고의 인격은 충분히 양립될 수 있다. 재산이라고 하면 부지런함과 조심성과 정직한 기질밖에 갖고 있지 않아도 진정한 인간다움의 면에서 보면 누구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루터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유언장에 있는 대로 ‘1마르크이 금화도 감정서가 딸린 귀중한 주화도’ 후손에게 남기지 않았다. 그는 한 때 매우 가난했기 때문에 선반공과 정원사와 시계수리공을 일을 하면서 하루 하루의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땀 흘리며 일했던 바로 그 때 그는 독일의 모든 왕족들보다도 훨씬 강한 도덕심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인격은 재산이다. 또한 가장 숭고한 재산이다. 보편적인 선의와 사람들의 존경으로 둘러싸인 소유자이다. 여기에 투자하고자 하는 사람은 소위 이득은 없을지 몰라도 존경과 명성이라는 보수는 정당한 수단으로 틀림없이 받게 될 것이다 .근면함;선량함,미덕 등의 훌륭한 자질이 높이 평가받고,세상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훌륭한 인물이 누구에게나 보탬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나 세울 수 있는 정신의 왕국

우리는 모두 소박하고 진지한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 목적이 자신을 옳게 평가하고 분명한 자각에 근거한 정당한 규율위에 세워졌다면 일생 동안 큰 도움이 된다. 인생에 목적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올바른 길을 걷고,힘을 얻으며,왕성한 행동력을 발휘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이 부자나 위인이 되거나,높은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누구나 성실하게 살아갈 의무는 있다.”고 벤자민 루드야드도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항상 성실함과 동시에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진리와 고결함과 정직함을 간직한 채 목적을 이뤄야만 한다.
신념이 없는 인간은 불어오는 바람에 바다 위를 이리 저리 떠도는,키도 나침반도 없는 배와 다름없다. 이는 법률과 규칙과 질서, 분별이 없는 것과 같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크테토스는 언젠가 로마로 가는 저명한 연설자의 방문을 받았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 남자가 겸손한 척하는 태도가 못마땅하여 에피크테토스는 냉랭한 얼굴로 이렇게 맞았다.
“자네는 진심으로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허점을 찾으러 온 거 아닌가?”
“그게 어떻단 말입니까?당신과 같은 일을 하다가는 평생 변변한 그릇 하나도 땅 한 평도 없는 가난한 사람으로 살 수 밖에 없을 텐데요.”
그러자 에피크테토스는 대답했다.
“난 그런 것들은 워한 적도 없어.그리고 무엇보다 자네는 지금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야.후원자가 있든 없든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자네에게는 그것이 큰 문제로 보이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지금 나는 자네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롭네.시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내 알 바 아냐. 나는 어느 누구한테도 아부할 생각은 없으니까.자네가 가지고 있는 돈과 은그릇 대신에 내 재산은 바로 그걸세.자네는 은그릇을 가졌지만 신념과 이상과 탐구심은 허접한 수준이야.나에게 정신은 곧 왕국이지.그리고 그것은 자네가 구원받을 수 없는 게으름 대신에 내개 항상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 준다.자네는 전 재산을 긁어모아도 아직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지금 이 대로로도 충분해.자네의 욕망에는 한계가 없지만 나의 욕망은 항상 충족되어 있거든.”

거센 파도는 1등 항해사를 만든다. 새뮤얼 스마일스 지음 일부 내용

인생을 살아나갈 실무능력을 익혀라

거센 파도는 1등 항해사를 만든다. 새뮤얼 스마일스 지음 일부 발췌

어떤 격언을 교훈으로 삼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스콧은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역사학자 로버트슨은 겨우 15세 나이에 “지식을 습득하지 않은 인생은 죽음과 같다.”는 교훈을 선택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의 좌우명은 “항상 열심히 일하라”였고,프랑스의 생물학자 라세페드가 가장 좋아하는 격언은 “살아 있음은 곧 관찰하는 일”이었다.
일은 인격형성을 돕는 교사의 역활도 가지고 있다.일의 결과가 형태로 남지 않더라도 일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기에 아무것도 안 하는 동면상태보다는 낫다. 적어도 자신의 소질을 발전시키고 성공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하는 습관은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가르쳐준다. 시간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게 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 시간을 뜻 깊게 사용할 방법을 익히게 해준다. 그리고 실제로 훈련을 쌓아서 평생을 불태워도 좋을 직업을 갖게 된다면 1분 1초도 헛되이 쓰는 일은 없다. 이렇게 얻어진 여가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진한 행복감을 안겨다 줄 게 틀림없다.

유능한 주부는 유능한 커리어우먼

“게으름뱅이는 쓸모없이 시간만 죽이는 인간이라면,근면한 사람은 시간에 생명과 도덕과념 불어넣어 실제 결과로서 나타내 보이며,그것도 시각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통해서도 보이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근면한 사람은 시간을 순서대로 잘 정리하고 혼을 불어넣어,자칫하면 날아가 버릴 시간에 불멸의 정신을 갖게된다. 그렇게 방향이 정해진 에너지가 순서대로 정리되면 시간은 순종적이고 충직한 하인이 된다. 시간이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시간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된다. 연월일은 사람이 인생에 부여받은 임무를 기록하는 표시로서 세계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것이다. 아니,시간 자체가 지상에서 모습을 감출 때까지 존재할 것이다.”라던 시인 콜리지의 말은 진실이다.
일에 몰도하는 것은 이와 같은 조직적인 방법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르쳐 주기 때문에 인격 형성에도 매우 효과적이다. 일에 필요한 능력은 매일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 타인과 적극적으로 접촉함으로써 갈수록 더 발전해 나간다. 그 일이 가정생활이든 국가 운영이든 마찬가지다.
또한 유능한 주부는 동시에 유능한 커리어우먼이어야만 한다. 자잘한 가사를 훌륭히 관리하고 지갑을 단단히 조여 계획을 세우고 모든 가사를 자신이 정한 규칙에 따라 현명하게 처리해야만 한다. 능률적인 가정관리란 근면과 조직적인 방법,도덕적 훈련,신중함,예측,실무능력,상대를 꿰뚫는 통찰력,그리고 통솔력을 의미한다. 이것들은 어떤 일이든 잘 해내려면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인생을 위한 실무능력

실무능력은 여러 분야에서 활용된다. 실무능력이란 일을 처리하는 기민성과 일상적인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한 능력은 가정관리와 사업 경영,장사와 무역,혹은 국가 정치에도 필요하다.
여러 분야에서 생기는 이러한 문제를 재빨리 처리하는 훈련은 실생활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즉 근면함과 주의력,자기 희생,판단력,인내,그리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훈련은 문학적 교양을 쌓거나 철학적 사색에 몰두하는 것보다 훨씬 충실한 인생과 행복을 약속해 준다.
왜냐하면 긴 안목으로 보면 실무능력은 지성과 연결되며,기질과 습관은 재능으로 변화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은 쉼 없이 주의력을 발휘하고 신중하게 경험을 쌓아야만 얻어지는 일종의 교양임을 덧붙여 둔다.
뛰어난 대장장이가 되기 위해서는 평생 동안 쇠를 단련해야만 한다. 실력 있는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실무를 배워 실천해야 한다.
뛰어난 실무능력의 소유자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 스콧의 특징이었다.
“아무리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도,실생활에서 실력있는 사람,특히 1급 지휘관 등과는 절대 비교해서는 안 된다.”라고 그는 단언하고 있다.
워싱턴도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실무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한 가지에 열중하는 습관,공부하는 습관,그리고 일을 계획에 따라 실천하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의 노트가 지금도 남아 았다. 그것을 보면 불과 열세살에 영수증을 비롯해 약속어음,대체어음,계약서,채권,임대계약서,토지권리증까지 종류도 다양한 서류를 꼼꼼히 옮겨 써놓았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이러한 습관이 후에 부조리한 정치문제를 훌륭하게 처리하는 놀라운 실무능력의 모태가 된 것이다.

일에 대한 정열이 천재를 만든다.

실무 능력을 발휘해 위대한 업적을 거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명예를 얻어 마땅하다. 명화를 그린 작가,명작을 세상에 남긴 문학가,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장병과도 필적할 만하다. 그들은 많은 고난에 직면했고 혹독한 전쟁을 경험한 끝에 성공을 거두었을 게 틀림없다. 게다가 전쟁에서 이겼지만 평화적인 승리이고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었다.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은 힘든 일보다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하지만 그것만큼
잘못된 생각도 없다.
위대한 천재들은 거의 모두가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했다.보통 사람보다도 더 힘든 노동을 견뎌냈을 뿐더러 자기 일에 높은 재능과 불타는 정열을 쏟았다.후세에 남는 위대한 작품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불굴의 인내력과 근면성이 있었기에 천재들의 걸작은 오늘날까지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재능만으로 걸작이 탄생된 것은 아니다

영국의 초기 작가들은 실무에 종사하면서 동시에 글도 썼기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당시에는 다른 분야에는 신분에 계층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문단 분야는 신분이 확실하게 구별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래서 다른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사람들이 대거 참여하여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이다. 그는 극장 경영자이면서 서툴지만 연기자로도 일했다. 그는 초기에 문학적 재능을 닦기보다는 돈 버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아 극장 경영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그 경험을 바탕으로 불멸의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의 시대는 문학 활동이 매우 활발하여 수많은 명작을 남겼던 시대이기도 하다.
사실 어떤 분야이건 간에 그 분야의 실무능력은 과학적 혹은 문학적인 직업에 부적합한 것이 아니라 다시없는 좋은 경험이고 훈련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볼테르는 “문학도 실무도 정신은 같다.”고 주장했다.
활력과 신중함,세련된 지성과 실제적인 지혜,활동적 요소와 사색적 요소가 각기 하나가 되지 못하면,즉 베이컨이 “응축된 인간성의 극치”라고 말했던 결합이 이뤄지지 못하면 어느 것도 완성된 것이 아니다. 설사 풍부한 재능을 가진 작가라도 매일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나 일상적인 일을 다뤄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은 쓸 수 없다.
이와 같이 오늘날 현존하는 명작의 대부분은 직업작가가 아니라 다른 분야에 종사했던 사람들에 의해 쓰였다. 그들에게 문학은 일이라기보다 오히려 기부전환이었던 것이다. 비평지 [퀄털리 리뷰]의 편집장 기포드는 생활의 양식을 얻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지만, 어느 때인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야 얻어진 1시간의 글쓰기는,문학을 장사로 삼는 남자의 만 하루의 노동에 능가하는 가치가 있다. 이 1시간은 마치 사슴이 시냇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하듯이 환희로 가득 찬 영혼을 소생시켜한다. 문학가 에게 하루분의 노동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길을 걷는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