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떻게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기도해서 응답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나는 내 신문 컬럼에서 이렇게 질문을 했지만 그에 대한 회답의 수가 얼마나 될지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회답들을 다 읽는데 약 일주일이나 걸렸다. 내게 온 많은 편지들을 읽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시다’라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어떤 회답은 저명한 사업가들의 명함이 인쇄된 용지로, 어떤 것들은 뜯어쓰는 값싼 편지지에 연필로 쓰여져서 왔다. 어떤 편지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교양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이들에게서 왔고, 또 어떤 것들은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왔다. 어떤 편지에는 하나님과 동행한 거룩한 삶을 살아온 것이 엿보이고, 어떤 것들은 그들이 얼마나 죄를 지었으며 얼마나 자신의 생을 부끄러워 하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기도하게 될 때 우리 모두는 같은 위치에 서게 되며,각각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 배운 사람이나 못배운 사람, 부자나 가난한 자, 성자와 죄인, 이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기도로써 하나님께 간구하면 그는 응답하신다. 예수께서 “누구든지 구하는 자는 받을 것이요”(마7:8)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가 ‘누구든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또한 내게 매우 진지하게 편지를 쓴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기도를 과소평가 하면서 소위 응답이란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며 기도는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기도하면 분명히 변화를 받는다고 믿고 있다. 기도하고 응답 받은 사람들과 논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떤 경우에, 그 응답은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그가 뭘 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심으로써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썼다.

하나님은 어떻게 기도에 응답

“나는 일본 진제이가쿠인의 나가사키 학교를 위해 무언가 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교사와 학생들이 원자폭탄으로 죽었지만 그들을 위하여 줄 돈이 내게는 없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인지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며칠 후 [기독감리회지]에서 이 학교를 위해 [National Geographic Magazine]의 발행본들을 요청하는 난을 보았습니다. 나의 부친께서는 수년간 이 잡지를 구독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 낡은 발행본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주 기꺼이 그것들을 보냈습니다. 그것은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교장인 타네오지바님은 그 잡지들에 대해 매우 감사해 하셨습니다.”

82세의 한 귀부인은 어떤 수술이 끝난 후, 자기가 다시는 걷지 못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서 이렇게 썼다.
“다음날 아침, 나는 간호원에게, ‘나는 일어서겠다. 만일 내가 쓰러질지라도 주께서 나를 잡아주실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간호원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했지만, 나는 비키라고 하고 걸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나는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것을 들으니 나는 주께서 어떤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요5:8) 그 부인의 신앙과 정신을 가진다면 수많은 사람들도 갖가지 방법으로 걸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기도야말로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었다고 생각했다.

기도 응답의 예에 대한 내 요청에 의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종종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시는가를 보여주는 여러 회신들이 왔다. 한 편지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당신은 성서의 엘리와 사무엘 이야기를 알고 계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아이에게 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말씀하셨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면 내게도 말씀하실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우린 마이애미에서 살려고 그리고 갔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파트를 사는데 자기와 같이 투자하자고 제의해 왔습니다.나는 그것을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남동생은 그것을 수지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고서 그렇게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 어떻게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거기앉아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왜 망설이는지 알고자 했고 이유를 알자 좋은 제안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지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그 일에 돈을 투자한 사람들은 몽땅 잃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그 얘기가 거의 우습게 들릴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기 전에는 결코 일을 추진하지 않는, 몇몇의 성공한 사업가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기도 응답에 대해 내가 받은 편지들 중엔 병과 치유에 관계된 것이 많다. 이것은 내가 확실히 믿는 어떤 것이다. 나는 하루도 빼지 않고 어떤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내가 받아온 응답들을 나열하면 책 한 권은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일들에 대해 써 보낸 많은 편지들을 보고서 나의 믿음은 더욱 강해졌다.

하나님은 어떻게 기도에 응답


어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몇 주 전 심한 심장마비를 앓고 병원에 있다가 집으로 막 돌아왔습니다. 문병객들을 받아도 좋을 만큼 내 상태가 좋아졌을 때, 아홉살 난 내 어린 손녀가 제 부모랑 같이 날 보러 왔답니다. 그들이 돌아가려 할 때 손녀가 되돌아 내 침대 곁으로 오더니 하는 말이,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어떻게 나으신 줄 아셔요?’ ‘모르겠는 걸, 왜지? 그러자 그애는 ‘그건 할아버지 나으시라고 내가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이어요’라고 말하더군요”
당신은 아홉살 난 어린 여자 아이의 기도가 어떤 변화를 일으켰다고 믿는가?


또다른 편지는 곧 치룰 수술을 무척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썼다.
“나는 하나님께서 수술칼을 인도하시고 또 그 칼을 쥔 사람의 마음을 인도하시며,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내 곁에 가까이 계셔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완전히 책임져 주시길 구했고, 결과가 무엇이든 거기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일을 그에게 맡기고서 말했습니다. ‘주여,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사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저는 살 것이며, 죽는 게 당신 뜻이라면 저는 죽겠습니다.’ 바로 그 때, 그 순간, 내 마음의 무거움과 무서운 공포, 그 모든 짐이 내게서 옮기워졌습니다. 그리고 즉시 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꼈습니다. 나는 그가 거기 계셨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내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 사람 마음 속에 찾아온 평화와 안정이 삶과 죽음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주 가능한 일이다. 그 경우 하나님은 의사를 통해 역사하셨지만 그 의사는 환자의 협력을 필요로 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기도에 대한 응답들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나는 특히 이 예를 좋아한다.

“내 아들은 자동차 사고에서 즉사해서 그의 젊은 아내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찌나 가슴아파하는지 곧 완전히 쓰러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우린 모두 그녀를 위로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제발 내 아들 대신 그녀 마음 속에 들어서 줄 다른 남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삶 속에 한 젊은 남자를 보내셨고 그녀의 비통함은 곧 행복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결혼해서 이제 어린 사내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아주 행복했고 그래서 그녀의 부모와 나도 행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이 두 젊은이들이 만나게 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라고 했는데, 이런 경우는 정말 그런 것 같다.

하나님은 어떻게 기도에 응답


다른 한 편지엔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내가 가장 열심히 기도하여 4년이나 걸려 응답을 받은 일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내겐 훌륭한 사내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애가 한 살 때 우린 아이를 하나 더 낳아 둘이 같이 자라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기의 첫 번째 생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린 곧 둘째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 달 후 그 아이를 잃었을 때 우리의 비통함과 실망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첫 번째 실망을 생각해 보십시오.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첫 번째 실망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3년 동안 우리는 두 아기를 더 잃어야 했으니까요. 그러는 동안 나는 계속 하나님께 아이를 하나 더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매일 밤, 나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영으로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나는 내가 좀 이기적인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점점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겐 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만한 축복도 받지 못한 사람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당신 뜻이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기도하고 나자 순식간에 절망감이 사라져버리게 된 것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계획에 따라 내 인생을 인도하시길 간구했습니다. 내 기도에 응답을 가져온 것은 아마도 내가 가장 바라던 그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였을 것입니다. 우리 아들의 다섯번째 생일이 두 주 지난 후에 예쁜 사내 아이가 태어난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하셨음을 진실로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축복에 대해 매일밤 감사를 드린답니다.”
가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기다리라.”
아마도 그 분은 우리가 그의 응답을 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게 하실 것이며,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그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전기에 대해 잘 모르는 것 만큼이나 기도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공기로부터 그 경이로운 힘인 전기를 끌어내는 발전기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우리는 그 힘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무수한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전기를 만드셨다. 나는 우리집을 밝히는 전기를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 삶을 밝히는 힘을 만드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리라고 믿는다. 우리의 버스를 움직이는 힘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이 살아가게 하는 힘 만드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리라고 믿는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기 위한 수단이다.
주여,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소서!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내용 발췌

병고침을 받기 위한 기도

성경은 믿음의 능력에 대해서 강조한다.믿음의 기도로 말미암아 병고침과 건강을 얻으려면 네가지 기본적인 지침을 따라야 한다.

(1) 하나님은 병을 고칠 수 있고 또 고치시리라는 원천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
(2) 하나님은 의학과 신앙을 동일하게 사용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3) 치료를 하는 데 있어 죄된 행동이나 영적으로 방해가 되는 것들을 끊어 버려야 한다.
(4)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알고 받아 들여야 한다.

(1)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문제는 어떠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있느냐 혹은 하나님이 없느냐이다. 그에게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과 육체 가운데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실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능력은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문제는 믿느냐 아니면 믿지 않느냐이다. 우리는 한 아버지가 병든 아들을 데리로 예수께 나온 사실을 알고 있다.그가 “하실 수 있거든”이라고 말하자 주님은 “네가 믿으면”이라고 말씀하셨다.(막9:22~23) . 가정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도 인간의 상호관계성을 맺고 있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믿느냐 혹은 안믿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사람들은 완전하게 믿는 것이 아니고 또한 완전하게 불신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신앙과 불신앙이 동시에 내재해 있다. 문제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 중에서 어는 것을 잡느냐에 있다. 당신이 만약 신앙을 강조함으로 믿음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성장한다. 그것은 당신이 통과해야 하는 첫 관문이다.

(2) 의사를 부르러 부르고, 병원에 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하나님은 자연적인 법칙, 영적인 법칙 모두를 사용하여 일을 하신다. 의사는 인체 구조를 알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안다. 그는 또한 육체의 질병의 성질과 원인과 치유방법을 알고 있다.
물론 의사의 지식은 완전히 못하다. 그래서 그는 많이 배워야 한다. 여기에 의학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 하나님은 의사들을 만드셨고 의약품을 만드셨다. 다만 인간이 이들을 잘 배합함으로써 우리 치료에 대한 기도가 많이 응답받는다.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느냐는 그가 응답하시는 사실보다 중요치 않다.

그러나 치료에는 의학을 훨씬 뛰어 넘는 요인들이 있다. 나는 하나님께 병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가장 먼저 의사와 간호원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하나님의 치료하는 은혜를 받아서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육체적인 법칙이나 그들의 처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신령한 법칙이 있다. 믿음을 사용함은 의학을 사용함과 같이 과학적이며 실제적이다. 믿음은 기적을 일으키며 수많은 경우에 병든 자를 건강하게 하고 죽음과 불치의 병에 대해서 결정적인 능력을 나타낸다.

(3) 병 고침과 건강을 얻기 위해서 믿음을 사용하고자 할 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강조하고 약품의 사용과 믿음의 사용 사이의 관계를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을 가로막는 것들을 피해야 한다.
나는 헤롤드 설만에게 몇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는 나의 책 [하나님의 심령과학] 에 대해 칭찬하는 말들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성공에 이르는 열쇠] 라는 그의 책이 더 훌륭하다. 그는 인간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대해서 많이 다루었다. 훌륭한 예를 들었는데 그것은 주로 그의 체험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고정 직업을 얻으려는 희망을 가지고 중요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교정보는 부서에 종사하였다. 수 개월을 열심히 일했으나 보람도 없이 해고 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아무 도움도 얻지 못하고 돈만 소비했다. 이 사실은 그에게 금전적인 어려움과 창피함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너무 상심한 나머지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의 목구멍에는 감염이 생겼다. 그는 가장 좋은 의약의 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그는 미움을 버리고 그에게 잘못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용서해 주었다. 그도 또한 용서받았다. 그랬더니 그의 목구멍은 깨끗이 치료함을 받았다.

우리의 언어모양을 자세히 살펴보라. 예를 들면 ‘명상과 치유’의 유사점을 조사해 보자.
당신이 이들을 좀 더 세밀히 조사해 본다면 하나님을 명상하면 인간 육체에 치료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완전함과 거룩함’을 생각해 보자. 사람이 완전히 건강하다면 완전히 죄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 둘은 상호관계성이 있다. 누군가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인간을 만드신 이가 이들을 완전케 하시되 영혼의 상태에 따라서 육체를 강건케 하셨다.”

(4) 모든 기도하는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그의 응답을 받아야 한다. 어찌하여 어떤 사람의 기도는 응답되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하는가?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기도가 믿음이 부족하여서이거나 어떻게 기도하는가를 잘 모르기 때문에 효험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기도는 연구되어야 할 분야이다. 어떤 사람의 기도는 다른 사람의 기도보다 훨씬 역사하는 힘이 많다. 기도로 병이 치료되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제각기 자기의 주어진 생명이 끝날 때가 온다. 그렇지 않다면 복된 불멸의 세계는 우리에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질병이 아니라 건강이며, 병약함이 아니라 강건함이며,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사실을 믿을만한 여러가지 이유가 우리에게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는 자녀들이 고통받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 기도드릴 때, 우리 안에 있는 능력을 사용하여 우리의 건강을 증진시킬 때, 우리의 잘못된 습성을 끊어 버리고 그의 깨끗하게 하심과 용서하심을 받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응답을 얻기 위하여 그의 지혜를 신뢰할 때, 놀라운 평화가 우리 안에 넘쳐날 것이다. 그 평화는 우리의 두려움과 우리의 공포를 제거시킨다. 시편 기자의 약속이 우리 안에 성취될 것이다 ”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27:14)
내가 이 책을 쓰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마당에서 잎사귀를 끌어 모으는 장면을 보았다. 그것은 나를 매우 슬프게 했다. 나는 이 가을이 지나면 잎사귀를 볼 수 없다.

나의 서재에는 삼면으로 창문들이 있으며 이 창문들 사이로 아틀란타의 페어뷰 거리를 한눈으로 정겹게 훑어 볼 수있다. 정녕 이 나무들은 더 이상 아름답지 못하리라. 이 울긋불긋한 가을 빛깔들은 내 영혼에 양식이 되어 왔다. 찰스 킹슬리는 이 장관을 “하나님의 솜씨”라고 불렀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서 바른 마음씨를 가졌다면 누구라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배길 수 없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그 잎들도 아름다움을 잃었다. 잎들은 나무에게 “우리는 이 나무에 아무 소용이 없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나씩 하나씩 잎들은 땅에 떨어져 쓰레기가 된다. 저 남자는 잎들을 갈퀴로 끌어 모아서 태워 버리거나 아니면 쓰레기 치우는 자에게 줌으로 쓰레기장으로 옮기운다. 나무들에 잎은 하나도 없고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 있어 해골같아 보기 흉하다.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 나가노라니까 언젠가 하나님에 관해서 읽은 말들이 생각난다. 그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천상의 쓰레기 모으는 자로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왠지 으시시하다.
그러나 작가는 계속해서 설명하기를 인생이란 하나님 없이는 순수하거나 깨끗케 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네 인생 아름다왔던 것들은 모두모두 죽어가고 그리하여 하나하나 우리곁을 떠난다. 우리의 좌절된 꿈이나 바래진 이상,때묻은 양심을 회복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미 쓰레기가 되었고 악취를 풍긴다.

헨리 슬로원 코핀 박사는 중국 내지 선교 사역 중에 원주민 목사 모임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다른 이교 신앙에서 여러분을 돌이키게 한 기독교 신앙의 결정적인 요인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기적인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종교에도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들의 선생님은 놀라운 사실들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목사님이 “그것은 제작들의 발을 씩기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밖에 모든 사람들은 그것이 맞다고 했다. 수건과 대야를 들고서 허리를 구부리시는 하나님이시다. 더 더욱 놀랄만한 사실은 그가 우리 죄들 – 우리가 은밀히 짓는 죄들 – 을 쳐다 보시고서 씻어 버리고 한번만 그렇게 함으로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점이다.

나무들을 바라보며 있으면서 내 마음은 몇달 앞서 가고 있다. 지금은 저들이 앙상한 가지이나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올 것이다. 그때 모든 나무가지들은 새 생명으로 움틀 것이며 싹이 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더 많은 잎사귀를 가질 것이다. 나무는 아름다움을 또 다시 나타내 보일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보아도 부끄러움을 조금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나무는 가지들을 자랑스럽게 하늘을 향해 쭉쭉 뻗고 꿋꿋이 높다랗게 서 있을 것이다.

그는 ‘천상의 쓰레기 치우는 자’ 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분이시다. (요10:10)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받는다. 분명코 우리는 나무들을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 그보다 조금도 못잖게 그의 자녀를 위해 행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리라.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내용 발췌

기쁨을 얻기 위한 기도

기쁨을 얻기 위한 기도란?

“지금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한복음 16:24)

주님께서는 우리가 물질 구하기를 바라고 계시며 그것은 우리가 물질을 받을 때 우리 기쁨이 충만하여 넘치도록 하기 위함이다. 가끔 하나님께서는 내가 간구한 특별한 요구를 응답해 주심으로 나에게 큰 용기를 주신다. 기도가 응답될 때 기쁨은 충만한 것이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이 기쁨을 알고 체험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역사하심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운 일인가!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상당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

응답받는 기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 기쁨과 믿음을 증가시킨다. 기도한다는 것은 얼마나 용기를 북돋우는 것인가!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 기쁨을 매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도 응답받는 기도의 기쁨을 알 수 있다. 그의 이름으로 간구하기 시작하라. 응답은 반드시 올 것이며 당신의 기쁨은 충만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에 나는 동부 펜실바니아에서 순회 연설단에 참석하고 있었다. 나는 대단한 연설가인,하나님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을 대신하여 나서게 되었다. 그는 아팠기 때문에 나에게 그 위치에 서보라고 요구했다. 나는 그때 궁중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이 나의 강점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하나님만이 청중에게 축복해 주실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왠지 두렵고 떨렸다.

내가 이 모임에서 말할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을 때 앞에 있던 한 부인이 동부 펜실바니아에서 어린이를 지도했던 프로그램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자 갑자기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3년 전에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동부 펜실바니아 지역을 방문할 특권을 주셔서 어린이를 위한 선교사역을 견학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3년 전에 했던 나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가 동부 펜실바니아에 있었던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확신감에 사로잡혔으며 용기가 생겼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내셔서 사람들에게 축복하시기 위하여 나의 말을 듣게 하셨던 것이다. 그 순회 연설은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것보다도 가장 유익한 것이었으며 생명을 변화시키는 체험이었다.

응답받는 기쁨보다 더한 것은 없다. 우리가 기도하여 응답받는 것은 그 자체가 축복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의미가 깊다. 우리가 만일 어떠한 은밀한 죄를 품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에 응답치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에 응답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 생활을 기뻐하신다는 참된 증거이다. 이 증거는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넘치게 한다. 주를 찬양케 한다.

예수님은 위에 나온 구절에서 우리가 기도에 응답을 받으면 기쁨이 넘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충만하다라는 헬라어에는 ‘가득 채우다’ ‘기준치를 넘어서다’ 라는 의미가 있다. 당신이 특별히 기도해서 특별한 응답을 받으면 당신의 기쁨은 억누를 수 없다. 그것은 흘러 넘친다.

간만에 나는 응답받는 기도 때문에 이 기쁨을 체험했다. 다음 월급날이 되기 일주일 전에 돈이 바닥났기 때문에 나의 재정 형편에 기족이 있기를 하나님께 간구했다. 나와 함께 지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한 그리스도인 형제가 나에게 와서 나의 손에 현재 필요한 것을 충당해 쓰도록 수표를 주는 것이 아닌가? 특정한 간구에 응답해 주시는 역사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기쁨은 고조되었다.

내가 이것을 기록하면서 지난 주에 요구하여 응답 받았던 것을 또 하나 간증하고자 한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실로 우리의 가슴을 후련케 하는 빗방울이 메마른 대지 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 일년 강우량이 12인치도 못되는 사막이나 다름 없던 남부 캘리포니아 지방에 살고 있었다. 연무는 자욱하였으며 마른 풀잎과 산쑥으로 인해 화재 위험이 연중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지난주 나는 몇달만에 처음으로 “하나님이시여 대지를 축일 만한 비를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창가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들 둥 기도하는 자에 대한 응답으로 내려 주신 것이기에 더욱 귀하게 보인다.

야고보서 5장에서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으나 그가 기도하였을 때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이 것을 한번 생각하여 보라. 하나님께서는 비천한 사람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늘 문을 닫으실 것이다. 그는 또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늘문을 여실 것이다. 보다 더욱 귀한 것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자. 그가 응답하실 때 우리의 기쁨은 넘쳐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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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가는 방법이야말로 내 마음 속에서 믿음이 점점 식어질 때 은혜의 역사를 불붙게 하는 수단이 되어 왔다. 그것은 또한 내가 타락한 후에 주께로 돌아오는 수단이 되었다. 왜냐하면,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죄에 머물러 있는다는 것은 생각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기도에 대한 응답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고 내 기쁨을 충만케 하는 수단이었다.
죠지 뮬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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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