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고침을 받기 위한 기도

성경은 믿음의 능력에 대해서 강조한다.믿음의 기도로 말미암아 병고침과 건강을 얻으려면 네가지 기본적인 지침을 따라야 한다.

(1) 하나님은 병을 고칠 수 있고 또 고치시리라는 원천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
(2) 하나님은 의학과 신앙을 동일하게 사용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3) 치료를 하는 데 있어 죄된 행동이나 영적으로 방해가 되는 것들을 끊어 버려야 한다.
(4)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알고 받아 들여야 한다.

(1)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문제는 어떠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있느냐 혹은 하나님이 없느냐이다. 그에게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과 육체 가운데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실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능력은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문제는 믿느냐 아니면 믿지 않느냐이다. 우리는 한 아버지가 병든 아들을 데리로 예수께 나온 사실을 알고 있다.그가 “하실 수 있거든”이라고 말하자 주님은 “네가 믿으면”이라고 말씀하셨다.(막9:22~23) . 가정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도 인간의 상호관계성을 맺고 있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믿느냐 혹은 안믿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사람들은 완전하게 믿는 것이 아니고 또한 완전하게 불신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신앙과 불신앙이 동시에 내재해 있다. 문제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 중에서 어는 것을 잡느냐에 있다. 당신이 만약 신앙을 강조함으로 믿음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성장한다. 그것은 당신이 통과해야 하는 첫 관문이다.

(2) 의사를 부르러 부르고, 병원에 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하나님은 자연적인 법칙, 영적인 법칙 모두를 사용하여 일을 하신다. 의사는 인체 구조를 알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안다. 그는 또한 육체의 질병의 성질과 원인과 치유방법을 알고 있다.
물론 의사의 지식은 완전히 못하다. 그래서 그는 많이 배워야 한다. 여기에 의학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 하나님은 의사들을 만드셨고 의약품을 만드셨다. 다만 인간이 이들을 잘 배합함으로써 우리 치료에 대한 기도가 많이 응답받는다.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느냐는 그가 응답하시는 사실보다 중요치 않다.

그러나 치료에는 의학을 훨씬 뛰어 넘는 요인들이 있다. 나는 하나님께 병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가장 먼저 의사와 간호원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하나님의 치료하는 은혜를 받아서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육체적인 법칙이나 그들의 처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신령한 법칙이 있다. 믿음을 사용함은 의학을 사용함과 같이 과학적이며 실제적이다. 믿음은 기적을 일으키며 수많은 경우에 병든 자를 건강하게 하고 죽음과 불치의 병에 대해서 결정적인 능력을 나타낸다.

(3) 병 고침과 건강을 얻기 위해서 믿음을 사용하고자 할 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강조하고 약품의 사용과 믿음의 사용 사이의 관계를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을 가로막는 것들을 피해야 한다.
나는 헤롤드 설만에게 몇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는 나의 책 [하나님의 심령과학] 에 대해 칭찬하는 말들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성공에 이르는 열쇠] 라는 그의 책이 더 훌륭하다. 그는 인간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대해서 많이 다루었다. 훌륭한 예를 들었는데 그것은 주로 그의 체험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고정 직업을 얻으려는 희망을 가지고 중요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교정보는 부서에 종사하였다. 수 개월을 열심히 일했으나 보람도 없이 해고 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아무 도움도 얻지 못하고 돈만 소비했다. 이 사실은 그에게 금전적인 어려움과 창피함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너무 상심한 나머지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의 목구멍에는 감염이 생겼다. 그는 가장 좋은 의약의 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그는 미움을 버리고 그에게 잘못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용서해 주었다. 그도 또한 용서받았다. 그랬더니 그의 목구멍은 깨끗이 치료함을 받았다.

우리의 언어모양을 자세히 살펴보라. 예를 들면 ‘명상과 치유’의 유사점을 조사해 보자.
당신이 이들을 좀 더 세밀히 조사해 본다면 하나님을 명상하면 인간 육체에 치료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완전함과 거룩함’을 생각해 보자. 사람이 완전히 건강하다면 완전히 죄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 둘은 상호관계성이 있다. 누군가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인간을 만드신 이가 이들을 완전케 하시되 영혼의 상태에 따라서 육체를 강건케 하셨다.”

(4) 모든 기도하는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그의 응답을 받아야 한다. 어찌하여 어떤 사람의 기도는 응답되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하는가?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기도가 믿음이 부족하여서이거나 어떻게 기도하는가를 잘 모르기 때문에 효험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기도는 연구되어야 할 분야이다. 어떤 사람의 기도는 다른 사람의 기도보다 훨씬 역사하는 힘이 많다. 기도로 병이 치료되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제각기 자기의 주어진 생명이 끝날 때가 온다. 그렇지 않다면 복된 불멸의 세계는 우리에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질병이 아니라 건강이며, 병약함이 아니라 강건함이며,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사실을 믿을만한 여러가지 이유가 우리에게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는 자녀들이 고통받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 기도드릴 때, 우리 안에 있는 능력을 사용하여 우리의 건강을 증진시킬 때, 우리의 잘못된 습성을 끊어 버리고 그의 깨끗하게 하심과 용서하심을 받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응답을 얻기 위하여 그의 지혜를 신뢰할 때, 놀라운 평화가 우리 안에 넘쳐날 것이다. 그 평화는 우리의 두려움과 우리의 공포를 제거시킨다. 시편 기자의 약속이 우리 안에 성취될 것이다 ”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27:14)
내가 이 책을 쓰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마당에서 잎사귀를 끌어 모으는 장면을 보았다. 그것은 나를 매우 슬프게 했다. 나는 이 가을이 지나면 잎사귀를 볼 수 없다.

나의 서재에는 삼면으로 창문들이 있으며 이 창문들 사이로 아틀란타의 페어뷰 거리를 한눈으로 정겹게 훑어 볼 수있다. 정녕 이 나무들은 더 이상 아름답지 못하리라. 이 울긋불긋한 가을 빛깔들은 내 영혼에 양식이 되어 왔다. 찰스 킹슬리는 이 장관을 “하나님의 솜씨”라고 불렀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서 바른 마음씨를 가졌다면 누구라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배길 수 없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그 잎들도 아름다움을 잃었다. 잎들은 나무에게 “우리는 이 나무에 아무 소용이 없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나씩 하나씩 잎들은 땅에 떨어져 쓰레기가 된다. 저 남자는 잎들을 갈퀴로 끌어 모아서 태워 버리거나 아니면 쓰레기 치우는 자에게 줌으로 쓰레기장으로 옮기운다. 나무들에 잎은 하나도 없고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 있어 해골같아 보기 흉하다.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 나가노라니까 언젠가 하나님에 관해서 읽은 말들이 생각난다. 그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천상의 쓰레기 모으는 자로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왠지 으시시하다.
그러나 작가는 계속해서 설명하기를 인생이란 하나님 없이는 순수하거나 깨끗케 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네 인생 아름다왔던 것들은 모두모두 죽어가고 그리하여 하나하나 우리곁을 떠난다. 우리의 좌절된 꿈이나 바래진 이상,때묻은 양심을 회복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미 쓰레기가 되었고 악취를 풍긴다.

헨리 슬로원 코핀 박사는 중국 내지 선교 사역 중에 원주민 목사 모임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다른 이교 신앙에서 여러분을 돌이키게 한 기독교 신앙의 결정적인 요인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기적인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종교에도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들의 선생님은 놀라운 사실들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목사님이 “그것은 제작들의 발을 씩기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밖에 모든 사람들은 그것이 맞다고 했다. 수건과 대야를 들고서 허리를 구부리시는 하나님이시다. 더 더욱 놀랄만한 사실은 그가 우리 죄들 – 우리가 은밀히 짓는 죄들 – 을 쳐다 보시고서 씻어 버리고 한번만 그렇게 함으로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점이다.

나무들을 바라보며 있으면서 내 마음은 몇달 앞서 가고 있다. 지금은 저들이 앙상한 가지이나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올 것이다. 그때 모든 나무가지들은 새 생명으로 움틀 것이며 싹이 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더 많은 잎사귀를 가질 것이다. 나무는 아름다움을 또 다시 나타내 보일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보아도 부끄러움을 조금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나무는 가지들을 자랑스럽게 하늘을 향해 쭉쭉 뻗고 꿋꿋이 높다랗게 서 있을 것이다.

그는 ‘천상의 쓰레기 치우는 자’ 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분이시다. (요10:10)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받는다. 분명코 우리는 나무들을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 그보다 조금도 못잖게 그의 자녀를 위해 행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리라.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내용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