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하는 기도

짧게 하는 기도란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7~8)

최근에 나는 신약에서 기도에 관해 기록된 것은 모두 읽어 보았다. 나는 그들 기도가 거의 예외없이 아주 짤았다는 데 놀랐다. 나는 우리 기도의 길이가 역사하는 힘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우리 중 대부분이 기도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아주 크고 강렬하고 길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느끼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밤이나 낮이나 어떤 순간에도 나는 아버지께 짧은 기도를 드릴 수 있고 또 그 기도가 상달되어서 응답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큰 위로를 받았다.

다음에 나오는 몇 가지는 신약에 나오는 짧은 기도에 관한 것이다.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나아와 기도했다. “주여,주님이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간단히 여덟 단어의 기도이지만 응답은 즉각적이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등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8:2~3)
제자들은 바다에서 폭풍 때문에 무서워 하였다. 그들은 깨우면서 “주여,우리를 구하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잔잔하여졌다. (마8:25~26) 이 간단한 여섯 단어가 즉각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어떤 직원이 예수께 나와와 “내 딸이 지금 죽었으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라고 했다. 이 사람은 온 즉시 그의 사건에 대해 간단히 말하고 짧은 문장으로 구원을 청하였다. 응답은 왔다. 예수께서는 일어나 그를 따라가서 그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켰다.(마9:18~26)
두 장님이 간구하였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셨고 그들은 보게 되었다.
하나님 말씀 가운데는 이렇게 짧은 기도가 많이 있다. 그의 모든 경우에 이들 기도는 즉각적이고도 신기한 응답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쓸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러한 짧은 기도를 드리자.

나는 공무차 상당한 여행을 하였으므로 고속도로로 달릴 때 매우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명상한다. 때때로 혼자 운전해 나가면서 라디오를 들을 때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러한 느낌에 순종하여 나의 관심을 끌고 있는 수백가지의 문제에 대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나에게 참으로 유익하고 영구한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들이 매우 짧은 기도이지만 매우 강력하고 은혜가 많은 것들이다.

나는 우리가 기도와 말씀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지만 또한 은혜의 보좌 앞에 우리의 필요를 쏟아 놓기 위해 우리의 ‘부스러기’ 시간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짧게 하는 기도가 나의 기도생활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일신시켜 놓았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대한 굳스피드(goodspeed)역은 이 점에 있어 흥미롭다 . 킹 제임스 역은 “성령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기도하고”라고 되어 있으나 굳 스피드역은 이것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라고 하였다.
모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기도하고 하나님과 사귀는 시간을 만들라는 것이다.

느헤미야의 기도

느헤미야 2장 가운데서 우리는 짧은 기도의 능력에 대해 아름다운 실례를 보게 된다
느혜미야는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울었다. 하나님은 그의 슬픔을 보셨으며 성벽을 쌓기 위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어느날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수종들 때 그 왕은 느헤미야의 슬픈 모습을 보고, “네가 병이 없거는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라고 물었다. 느헤미야는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내가 얼굴에 수색이 없으오리이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은 “네가 무엇을 요구하느냐?”라고 물었다.
느헤미야는 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무릎을 끓지 않았다. 그는 크게 말하지도 않았다.
사실상 그것은 매우 짧았으며,그 묵상 기도를 하늘로 올렸던 것이다. 왜냐하면 느헤미야는 왕의 앞에 있었으며 왕은 그 자리에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계속하였다. “종이 왕에게 말하리이다.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대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여행하는데 얼마 동안이 소요되겠느냐 언제면 다시 돌아 오겠느냐 하시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이렇게 하여 예루살렘 상벽은 재건되었다. 그러나 이 사역은 부스러기 시간의 짧은 기도와 금식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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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주의자들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받지 못해도 만족하나 그러나 참으로 간구하는 자들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마음을 잠잠케 하고 의지를 누르는 기도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일어나서 하늘로부터 오는 실제적인 응답을 받아야만 하며 그렇지 못할 때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들은 가능한 한 이러한 응답을 즉시 받고자 한다.
그들은 언제라도 하나님의 침묵하심이 있을까 봐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대단한 진동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지축을 뒤흔든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간절히 간구하는 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께서 그의 귀를 막으시는 것같이 보일 때 우리는 우리의 입을 다물지 말고 더욱 열정적으로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의 음성이 더 열정적으로 비탄 속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지체지 않으시고 우리의 간구를 들으신다. – 스펄젼 –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 내용 발췌

능력 있는 기도

능력 있는 기도란?

“…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야고보서 5:16)

당신이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기독교 사역은 기도하는 일이다. 당신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보낸 하루보다 더 풍성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날은 갖지 못한다.
우리는 인간 본성적으로 이것을 믿지 못한다.우리의 본래적인 마음을 가지고서는 일들을 하기 위해 훨씬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야고보는 기도가 결과를 창출한다고 우리에게 말했다.그는 이것을 증거하기 위해 야고보서 5:17~18에서 엘리야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17절, “옐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18절,”다시 기도한즉 하늘에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많은 신실한 기독교인들은 “우리는 기도만 해서는 안된다”는 떠도는 말에 사로잡혀 있다.이것은 믿음을 죽이는 말이다. 실제로 하나님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당신을 사용하실 수도 있으시다.그가 어떤 도구를 사용하시는가엔 제한을 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12장 5~12절에서 보면, 베드로를 자기 백성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구원하셨다.

5절,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6절,”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절,: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절,”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9절,”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쌔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절,”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절,”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실 줄 알겠노라 하여.”
12절,”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교회는 기도 밖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베드로를 감옥에서와 죽음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다.
엘리야의 생애는 이따금씩 기도만이 효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엘리야는 성정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간절히 기도하매… “(약5:17) 그는 초인이 아니라 다만 한 인각이었다. 이 사실로 우리는 기도할 용기를 얻는다. 엘리야는 그가 기도했을 때 결과를 보았다. 우리도 기도하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의 기도는 그의 기도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기도했고 하나님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먼저 그는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하나님은 비를 멈추었다. 다음에 그는 불을 구하며 기도했다. 그는 불이 불기를 구하는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결과를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두고 있음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기 위하여 제물 위에다 물통을 부었다. 그의 간단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불이 내려왔다.(열와기상 18장 참고) 다음에 그는 비를 구하였다.그는 구름이 또오를 때까지 계속적으로 기도했다. 그때 그는 기도하기를 그만 두었어도 됨을 알았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내렸던 것이다.
그렇다.기도하는 사람들은 능률적인 사람들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능력있게 사용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에 따라 반드시 응답이 온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몇해 전에 어린이 복음주의 전도 사역이 나의 지도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것은 나와 나의 동역자들에게 로스엔젤레스와 남부 캘리포니아에 사는 아직 복음을 모르는 소년 소녀들을 책임지우는 사역이었다. 이 사역을 맡고 난 며칠 후에 나는 수많은 곤궁에 직면하였음으로 불안감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명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세가지 간단한 말로써 나를 위로하셨다. 어느날 책방에서 이것 저것을 대충 읽다가 조그만 소책자를 책 제목을 얼핏 보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것은 기도를 통해서 라는 것이며,나의 관심을 끌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필요로 하는 메시지를 얻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나는 그책 내용은 읽지 않았으나 그 제목으 나의 필요를 만족시켜주는 메시지가 되었다.
나는 즉시 작은 노트를 꺼내어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에 근거하여 만든 기도 요청 난에다 이 새로운 사역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6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절,”그리하면 모든 지각 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날짜가 지나가고 나의 기도 목록도 길어지자 응답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의 하나씩 “응답받다,아버지 감사합니다.”
라는 표시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응답이 많이 나타나자 나의 흥분도 더 커졌다.
몇 달, 몇 년에 걸쳐 나는 이것을 실천해 나갔으며, 그것은 많은 염려와 문제로부터 구원을 가져다 주었다.
하나님께서 거의 매일 특별한 요청에 응답하시고 계심을 볼 때 그것은 계속되는 나의 기쁨의 원천이었다.
이러한 실천을 한 지 오래지 않아 나의 가장 효과적인 사역은 기도하면서 보낸 때였다고 생각되어졌다.
때때로 나는 기도시간에 펜과 펜대를 잡곤 하였는데 그것은 남부 캘리포니아 지방 어린이 전도협회의 일을 지도함에 있어서 가르침을 메모하기 위해서였다.
때로는 기도하기 위해 온 종일을 제쳐 두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홀로 지내며 사역의 모든 세부사항과 내 가정,내 개인의 모든 문제 등등을 그 앞에 열거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 사역에서 성공 하게 된 모든 것을 전적으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보고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

당신의 모든 노력을 경주하되 조금도 당신의 힘을 믿지말라.하나님의 축복을 위해서 전심으로 기도하라. 그러나 동시에 모든 부지런함과 오래 참음으로써 일하라.기도하고 일하라.일하고 기도하라. 또다시 기도하고 일하라. 당신 생애의 모든 날 동안을 이렇게 하라. 그 결과는 진실로 풍성한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모든 것이 당신의 간구에 있는 것처럼 주께 요구하라. 하지만 조금도 당신의 노력을 믿지 말고 당신의 노력을 이루시는 주께만 의지하라.
죠지뮬러

당신의 기도한다며? 밥 핏츠 지음 일부 내용 발췌

슐러 목사의 기도론

슐러 목사의 기도론이란?

1.적극적 기도는 성공의 열쇠

헤비급 권투 챔피언인 죠 프레이저는 정열과 믿음과 노력과 기도로써 성공을 한 적극적 사고인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밤마다 성경을 읽고,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독실한 크리스챤입니다.
프레이저는 항상 권투선수로서의 성공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 가운데서 믿음으로 이룬 성공이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죠는 소년 시절부터 항상 권투선수가 되길 꿈꾸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샌드백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복서의 하나인 아치 무어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어는 항상 “어떠한 소년이든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신념에 찬 말을 해 주었던 것입니다.
죠 프레이저는 권투를 계속하여 이름을 떨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우선 낡은 푸대를 구해다가 그 속에 모래와 누더기를 넣고 샌드백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장거리 뛰기로 콘디션 조절을 하는 데도 주력하였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난 정거리 뛰기를 하였습니다.
하루에 8마일을 달리는 동안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자꾸 일어났으나 그는 이를 악물고 또 악물었습니다.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나는 무엇이든 꼭 하고 말테야.”
죠 프레이저는 이렇게 수도 없이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죠 프레이저는 말합니다.
“장거리 뛰기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습니다.그것은 열심히 드리는 ‘기도’이지요.”
1964년 그가 동경에서 열린 올림픽 대회에 미국 선수로 출전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성심으로 기도하고,쉬지 않고 간구하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였습니다.
경기마다 승리의 손을 번쩍 치켜들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준결승전에서 엄지 손가락을 크게 삐고 말았습니다.
레프트 훅이 강한 선수인 그는 주무기를 다친 셈이었습니다.
그가 과연 결승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준결승전에서 승리한 날 밤에 호텔방의 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뜨거운 물에 왼손을 담갔습니다.
퉁퉁 부어오른 왼손이 견딜 수 없을만큼 쑤셔 왔습니다.
“이 손은 내 힘의 전부이다.그런데 엄지손가락이 이렇게 삐었으니 나는 끝장이로구나.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나는 미국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하는데 정말 낭패로구나
그가 이렇게 탄식하며 어쩔쭐 몰라하는데,갑자기 어린 시절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왼팔이 없는 그의 아버지가 팔 하나로 열심히 일하던 모습이 눈 앞에 스쳐가는 것이었습니다.
“내 아버지께선 팔 하나로 아내와 열 세 명의 자녀들을 부양할 수 있었는데,이까짓 엄지 손가락 한 삔 것을 가지고 염려하고 있다니!”
그는 다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였습니다.
다음날,그가 한스 하버와의 마지막 시합을 하기 위해 링으로 올라섰을 때,프레이저는 그의 왼쪽 손을 자기편에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특이한 자세였으나 아무도 그의 손을 의심하지는 못했습니다.
시합 전에 죠의 상대인 한스 하버는 코치에게서 죠의 외쪽 훅을 각별히 경계하라는 주의를 받았습니다.
한스 하버는 프레이저의 왼쪽을 경계했습니다.
프레이저의 왼팔로부터 안전거리를 재어 경계하며 조심스레 시합을 하였습니다.
결국 심판들의 판결은 죠 프레이저를 3대2로 판결,승리의 영광을 주었습니다.
사실 스포츠 기자들 말도 한스 하버가 프레이저의 다친 엄지손가락을 알았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가장 지적이고 학식이 많고 과학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기도를 하며 그 능력을 믿습니다.
나의 TV프로 ‘능력의 사람’을 본 사람들로부터 매년50만 통 이상의 편지를 받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많은 분들이 명상과 기도와 긍정적인 사고의 결과로 그들의 생애 중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던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전해진 가장 놀라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으리라(마21:22).”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누구에게나 주실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흔히 우리 인간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독일의 조그마한 지역에서 나는 이런 전설을 들었습니다.
여러해 전 그 마을은 흉년이 들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1년 동안만 우리가 구하는 것 – 해와 비 – 만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소서.”
전설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에 응하셨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비를 구하였을 때 비를 주셨고,해를 구할 때 해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곡식은 더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전보다도 알차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수확기가 되었을 때 농부들은 옥수수 줄기에는 옥수수가 없고,밀줄기에는 알이 없고,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는 잎만 무성한 채 열매가 열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기쁨이 슬픔으로 변하였지요,소박한 농민들은 “오 하나님! 당신은 우리를 패망케 하셨습니다.”라고 원망조로 말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내 자녀들아,그렇지 않다.너희들이 구하는 것을 모두 주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외쳤습니다.”그러면 주여, 왜 우리가 열매나 낱알을 얻지 못했습니까?”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는 너희들이 거친 북풍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바람이 없이는 수확 결실 작용이 있을 수 없습니다.

2.하나님의 계획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이기적인 계획이나 아이들같은 동정적인 호소에 언제나 응답하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기적인 요구로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을 때 하나님을 의식하고 조소하며 “보라,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것을 기도라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라고 부르시지 않으십니다.
“기도는 외침이 아니요,기구도 아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 생활을 움직이게하는 기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는 우리가 그의 계획과 목적의 일부가 될 때까지 우리 자신이 그에게 이끄는 영적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일치하게 될 때 우리가 평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게획 및 목적에서 벗어날 때 마음 가운데는 좌절과 긴장과 갈등만이 오게 됩니다.
참된 기도는 우리의 꿈과 욕망을 하나님의 계획에 일치시키는 영적 훈련입니다.
가든 그로브 커뮤니티의 교회에 있는 게시판 위에는 다음과 같은 익명으로 된 말씀이 붙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계획은 내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이는 참나무는 도토리 속에 숨겨져 있고 장미가 가시 속에 숨겨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내 생활에 있는 모든 것이 내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계획에 내 자신을 온전히 바칠 때 그 계획하심이 내개 나타납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것들이 아버지 안에 거하기를 기도드립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바가 올바른 때에 적절한 방법으로 나에게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더 좋은 문을 여시기 위하여 그 문을 닫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개 도움이 될 수 있는 문제점이나 실패를 주십니다.
이는 내가 더 좋은 문을 바라볼 수 있는 영감과 능력을 갖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3.참된 기도

참된 기도는 당신의 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때 주어지는 내적인 마음의 조화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당신이 지금 배를 타고 있다고 치고 그 배가 해 안에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당신은 닻이 모래에 박히기까지 닻을 힘껏 던질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닻의 밧줄을 잡고 당신의 보트가 모래 사장에까지 접근하도록 끌어 당겨야 당신은 모래사장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하였습니까? 당신은 해안에다 배를 끌어 당기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배에다 해안을 끌어당긴 것입니다.
기도의 참되고 온전함은,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원하였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4.하나님의 응답

하나님께서는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하시면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마음의 네 가지 방법으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1.기도의 조건이 올바르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그 귀한 요구(기도)에 ‘아니다’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더 좋은 것으로 더 훌륭한 것으로 화하고 만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 간구가 절대로 올바른 것이 아닐 때는 그 응답은 ‘안된다’입니다. 또 그 간구가 당신에게는 두움이 된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야기시킨다면 그 응답은 ‘안 된다’입니다.

2. 때가 적절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천천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으십니다.하나님께서는 기도의 동기와 그 때의 실정에 따라 조절을 하십니다.만약 당신의 진지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아니다’라고 응답하셨다면 당신이 그에게 그 이유를 물을 때 대답하거나 설명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는 그가 주실 수 있는 대답이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임을 알고 계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다면 그는 당신의 주인이 아닙니다.종일 것입니다.하나님의 지체하심이 결코 부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는 완전합니다. 기도 가운데 인내를 길러야 합니다. 참된 기도는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그 기도는 적절한 때에 싹이 터서 자라는 씨와 같습니다.

3.당신의 요구의 때가 합당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장하라’고 대답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기꺼이 준비했을 때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준비도 하지 않은 사람이 야망만 커서 곧장 꼭대기에 올라 성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선 더 준비하는 가운데 성장하라고 말씀하십니다.너무 빨리 주어진 힘은 빨리 쇠잔합니다.
당신은 먼저 성공하여야 합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쳐 있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차 있다면,당신은 우주의 근본이신 하나님과 믿음과 같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기도는 영향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실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회사원이 목사의 카운셀링을 필요로 했습니다.그는 경영자의 위치를 바라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선발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씁쓸함과 분노를 나타낸다고 해서 그것이 최고 경영자를 아프게 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당신을 괴롭히고 있을 뿐이지요.그는 당신이 마음에 분노를 품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은 승진해야 할 터인데도 그렇지 못하고 원하는 지위를 얻을 수도 없다는 바로 그 생각이 지금 당신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일이 과연 당신을 승진시키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죠?
오히려 인사담당자에 대한 당신의 부정적인 태도는 외면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결코 숨길 수가 없지요.
당신의 반응으로 결코 더 좋은 직책으로 승진시켜 주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성장도 나타나고 그 성장을 통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7년 후 그는 그 회사에서 최고 경영자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당신도 마음 자세의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생각이 올바르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안 된다.’고 말씀하시고 때가 적절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당신이 부족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장하라’고 말씀하십니다.

4.모든 것이 적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 기적은 일어나고 장벽은 무너지고 산들은 정복됩니다. 그리고 문제도 사라지고 마음의 번민도 해소됩니다.
절망적인 알콜 중독자는 해방을 받고 중독자는 치료를 받게 됩니다.
의심에 사로잡힌 자는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고 병든 육신은 치료함을 받게 됩니다.
당신의 꿈을 향한 문은 갑자기 활짝 열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버트 H.슐러 – 미국은 물론 구라파 일대에 금세기 최고의 목회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떠한 불가능도 주님 안에서 가능하게 된다고 설교하며 특히 적극적인 기도를 늘 강조했다.현재 우리나라에서도 AFKN(일요일 9:00)채널을 통해 그의 열렬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염려하지 않고 하는 기도

염려하지 않고 하는 기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일에 기도하라는 것이다! 걱정에 대한 유일한 치료책은 기도이다. 걱정하는 시간과 힘이 있을진대 그것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놀라운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두가지 간단한 단어가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을 뜬다. ‘아무 것도‘,’모든 일에‘.우리가 이 말대로 모든 일에 기도하면 아무 것도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결과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날 것이다. 첫째, 내적으로 ‘모든 지각 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둘째, 외적으로 당신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인생의 문제와 관련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우리가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문제들을 기도 중에 하나님께 맡겨 버림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해결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자신의 수고가 종종 하나님의 역사를 가릴 때가 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시 37:5) 이것은 우리의 역할이란 단순히 맡기고 의지하는 것임을 뜻한다. 하나님의 편에서는 성취시켜 주시는 것이다. 그는 과정에서 우리를 사용하시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다만 우리는 그 분의 손에 맡기고 조용히 신뢰하는 것이다. 그 분은 역사하시고 우리 마음에는 평강과 안식이 깃들게 된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면 그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공연히 걱정하는 것은 죄가 된다. “하나님은 나의 생활을 다스리지 않는다”고 하거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며 나의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시기 않으신다”라는 것이다. 걱정은 의심하는 것이며 그 의심은 그의 사랑,그의 섭리, 그의 능력을 불신하는 것이다. 걱정에 대한 대답은 그것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당신이 기도한다면 왜 걱정하는가?”라는 복음송이 있다. 만약 우리가 문제에 대해 성실한 태도를 갖는다면 우리의 철학은 오히려 “당신이 걱정할 때 외 기도하는가?라는 것일 것이다.
의학자들은 말하기를 걱정은 어떠한 질병과도 같이 우리들 몸의 건강을 좀먹는 것이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죽음의 종소리를 듣게 해준다고 한다.
걱정이라 많은 경우에 있어서 생명에 지장을 준다. 우리는 이런 버릇을 폐기하고 이것을 죄로 여겨야 한다. 우리는 그 것을 죄라고 선언하고 거기서 우리를 구워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일에 기도함으로 모든 근심 걱정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기도할 때 나타나는 역사

얼마 전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있을 때 주께서는 나에게 일어나 새로운 지역에 새로운 교회를 하나 개척하여 목회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장소가 어디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는 막연히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날 여러 시간 동안 동일한 감동에 사로잡혔다. 나는 그것이 주께로 나온 것인 줄 알고 “주여,내가 어디로 가오리이까? 내게 그 장소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내가 가겠나이다”라고 말한 바로 그 다음날 한 젊은 부인이 우리의 모임에 찾아와서 캘리포니아주에서 약 700마일 떨어진 곳에 웨어버빌이라는 조그만 촌락에서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즉각적으로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깨달았다. 시간적으로 이렇게 일치한다기보다는 내가 그 형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마음 속에서 강한 확신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가서 나의 아내와 어린이들을 데리로 떠나려고 하였다. 나는 또한 나의 목회 사역에 도움 받을 한 젊은 사람을 초청하였으며,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였다. 우리는 그의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마음을 같이 하여 떠나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여행에 따르는 비용 문제에 직면하였다. 이 돈은 어디에서 갹출한단 말인가? 우리는 떠나려고 작정한 날이 다가올수록 이 문제로 인하여 더욱 걱정하고 초조해졌다. 개스와 식량 가격이 치솟았음으로 별 궁리를 다해 보았다.

결국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일하기 시작하였다. 기도를 시작한 지 며칠 후에 나는 에어버빌에 있는 신자들 모임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 내용은,하나님께서 그들을 감동시키셨음으로 우리의 여행비용을 담당키로 했다는 것이었다. 한 장의 수료가 동봉되었다. 바로 그 전날에 웨어버빌에서 복음 전도자를 구한다는 것을 나에게 처음으로 말했던 젊은 부인이, 자기가 어떻게 했으면 이 일을 도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또 다른 부인이 전화로 말하기를,그녀가 이 여행에 보태 쓸 수 있는 것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때는 출발할 날짜는 아직도 두 주일이 남아 있었던 때이다. 이처럼,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고 맡길 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확신시켜 주신다. 주님을 찬양하라! 그는 얼마나 좋으심 분인가! 여행의 결과는 아름다웠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많은 생명들이 변화를 받았다.

비록 모든 믿는 자들이 가난하고 불쌍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고아원이나 학교를 세우는 데 부름받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모든 문제를,베드로전서 5장 7절,빌립보서 4장 6절,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명백하게 보여진 바와 같이,하나님께 맡겨 버림으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 죠지 뮬러 –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피츠 지음 일부 내용

기쁨을 얻기 위한 기도

기쁨을 얻기 위한 기도란?

“지금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한복음 16:24)

주님께서는 우리가 물질 구하기를 바라고 계시며 그것은 우리가 물질을 받을 때 우리 기쁨이 충만하여 넘치도록 하기 위함이다. 가끔 하나님께서는 내가 간구한 특별한 요구를 응답해 주심으로 나에게 큰 용기를 주신다. 기도가 응답될 때 기쁨은 충만한 것이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이 기쁨을 알고 체험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역사하심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운 일인가!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상당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

응답받는 기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 기쁨과 믿음을 증가시킨다. 기도한다는 것은 얼마나 용기를 북돋우는 것인가!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 기쁨을 매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도 응답받는 기도의 기쁨을 알 수 있다. 그의 이름으로 간구하기 시작하라. 응답은 반드시 올 것이며 당신의 기쁨은 충만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에 나는 동부 펜실바니아에서 순회 연설단에 참석하고 있었다. 나는 대단한 연설가인,하나님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을 대신하여 나서게 되었다. 그는 아팠기 때문에 나에게 그 위치에 서보라고 요구했다. 나는 그때 궁중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이 나의 강점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하나님만이 청중에게 축복해 주실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왠지 두렵고 떨렸다.

내가 이 모임에서 말할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을 때 앞에 있던 한 부인이 동부 펜실바니아에서 어린이를 지도했던 프로그램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자 갑자기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3년 전에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동부 펜실바니아 지역을 방문할 특권을 주셔서 어린이를 위한 선교사역을 견학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3년 전에 했던 나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가 동부 펜실바니아에 있었던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확신감에 사로잡혔으며 용기가 생겼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내셔서 사람들에게 축복하시기 위하여 나의 말을 듣게 하셨던 것이다. 그 순회 연설은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것보다도 가장 유익한 것이었으며 생명을 변화시키는 체험이었다.

응답받는 기쁨보다 더한 것은 없다. 우리가 기도하여 응답받는 것은 그 자체가 축복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의미가 깊다. 우리가 만일 어떠한 은밀한 죄를 품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에 응답치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에 응답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 생활을 기뻐하신다는 참된 증거이다. 이 증거는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넘치게 한다. 주를 찬양케 한다.

예수님은 위에 나온 구절에서 우리가 기도에 응답을 받으면 기쁨이 넘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충만하다라는 헬라어에는 ‘가득 채우다’ ‘기준치를 넘어서다’ 라는 의미가 있다. 당신이 특별히 기도해서 특별한 응답을 받으면 당신의 기쁨은 억누를 수 없다. 그것은 흘러 넘친다.

간만에 나는 응답받는 기도 때문에 이 기쁨을 체험했다. 다음 월급날이 되기 일주일 전에 돈이 바닥났기 때문에 나의 재정 형편에 기족이 있기를 하나님께 간구했다. 나와 함께 지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한 그리스도인 형제가 나에게 와서 나의 손에 현재 필요한 것을 충당해 쓰도록 수표를 주는 것이 아닌가? 특정한 간구에 응답해 주시는 역사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기쁨은 고조되었다.

내가 이것을 기록하면서 지난 주에 요구하여 응답 받았던 것을 또 하나 간증하고자 한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실로 우리의 가슴을 후련케 하는 빗방울이 메마른 대지 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 일년 강우량이 12인치도 못되는 사막이나 다름 없던 남부 캘리포니아 지방에 살고 있었다. 연무는 자욱하였으며 마른 풀잎과 산쑥으로 인해 화재 위험이 연중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지난주 나는 몇달만에 처음으로 “하나님이시여 대지를 축일 만한 비를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창가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들 둥 기도하는 자에 대한 응답으로 내려 주신 것이기에 더욱 귀하게 보인다.

야고보서 5장에서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으나 그가 기도하였을 때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이 것을 한번 생각하여 보라. 하나님께서는 비천한 사람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늘 문을 닫으실 것이다. 그는 또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늘문을 여실 것이다. 보다 더욱 귀한 것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자. 그가 응답하실 때 우리의 기쁨은 넘쳐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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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가는 방법이야말로 내 마음 속에서 믿음이 점점 식어질 때 은혜의 역사를 불붙게 하는 수단이 되어 왔다. 그것은 또한 내가 타락한 후에 주께로 돌아오는 수단이 되었다. 왜냐하면,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죄에 머물러 있는다는 것은 생각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기도에 대한 응답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고 내 기쁨을 충만케 하는 수단이었다.
죠지 뮬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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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 내용

예수님의 기도 생활

누가복음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요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의 양성 중 인성을 강조한다. 얼마 전에 나는 누가복음을 쭉 한번 읽어 보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나는 누가복음을 통독했을 때 예수님의 기도생활에 대해 우리에게 보여준 부분이 매우 많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성경에서 예수의 기도생활을 보여준 누가복음 성경구절에다 표시를 했다. 나는 이 요절들을 읽을 때마다 기도에 용기를 얻곤 하였다. 이 구절들을 함께 읽어 가노라면 우리 주님의 생애 가운데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이었나를 알 수 있게 된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눅3:21)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5:16)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6:12)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눅9:1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눅9:28)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신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눅11: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눅18:1)
“시몬아,시몬아,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희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더니 …” (눅22:31~32)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끓고 기도하여”(눅22:40-41)

예수는 육신을 가지신 하나님이셨지만 기도의 사람이셨다. 그는 완전한 인간이었으며,그러므로 기도하였다.
그는 기도에 대해 가르쳤을 분 아니라 몸소 기도하셨다.그는 어는 때를 막론하고 기도하셨으며 혼자서 기도하셨다. 종종 밤새워 기도하셨으며 기도하기 적합한 장소를 택하셨다.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를 기도와 금식을 시작하셨으며 그가 죽으시기 전에 행하셨던 최후의 것도 기도하는 일이었다. 때로는 그가 아침 일찌기 일어나 혼자 기도하러 나가셨다. 그의 생애는 우리에게 기도하라,기도하라,기도하라,고 말해 준다. 모든 계절에 기도하라.하나님께 홀로 기도하라!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라! 기도에 우선권을 돌려라!

예수께서 그 자신의 생애와 사역 가운데서 왜 기도에 많은 강조점을 두었는가? 기도는 의무감을 이루기 위한 종교적 위식인가? 아니다. 기도에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성령충만한 인간으로서 그의 사역을 이루셨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예수는 한 인간이었다.그는 성령으로 충만한 한 인간이었으나 우리와 같이 연약한 인간이었으며 죄는 없으셨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었으나 또한 인간이었다. 그는 종종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하였다. 그는 성자 하나님이셨으며 성부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기도할 필요성을 가지신 인간으로서 활동하셨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그의 방법을 따라야 한다는 한 모본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다. 우리는 기도에 전념하여 깊은 중보의 기도 즉 하늘나라를 세우고 사탄의 진지를 쳐부수는 기도를 드려야만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는 말씀만으로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친히 행함으로써 가르치신 것이다. 그는 기도하였다. 그는 많이 기도하였다. 그는 항상 기도하였다. 그는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 그는 기도를 계획하였다. 그는 기도할 기회를 놓치지 아니 하였다. 그는 기도하기 위하여 사막지방으로 특별 여행을 하였다.
그는 모본을 우리의 기도에 대한 생활 신조로 삼자,그가 기도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씀 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였으니 너희는 내가 행한대로 해야한다. “


일반적으로 한결같지 않다면 기도는 영구한 과정에 있어서 출발점도 되고 골인지점도 된다. 교회가 각성하고 세상 죄가 추방될 때는 누군가가 기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신령한 발전의 은밀한 역사가 기록되어 낭독될 수만 있다면,거기에선 욥,사무엘,다니엘,엘리야만 같은 바울,야곱과 같은 요나단,에드워드,윌리암 케리,죠지 뮬러와 허드슨 테일러 같은 중보기도자가 하나님과 은밀한 곳에서 문을 닫고 열정적으로 기도했던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출발점은 간구와 도고로 시작되다가 마지막 결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 피어선 –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피츠 지음 일부 내용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도다 그러므로 추수할 주인에게 청하여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마태복음 9:37-38)

문제는 간단하다. 추수할 일꾼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해결책도 마찬가지로 간단하다.’그러므로 너희는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너무 간단해 보인다. 참으로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더 많은 기독교인 사역자들을 얻기 위해 여러가지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실 수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조직의 방법,개선의 방법,광고하는 방법 등등을 가르쳐 주실 수 있었다.그러나 더 많은 사역자들을 얻기 위하여 하라고 하신 것은 단지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수많은 영혼을 거두어들이는 기독교 사역자들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 이 간단한 방법이 요즘과 같은 세상에서 얼마나 무시하기 쉬운 일인가! 그것이 과연 완전 충족한 것인가? 그것이 실제로 역사하는가?
누군가가 말하기를 사람이 기도한 이후에는 기도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나 기도하기까지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노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한 이후에 다른 어떤 일들을 하라고 하시나 비밀은 여전히 ‘그러므로 너희는 기도하라’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우리의 추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추수이다. 그는 추수를 책임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추수 맡을 자에게 기도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 들판,당신의 토지에 일꾼을 보내 주시도록 오늘부터 기도하기 시작하라.하나님은 우리들 모두에게 이 들판의 어떤 부분들을 맡기고 책임지우셨다.
나는 가끔 이 원리가 역사하는 것을 보고 놀란다.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사역자들을 보내 주실 때 이 사역자들은 인간들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심중에 역사하심에 따라 섬긴다. 그러나 대체로 인간의 비위를 맞추는 사역자들은 그들의 부르심이 하나님에게서가 아니라 사람에게서이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하고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

기독교 사역자들을 얻기 위해서 가장 안전한 방법 즉 이때까지 가장 휼륭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기도였다. 기독교의 사역에서 어떤 사람과 힘을 합해서 일하는 것이 비성경적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도한 이후에는 주께서 이렇게 하라고 인도하신다. 기도가 근본이다. 기도는 아직도 추수할 일꾼을 얻기 우힌 방편(Modus operandi)이다.
요즘 이러한 문제에 관한 우리를 격려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나는 1974년에 역사상 처음으로,세상에 태어났더 사람들 보다도 예수를 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다시 말하자면 세계적으로 숫자에 있어서 기독교개종자의 증가가 1974년 한해 전체 인구증가를 능가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는 영적으로 부흥이 일어나는 영화로운 시대이다.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좋은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기 위해 더 많은 일꾼과 사역자들을 기도함으로 구해야 한다. 이 마지막 세대에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 하나님의 왕국으로 더 많은 무리가 들어오게 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가 일꾼을 보내시기를 위해 …. 기도하라.’
추수꾼으로 신임받기 위해서 양육받고 성장하고 연단받아야 하는 것처럼,기도로 말미암아 파송받는다.

기도는 여전히 하늘나라 왕국에 있는 어떤 것보다 첫째 단계이다.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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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인이 집을 떠나면서 그가 고용한 우두머리 점원에게 장사에 관한 모든 권한 일체를 맡겼으며 그 점원은 상인의 이름으로 수천 달러를 인출할 수 있었다.
그 점원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장사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한다.
상인은 그 점원이 장사의 이익과 그 일에 전적으로 헌신할 사람임을 알고 맡겻으며 점원은 상인의 이름을 신용하여 모든 재산은 자신의 관리 하에 두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실 때 자기의 종들에게 이 땅 위에서 하늘나라 사역을 맡기셨다.
그는 다른 방법으로는 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는 다만 그의 종들이 그의 사역을 감당할 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자기의 이름으로 구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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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믿음이고 기도가 승리하는 하는 방법임을 기억하자.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시편57:2)

내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면 하나님은 일을 이루신다. 이것은 나의 일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이다.
하나님은 기도 중에 그를 기다리는 자들을 위해 역사하신다.
인생은 무수한 도전과 문제와 곤궁투성이다.
나는 이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술수나 잔꾀,잔재주,훈련,기술 등 어떤 수단도 의지하지 않는다.

내가 기도하리라 – 그가 이루시리라. 이것이 나의 전략이요 나의 힘이다.”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부르 짖으리라 ”
오늘날 내가 이런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나는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가?
나는 기도하리라 – 하나님이 이루시리라. 즉 나의 해결책은 기도이다.
나의 중심에 염려와 고통을 가져다 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나는 기도하리라 – 하나님은 이루시리라.
나에게 맡겨진 어려운 과업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나는 기도하리라 – 하나님은 이루시리라

기도는 어떤 사역에 있어서도 첫번째 할 일이다. 내가 기도한 이후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할는지 모르지만 기도보다 효과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능력과 자원은 무한하다. 그는 이것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나를 사용하신다. 실로 그는 여러 방법으로 나를 사용하실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일들을 이루시며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시고 문제들을 해결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채워주신다. 나는 다만 일을 이루기 위해 기도한다면, 가장 좋은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기도하고 있다면 사실상 가장 강한 능력으로써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기도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는 전지전능하다. 나는 기도하리라.- 이것은 나의 할 일이며 모든 일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은 일을 이루실 것이다. 전쟁은 주님께 속한 것이다.결과는 그의 행하심과 우리의 기도에 있다.
“내가 부르짖으리라.- 하나님은 이루시리라”

나는 최근에 한 기도모임에 참석했었는데 거기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서 두 가지 중요한 말을 꺼내고자 한다. 그 강사는 수년 동안 기도의 능력에 대해 언급했으며 기도에 대해 썼고 가르쳐 왔다. 그의 사역은 주로 기도하는 모임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말했던 두 가지 중요한 말은 공리로 불리운다. 웹스터(webster)사전에 의하면, 공리라는 말은 자명한 진리 혹은 정리로서 이 진리는 언뜻 보아도 너무나 명맥하기에 밝히기 위해서는 어떠한 추리나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이것은 마치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라든가 두 점 사이의 가장 가까운 거리는 직선이다라는 것과 같다.

그 강사가 나에게 들려준 두 가지 공리는 다음과 같다.
(1)”하나님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 있다.”
(2)”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기도하는 사역이다.”

이 말들이 의미하는 바는 지축을 뒤흔드는 것같지는 않지만, 이 공리를 자세히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이 기본적인 진리를 얼마나 무시해 왔는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이를 하실 수 있다면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고 그러므로 그의 도움을 구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의 일을 수행하시며 그는 자기 백성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일을 하신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사자로서 그의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이 일을 하실 수 있으며 우리가 기도할 때 그일을 하신다.
나는 그 모임을 통해서 기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겠다는 감동을 받았다. 내가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을지라도 지금 그것을 알게 된 이상,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은,정열적으로 일하는 것보다 기도 중에 하나님을 바라는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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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모든 행사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구하였다.
나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나의 사생활을 털어 내 놓을순 없지만 그것이 만약 기록으로 남겨진다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분명한 증거를 들어서 남겨 놓을 수 있다. 그는 기도하는 자들에 관해 이따금씩 또는 한 두번씩이 아니라 수없이 들으시기 때문에 그것은 나에게 습관처럼 되어 내가 무엇을 구하든지 들어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내 문제를 그 앞에 내 놓는다. 그러면 모든 일에 유익이 뒤 따른다. 무엇보다도 중보 기도에 더 큰역사가 나타난다. 나는 이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확신에 사로잡힌다. —- 스펄전 —-

기도할 때 나타나는 역사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사도행전 6:4)

기도의 효능성

기도의 효능성은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으로써 최대한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인간은 유익을 가장 많이 가져오는 것들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사업을 하는 세계에서도 보면,고용인들이 시간을 투자하는 곳에서 최대의 이윤을 얻고자 한다.
유능한 숙련공이 고용되며 차트와 통계표가 작성됨으로 어떠한 곳에 투자해야 가장 큰 이윤을 얻을지를 조사한다.
만약 어떠한 활동이 보다 큰 수확을 가져 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이 더 큰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을 기대하고 그 분야에 더 많은 돈과 시간과 인사들을 하게 될 것이다.
초대교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의 사역에 가장 풍성한 결과들은 기도와 말씀에 있었다고 믿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사도행전은 문자적으로 기도모임과 그 기도로 일어난 역사로 일관된 것을 설명한 책이다.
그들이 기도했을 때 역사는 나타났던 것이다.

그외 다늘 직무나 일거리가 사도들의 시간과 정력을 요구했을 때 그들은 이를 거부했다. “우리는 군중과 뒤섞여 있음으로 기도의 시간을 허비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오직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모든 바울서신을 통해서 보면,바울은 그가 시간을 잘 사용한 때는 기도함으로 시간을 사용한 때라고 여겼다.
나는 바울이 기도의 사역에 대해 매우 많이 언급했던 것을 보고 세삼스레 놀랐다.

로마서 1:9 “내가 그의 다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에베소서 1:16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빌립보서 1:3~4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
골로새서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데살로니가후서 1: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디모데후서 1: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며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항상’,’쉬지 않고’,’계속적으로’라는 말들을 유의해 보라.
바울은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함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잘 기도한 자는 잘 연구한 자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잘 기도한 자는 잘 준비한 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가장 효과적인 준비는 기도 준비이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기도를 그들의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간주했다.
기도는 말씀사역 이전에 나왔으며 이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할 수 있다.

사도행전은 일련의 기도 모임과 그 결과로 나타난 역사라고 일컬어진다.
그들이 사도행전 2장에서 기도했을 때 성령이 능력으로 임재했으며 함께 있는 무리들은 듣고 구원을 받았다.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며 성전에 올라갔을 때에 앉은뱅이가 고침받았으며 무리들은 예수를 믿었다.
4장에서 그들은 기도했고 그들이 모여있는 곳에 진동이 일어났으며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파했다.
6장에서 그들은 “…. 우리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리라”고 했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이러한 현상은 사도행전 전체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먼저는 기도가 있었으며 다음에 엄청난 결과가 뒤따랐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땅을 진동시키시고 감옥문을 여셨으며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영접하였던 것이다.
내가 나의 기도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나의 기도로 말미암아 일을 할 수 있다고 정말로 믿고 있는가?
내가 중보기도를 하거나 개인기도를 할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가?
오,하나님이 나를 위하여,그리고 나로 말미암아 하실 수 있다는 것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다는 데에 강조점을 두지 않으며,어떠한 노력보다 기도로 말미암아 더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의 삶 속에 나타내 보인다는 것을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기도는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이다. – 오 할레스비 –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홍 병창 옮김 저서의 일부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란 심리적으로 기분을 돋구는 강심제 역활을 하거나 고차원적인 정신적,심령적 치료 요법이긴 하지만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도란 실제로 명백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 유일명백한 대답은 ‘그렇습니다‘이다.

내가 기도를 하는 때면 나의 삶 속에 강한 능력으로 역사하는 그 능력에 나는 압도되곤 한다.
이러한 결과는 즉각적이고도 매우 극적이다.
이러한 결과는 늦게 나타나기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별로 없는 것같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기도하노라면 사태는 달라진다.

기도는 일을 변화시키며 사람을 변화시킨다.

이것은 우리를 영적인 세계로 인도한다.

기도는 영적 투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이 세상은 영물 들 즉 선과 악의 전쟁터이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다.그는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특별히 영적인 존재이다.
기도할 때 나는 영적인 전쟁에서 영적인 무기를 사용한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나는 주님이 승리하신 그 승리를 위해 기도한다.
이러한 기도의 능력은 사탄의 진지를 초토화시키는 것이다.
사탄의 능력은 기도의 능력을 당해 내지 못한다.
기도는 주님의 갈보리산 승리를 적용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을 압도해 버린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기도 이외의 다른 어떤 작전을 세운다면 사탄의 음모에 영락없이 실패하고 말 것이다.

기도는 영적인 사역이다.

기도는 기독교인의 실제 활동에서와 같이 역사를 일의킨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점은 매우 훌륭하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기도란 기독교인의 사역을 돕게 하거나 그저 좋다는 그러한 것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이러한 과오를 범치 말아야 하겠다.

기도는 일이다.기도는 사역이다.

실제로 이러한 감추어진 사역이 없다면 외부로 드러난 결과는 시시하다.
우리의 전쟁은 영적인 것이다. 이러한 전쟁에서 갖추어야 할 무기 또한 영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기초공사를 놓는 것이다.
때때로 그것은 기초공사일 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직접 일하여 얻는 것보다 기도로 말미암아 더 큰 일을 성취한다.
내가 만약 인도나 아프리카에 있다고 한다면 거기에서 기도하는 사역이 있는 동안은 가장 효과적인 사역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인도나 아프리카에서 매일 기도하는 사역을 감당할 것이다.

기도란 영을 힘있게 한다.

그 효력은 어디서나 나타난다.
내가 중국 사람을 위해 기도할 필요성을 가진다면,미국에 있을지라도 중국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이 세상을 축복하시도록 통로를 넓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닫혀진 인간,닫혀진 삶 속에 그의 부요하심을 부으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열린 마음,사모하는 마음을 찾고 계신다.
그 사람이 기도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열린 통로를 통해 복을 주신다.
어찌하여 하나님은 주시기만을 바라시는가? 그것은 그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의 수용적인 태도를 취한 사람을 찿고 계신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기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기도는 다른 중요한 문제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요구한다.
그러나 기도함으로 엄청난 결과를 얻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기도의 시간이야말로 참으로 보람된 것이다.
이와 같이 훌륭한 성도들은 먼저 기도하면 바쁜 일들이 쉽게 풀려 나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본적으로 교제하는 데에 세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직접적으로,문서로,기도로 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우리는 참석하거나 목소리나 개성을 나타내 보임으로 교제한다.
문서로 우리는 기록한 문자나 기계적으로 기록된 문자 등을 통해서 교제한다.
이렇게 하므로 우리의 사역을 배가시킬 수 있다.
기도로 우리는 또한 교제한다. 영적인 견지에서는 다른 어떤 양식보다도 더 많은 능력과 영향을 끼친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사역을 감당하게 하신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능력이 인간의 모든 영역데 역사하시게 하는 통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기도는 진실로 실제적인 효과를 가져 온다.
기도는 풍성한 결과를 가져온다.
영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문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열려 있으며, 그리로 들어갈 때에 엄청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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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세가 된 모세는 르비딤 전투의 선봉에서 물러났다. 그는여호수아에게 군대를 맡기고는 거룩한 지팡이를 잡고 산에 올라갔다.그는 전투를 관장한 후 손을 들어서 기도했다.그는 온종일 보이지 않는 전쟁을 했다.그의 간구로 말미암아 승리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세 사람의 기도하는 노인들이 있다. 그 중 두 사람은 한 사람을 떠 받치고 있다. 르비딤 전투에서 우리는 기도란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한다는 교훈을 배운다. 모세는 그의 젊은 시절에 싸워서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이제 그는 기도함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엔드류 머레이 –

이 글은” 당신이 기도한다면?” 한국 문서선교회 밥 핏츠 지음,홍병창 옮김의 저서의 내용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