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정의 풍습

족보의 존중

족보의 보존

마태복음을 펴면 그 첫머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길게 기록되어 있어서 처음으로 성경을 대하는 사람의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저자는 왜 이렇게 복잡한 이름들의 나열로부터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이 글이 유대인을 위하여 쓴 것이라는 것을 염두해 두면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그것은 유대인처럼 족보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보존하기에 노력한 민족은 어디에서도 찿아 보기가 힘들 정도이기 때문이다.그러면 유대인은 어찌하여 그렇게 족보를 소중하게 여겼을까? 그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족보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는 다르다.그들은 지파의 구별과 토지의 소유권과 지위와 권력이 모두 그 족보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대상 5:1-3,민3:10,스2:61-62,느13:27-28) 그러므로 유대인의 족보는 대대로 내려오면서 많은 소란과 변동 중에서도 안전하게 보존되어 왔다 (대상 1: – 9:) 마태복음 첫 머리에 기록된 예수의 족보는 약 2천년 간 내려 온 것이고 누가복음 3장에 기록된 족보는 아담에서 부터 시작하여 4천년 간이나 길게 내려온 것이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저자가 제일 먼저 예수의 족보를 기록한 이유는 그러므로 예수는 예언의 응답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탄생하시고 또한 예언의 응답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하여 그 왕통을 이어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유대인에게 납득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족보의 기재법

족보의 기재법에는 두가지가 있는데,아버지로부터 자자 손손에 저하여 온 순서를 따라 기록된 것과 법률상 산업을 계승하여 온 순서를 따라 기록된 것이다. 마태복음 첫 머리에 기록된 족보는 다만 예수가 혈통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후손만 되는 것을 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손으로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산업,또 다윗에게 준 왕통을 계승하여 이것을 완성하실 분이신 것을 나타낸 것이다.(창22:17-18,삼하7:12-16,눅1:30-33) 또 한 가지 족보의 기재법에 대하여 주의할 것은 마태복음 1장 17절에 기록된 것과 같이 14대식 세계를 구별한 것이 이 시대의 풍습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스미스(W.Smith)씨는 그의 [성서사전]에 이와 같이 썼다. “자기가 마음대로 세계를 구분하고 또는 신비스러운 방법으로써 같은 숫자를 만들고 또 이것을 만들 때에 대를 중복시키든가 생략하는 것이 유대인의 통상적인 습관이다” 예수의 족보에 있어서도 그 저자는 몇 사람을 생략했다. 즉 8절에 “요담은 웃시야를 낳고”라고 하였지만 요담과 웃시야 사이에 아하야,요시야,아마야 3대가 생략되었고 11절에 “요시야는 여고냐를 낳고”라고 하였지만 그 사이에 여호야김이 생략되었다. 또한 그 저자가 예수의 세계를 완전 수인 7의 배수 되는 14대를 세 번 중복하여 42대로 한 것은 수에 특별한 의미를 포함시켜서 생각한 유대인의 좋아하는 수에 맞춘 것인데 이것으로 보아도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는 구주라고 인정하게 하기 위하여 저자가 고심한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가족 제도

아버지의 권리

부부가 있고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고 품군과 종이 있으면 자연히 상호간에 가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생기는 것이다. 옛날 유대에서는 그 아비된 자의 권리는 거의 전제권이어서 자녀의 생명이라도 다스릴 수가 있었지만 모세의 율법은 이에 제한을 두어 아버지는 마음대로 자녀를 죽이지 못하게 되었다.만일 자녀에게 죄가 있는 경우에는 마을의 장로에게 재판을 받은 후, 그의 부모를 친자나 또 이를 욕하고 천대한 자나,아버지의 첩을 빼앗은 자나,불량 방탕하여 함부로 악한 짓을 하는 자들은 사형에 처했다. (출21:15,17,신21:18-21,레20:10-)

장자의 권리

율법에서 아버지는 그 아들의 장자권을 중히 하라고 명했다.그러기 때문에 아들들에게 자기 소유를 분배할 때 장자에게는 다른 아들들의 2배를 주지 않으면 안된다. (신21:17) 장자권은 다만 이에 그치지 않고 전 가족을 지배할 권한이 있다. (창27:29,창49:8) 그리고 또 모세 시대 이전에는 제사권도 장자에게 속해 있었다.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봐서 장자라고 하는 말은 존귀와 특권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출4:22,히1:6,히12:23)

본처와 첩

첩은 돈을 주고 사온 자와 또는 산 처의 노비로서 가족에 들어온 자나 혹은 전쟁에서 잡아온 자이다. (출21:7-11,창29:24,29,신21:10-13) 그러나 본처와 첩과의 사이에는 엄연한 구분이 있으며 그 권리도 같지 않았다.첩의 자녀는 아버지의 특별한 허가가 없으면 본 처의 자녀와 같이 권리를 가지지 못했다.아브라함의 처 사라는 첩의 아들 이스마엘이 본처의 아들 이삭을 보고 비웃었다는 이유로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같이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했다.(창21:9-10) 또한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고 혹은 저주한 자의 구별을 보면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한 시므온,레위,유다,잇사갈,요셉,베나민 등은 야곱의 본처의 소생이지만 에발산에서 저주를 한 자들은 그 큰 죄로 말미암아 장자권을 잃은 르우벤과 야곱의 첩에게서 난 아들들이다. (신 27:12-26)

이 혼

이혼은 아내가 수치스러운 소행이 있을 때 이혼 증서를 준 후에 이혼을 성립시킬 수가 있다. (신24:1-4) 그러나 아내가 남편에게 이혼을 성립시킨 예는 없다.또 첩은 산 주인이 법대로 하지 않을 때는 마음대로 나갈 수가 있었다.포로로서 첩이 된 여자는 이별할 때에도 마찬가지 규례로 주인은 결코 그 여자를 돈으로 파는 일은 할 수 없었다.(출21:11,신21:14)

간 음

간음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아내나 혹은 약혼한 여자를 범하는 일로서 이에 대한 형벌은 사형이다.당사자는 돌로 쳐 죽인다.(신22:22-27) 물론 형벌을 집행하기 전에 확실한 증인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증인도 없고 또 남편의 눈에 발각되지도 않았지만 간음의 의심이 있을 때는 그 부인을 제사장에게 대리고 가서 “의심의 헌물”을 손에 들리우고 “저주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하여 그 진부를 시험하였다.(민5:11-31) 약혼하지 않은 여자와 관계한 남자는 그 여자의 아버지에게 폐백을 드리고 그 여자를 대리로 온 후 평생 이 여자와는 이혼하지 못했다.(신22:28-29) 그러나 여자의 아버지가 이것을 승락하지 않은 경우에는 폐백 대신에 그 가치 만큼 대금으로 지불하도록 되어있다. (출22:16-17)

종의 대우

종은 보수를 주는 일이 없고 완전히 그 주인 지배하에 있는 것으로서 만일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팔려고 할 때에는 본인의 의향 여하에 구애 받지 않고 팔 수가 있다.종이 되는 자는 포로,부채자 또는 그의 자녀,도둑,종의 자녀 등이다 (신20:14,레25:39,출21:2,4) 히브리인의 종으로 일하는 연한은 6년 간이어서 7년째에는 풀려 나기를 요청하지 않아도 자유로 내어보내는 법이었다.그러나 희년을 당할때는 6년이 차지 않았어도 해방하는 법이다. (레25:39-43) 그러나 아내와 자녀는 그 주인에게 속한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그는 홀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그러므로 아내를 사랑하므로 가기를 원히 않은 경우에는 이것을 명백히 주인에게 말하여 주인과 같이 사사 앞에 가서 일생을 주인에게 섬기는 증거로 송곳으로 주인에게 귀를 꿰게 한다. (출21:1-5) 이 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와 같이 종 학대하는것을 허락치 않으며 긍휼의 정신을 가지고 종을 우대할 것을 명하였다.그러기 때문에 만일 주인이 종의 눈이나 이를 다치게 했으면 곧 그를 해방시키지 않으면 안 되며 또 만일 종을 처죽인 때에는 이를 벌하는 율법이 있었다 (출21:2-21,36,27)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종교상의 특권까지 비복에게 주었는데 즉 안식일에는 일을 쉬게 하고 민족적 제사에도 출석하는 것을 허락했다. (신 5:14,12:13,18) 이 외에 할례까지도 비복에게 의무적으로 베불었다. (창17:13,27)

품군과 임금

고용인은 종과 달라서 고용주에게 일정한 임금을 받기 위해 고용주를 위하여 일정한 일을 하는 자이다.일을 마치고 임금을 받은 이상에는 전혀 관계과 없다. 품군의 임금은 그 날에 반드시 지불하라는 엄중한 율법이 있었다.만일 이것을 이행치 않은 자는 노동자를 학대하는 자라 하여 여호와께 죄를 범한 자로 인정하였다. (신 24:14-15,마20:8,약5:4)

약혼과 결혼

약 혼

유대 사람의 약혼하는 풍속은 과거 우리 나라와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다.즉 부모는 그들의 자식을 위해 처녀를 선택하며 혹은 선택하지 않더라도 약혼과 혼인에 대해서 맡아서 관리를 하므로 당사자의 선택권은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창24:4,28:1-2,21:21,38:8-12) 창세기 24장에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 (그는 당시에 40세였다)의 신부될 처녀를 택하러 간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드 종은 도중에서 리브가를 만난 사실을 그의 아버지와 형에게 이야기하고 결혼을 정한 즉 그들은 리브가에게는 아무 의향도 듣지 않고 곧 대답하면서 ” 이 일이 여호화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오와의 명대로 그도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하였다.이렇게 하여 약혼이 이루어질 때에 신랑의 부모로부터 신부의 부모형제에게 예물을 보내고 혹은 돈을 보내는 일이 보통이었으므로 아브라함의 종은 이야기의 결정을 지은 후 금은풍물과 의복을 리브가에게 주고 또 그 형과 모친에게 보물을 주었다고 하였다. (창24:48-52)또 예물을 주는 대신에 시부될 부모에게 일을 해 주는 일도 있었다.야곱이 그의 아내를 얻기 위해 14년 간 라반에게 일해 준 것과 모세가 이드로의 양을 친 것들이 그 일례이다 (창9:18,27,출2:21,3:1,삼상18:23-27) 전쟁 때에는 부녀를 포로로 대려다 아내를 삼는 경우에는 그 아내가 될 부인은 머리를 깎고 손톱과 발톱을 손질하고 포로 때의 의복을 벗어버리고 그의 부모를 위해 일개월 간 통곡한 후에 결혼하는 것이다. (신21:10-14) 또 형이 아들이 없이 죽은 경우에는 동거하던 동생은 형의 아내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게 하고 형의 가계를 계승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율법도 있었다.이는 그들의 가계를 중히 여기는 데서 생긴 풍습이 규범이 되고 만 것이다. (신25:5-6,창38:) 신부의 아버지가 혹시 그의 딸에게 재산을 주는 일도 있었다.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웃니엘에게 줄 때 ‘남방 땅’과 ‘윗 샘과 아랫 셈’을 준 일이 있다.(삿1:15,창24:59-61)약혼과 결혼의 사이 기간은 보통 일년 쯤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신20:7,삿14:8) 그렇게 해서 약혼한 사람은 벌써 부부가 된 것 같이 남편이라 하며 아래라고 부를 만한 자로서 쌍방이 정조를 굳게 지키지 않으면 안 되므로 만일 다른 사람과 관계가 있으면 이를 간음 죄로써 곧 처벌하였다. (마1:19-20,신22:23-24). 그러기 때문에 만일 요셉이 마리아를 오해하고 송사하여 그 여자의 임신을 공포하였더라면 유부녀로서 간음한 부인이라고 돌로 쳐 죽였을 것이다.

결혼의 절차

혼례는 보통 밤에 거행하였다. 당일이 되면 신랑은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를 데리고 신부의 집으로 가서 결혼식을 거행하였다.요한복음 3장 29절에 ‘신랑의 친구’라 함은 소위 둘러리로서 특별히 신랑을 돕는 자이다. 이 때 신부는 일생에 한 번 있는 경사이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어느 곳을 막론하고 틀림없는 풍습이다. 요한 계시록에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데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라고 하였고,이사야서는 “신부가 보물로 단장한 것 같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계21;2,9,사61:10) 신부의 집에서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은 신부와 그의 여종들과 같이 큰 행열을 지어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간다.그 행열이 행진할 때 모든 따라오는 사람들은 등불을 가지고 또 음악대가 행열 앞에 서서 가는 일도 있다.이렇게 해서 신부의 집에서 열리는 혼인 잔치에 청한 소님들은 밤 행렬이 이르는 길에 나가서 그들을 맞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다.마태복은 25장에 있는 열 처녀의 이야기는 이러한 풍속의 한 예이다. 마태복음 22장의 비유에 왕자 혼례의 이야기가 있다. 그 중에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석에 앉은 사람을 처벌한 일이 있다. 이는 유대 풍습으로 그와 같은 혼인 잔치에 왕은 관대한 은혜로써 초청한 사람들에게 예복을 공급하는 풍습이 있는 것을 알 때 우리들은 이 사람이 핑게 할 수 없게 된 것과 왕의 처벌이 대단했던 것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혼인 잔치

혼인 잔치는 보통 1주간 혹은 2주간도 된다. 요한복음 2장에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진 이야기가 있지만 집에서 담은 포도주를 쓰는 그 나라의 풍습으로서는 그와 같은 일도 있을 것이다. 잔치 중에는 말할 것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구약서서 중 아가는 유대의 혼인가를 모은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많이 있다. 또 그 때에 여러 가지의 여흥도 있었던 것 같다. 또 그 때에 여러가지의 여흥도 있었던 것 같다. 삼손이 속옷 30벌과 것옷 30벌을 걸고 내기를 할 때 “먹는 자에게 서 먹을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오나니라” 한 수수께끼가 그 일례이다. (삿14:10-20). 혼례의 주간은 어떤 사람이라도 그 기쁨과 즐거움을 막거나 금하지 못하였다. 금식 등의 의식상 의무를 면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엄격한 날인 “대 속죄 일”이라 할지라도 이것으로 그 의식의 일부를 생략하는 것을 허락하였다.또 이 기간은 모든 슬픈 행사는 정지하였다. 그러므로 요한의 제자가 예수께 와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치 않습니까”하고 질문할 때 대답하시기를 “신랑의 친구가 신랑과 같이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는가”라고 말한 것은 그와 같은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요3:29,마9:14-15)

신혼 부부의 대우

결혼 후 1년 간은 모든 공직의 의무를 면제하는 풍속이 있었다. 모세의 율법 중에도 “새로이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를 군대로 내어 보내지 말 것이요 무슨 직무든지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년 동안 지에 한가히 거하여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신 24:25)

다처의 풍습

성서에 기록된 또 하나의 풍습은 다처의 풍습이다. 이 풍속은 노아의 홍수 이전부터 행해진 것으로서 당시의 타락된 인류가 그의 욕정을 마음대로 채우기 위해 생긴 악풍이다. (창 4:19) 그 중에서도 아브라함과 같이 아들을 낳아서 가계를 계승하려는 좋은 생각으로 한 사람도 있지만 그 결과는 생각과 같지 않고 조금의 잘못으로 가정에 풍파가 일어난다 (창 16:3,21:9-14,삼상1:4-7) 그러므로 신명기에는 “왕 될 자는 다처를 피하라”고 경계하였다. 이 경고를 깬 솔로몬와의 만년에 참혹한 왕실 풍파는 누구나 아는 바이다(신17:17,왕상11:1-11) 한편 욥은 그 무죄를 주장하는 말 중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렷던가, 그리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는 중죄라. 재판장에게 벌 받을 악이오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라. 나의 소산을 뿌리까지 없이할 것이니라. (욥31:1-12) 바벨론 포로 이후에 예어자들이 일부일처의 제도를 중요시하여 고조하였고 이혼의 죄를 역설한 이후로 크게 다처의 풍습을 고쳤으나 예수 당대에 있어서도 아직 그 자취를 완전히 끊지 못하게 된 것 같은 증거는 때때로 이혼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말2:15,마19:4-9)

잡 혼

한 가지 더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될 풍습은 잡혼에 대한 것이다. 즉 유대 민족과 다른 종족과의 결혼은 율법으로 엄금하고 많은 선지자들이 경계하였던 일이었지만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깨고 잡혼을 감행해서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으며 이것 때문에 그들의 세력도 크게 쇠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포로기 이후에 여기에 대해 더욱 더 분분히 논하게 되었다. (신7:3,스9:-10,느10:30) 또한 사마리아 땅의 차별 경우도 잡혼에서 생겨진 것이다.

해산과 영아

산파

순산할 때에 산파의 도움을 받는 것은 어느 나라든지 같지만 유대인의 산파가 어떻게 하였는가에 대해서 에스겔서에 기록된 것을 보면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라고 하였다.(겔 16:4)

해산의 기쁨

이 나라에서는 특히 아들을 낳는 것은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한 것으로 믿었으며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믿었다. (창14:50,시127:3) 그래서 아이를 못 낳은 여자를 “석녀 가 불러 남에게 멸시를 받았다. 그러므로 야곱의 아내들은 자기가 아이를 못낳을 때는 자기 여종에게 아이를 낳게하여 자기의 아이와 같이한 웃으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여호와의 전에서 울면서 기도한 것도 아들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 부터 멸시를 받아 비에에 잠겼던 까닭이다. 또한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잉태하였을 때에 “주께서 나를 돌아 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한 것은 이상의 풍습을 알게 될 때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 (창30:1-24,삼상10: 눅1:24-25) 이러한 풍습이 있었으므로 아이를 낳으면 본인은 물론이고 이웃 사람들,친척,아는 사람들은 다 함께 기뻐하였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이삭을 낳은 때에,”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시리로다”라고 한 것을 비롯해서 성경 안에 이와 비슷한 기사를 여기 저기서 찿아 볼 수 있다. 또 생일을 기념하여 잔치를 베푸는 풍습도 있는 듯 하다.(창21:6,눈1:58,룻4:13-15,욥1:4,마14:6)

명명과 할례

이름 짓는 것은 대게 출생 후 8일 되는 날에 하였다. 그리고 이 날에 남자는 할례를 받았다. 또 이 때 친족들과 같이 모이는 풍습이 있고 이름은 보통으로 부인이 지은 듯하다. 그러나 혹은 아버지난 친척 중에서도 지은 일이 있다. 그 이름은 일일이 의미가 있는데, 즉 난 때의 감상에 다라서 지은 것 선조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들 등 여러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아담은 “적토” 하와는 “생명”가인은 “얻음”아벨은 “호흡” 에녹은”받침” 노아는 “안식”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 사라는 “왕비” 이삭은 ” 웃다” 야곱은 “압제자”모세는 “구출 ” 예수는 “구원” 등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들의 이름을 연구함으로써 그들의 신앙을 알 수 있다. 할례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남자된 자는 누구든지 받아야만 하는 의식이다. 창세기에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은 너희 자손이 아니요 아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물론하고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다.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하는 이 의식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언약의 은혜에 참여하려는 특권의 표현이므로 유대인으로서는 매우 중대한 것이다. 세례 요한도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예수도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으로서 할례를 받았다. 바울은 자기를 해치려는 무리들 앞에서 육신상으로 말하면 나도 이러하다는 말 가운데 “내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자손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중에 히브리 사람이요”라고 말하였다. (창17:12-13,빌3:5).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의 자손인 이스마엘 사람도 할례를 행하였지만 그들은 이스마엘이 13세 되던 때에 할례를 받았으므로 생후 13일 되는 날 할례를 베푸는 관습을 갖게 되었다. (창17:25)

산모와 결례

출산 후 산모는 불결한 사람이라 하여 남자를 낳은 때는 40일,여자를 낳은 때는 80일 간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못하였으며 40일 혹은 80일이 지난 후 결례를 행하고 비로소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산모의 결례에 대해 레위기에 명기되어 있지만 이 의식을 행하는 데는 본인 자신이 꼭 성전에 참여할 필요가 없고 근친되는 사람이 대리로 행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 의식을 행할 때는 번제를 드리괴 일년생의 어린 양을 드리고 속죄제에는 산비둘기나 새끼 비둘기를 바치는 것이 통례이었다. 그러나 양값이 비싸서 사기 어려운 때에는 번제나 속죄제외 산비둘기나 새끼 비둘기를 대용함을 허락하였다.그 때에는 내용의 헌물은 “빈민의 헌물”이라고 말하였는데 예수의 부모가 바친 것도 “빈민의 헌물”이었다.(레12:,눅2:22-24)

장자를 바침

맏아들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상으로부터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율법이 생겼다. 즉 “사람과 집승을 물론하고 모든 이스라엘의 자손 중에서 처음 난 자마다 다 성별하여 나에게 돌릴지어다. 이는 나의 것인 연고이다.”라고 하였다.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목적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예날 가족 제도에서 가장은 제사직을 겸하였으므로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렸다. 9출 13:11-16)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서는 제사직을 전담하는 제사 제도가 되어 레위 족속이 그 직책에 선택된 후로부터는 가장은 그 직책을 보지 않은 대신에 5세겔의 금전을 지불하며 이 돈을 속금이라고 하였다. 또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침에는 이스라엘인의 선조가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된 기념도 겸하였다. 당신의 애굽에서의 노예 사람은 국왕의 맏아들로부터 옥에 있는 죄인의 맏아들까지 전부 멸하였으며 이스라엘 사람 만은 양의 피로써 구해낸 고로 하나님은 이 일을 기념하여 맏아들을 바치라고 명하신 것이다.(출 13:11-16).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의식은 거의 매일 성전에서 행하게 되었다. 그 의식은 극히 간단하여 제사장은 부모가 데리고 온 맏아들을 안고서 두가지 기도를 한다. 즉 하나는 족죄에 관한 것이고 하는 맏아들을 하나님께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이다. 기도가 끝나면 부모는 다시 제사장의 손에서 아들을 받아 가는 것이다.

젖 때기

아이의 젖 때는 나이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오늘 날에도 서방 아시아쪽에서는 사내 아이가 4~5살이 되도록 적을 주고 특히 사랑하는 아이는 7살까지 주는 풍습이 있다. 사무엘 상에서는 사무엘은 젖 뗀 해에 성전에서 봉사한 일이 기록되어 있고 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입성하실 때에 호산나 호산나 하고 찬미한 사람 중에 영아와 유아가 있었던 것이 보인다. 젖 떨어진 잔치를 베풀고 축하는 풍습도 있었다(창21:8)

*팔레스틴 풍습 이모 저모 윤두혁 목사 편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