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에의 확신을 얻기 위하여

내일에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어느날 한통의 요청의 편지가 왔다.”내일에의 확신을 얻고 냉정하게 미래를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좀 가르쳐 주셔요.” 이 편지에는 계속해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과거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나는 현재에만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생각하면 두려움과 무력함을 느낍니다.”

미래의 확신을 얻는 첫 단계는 인생은 좋은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9). 이 원리는 현재나 과거에 동일하게 적용되며 미래에도 적용된다. 이것은 발생하는 모든 일이 다 선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생은 기쁨과 슬픔,승리와 패배, 성공과 실패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미래의 생애에 좋은 일과 궂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을 알므로써 우리는 개개의 경험들에 집착하지 말고 전체로서의 인생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 배를 한 실예로 들어보겠다. 배의 목적은 대양을 가로질러 항해하는데 있으나 배의 모든 부속들이 물 속에 잠겨있지 않다. 이를테면 엔진과 같은 것이 물에 잠기면 즉시 침몰할 것이다. 배의 모든 부품들이 모두 조합되어 있을 때 배는 항해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진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은 나쁜다. 어떤 것들은 좋다. 우리가 인생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경험들을 생각해 본다면 그 경험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결합될 때 인생은 전체로 보아서 우리에게 좋은 것이다. 저것은 우리가 참으로 바라는 믿음이다. 우리는 내일에 모든 슬픔과 절망, 고통이 제거되라는 확신을 구하지 않는다.

희랍신화에 저승으로 가기 위해 삼도천이라는 강을 건너려는 한 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나룻배 사공인 카론은 그녀에게 망각의 강물을 마시면 지나온 전생의 모든 과거 일을 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부인은 즐거웠던 일도 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실패했던 일만 잊을 것입니다.” “부인은 승리했던 일도 잊을 것입니다.” “나는 미움 받았던 일을 잊을 것입니다.” “부인은 사랑받았던 일도 잊을 것입니다.” 이야기는 결국 그 부인이 좋았던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 나쁜 일도 기억하는 것이 낫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것은 미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얼마의 주술적인 효력을 나타내는 물만 마심으로 미래의 고통이나 실패,미움등을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하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인생이란 언제나 두가지 면으로 되어 있으며 한 면을 부수면 반드시 다른 면도 부셔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또한 기쁨,승리,그리고 사랑도 제거해야 한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은 나쁜다. 또 어떤 것은 좋다. 그러나 인생 자체는 신빙성이 있다.이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대로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리라.” 우리가 그러한 믿음을 갖고 나아갈 때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 가운데 미래를 대처해 나간다.

우리는 내일에 대해 왜 걱정하는가?

우리는 내일에 대해 왜 걱정하는가? 무언가 나쁜 것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슬픔과 패배가 있음을 안다. 시편 기자의 말들을 인용해 보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편 기자는 앞길에 골짜기가 있음을 알았다. “통하여(우리가 성경에는 번역 되지 않아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 즉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하여 나간다는 의미가 있다.) 라는 말에 주의하라.이것이 그가 “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 ” 이유가 된다. 당신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참으로 알고 있다면, 심연의 고통 가운데서라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아는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만약 한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다면 그는 패배감도 결코 최종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가짐으로써 내일에의 두려움은 소망으로 탈바꿈하게 되며 소망 가운데 있을 때 인생은 좋다.

모든 문학 중에서 주옥과 같은 가장 순수한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테니슨의 [명상록]을 꼽을 것이다. 거기에서 당신은 “우리를 남자로 만드는 위대한 희망”이란 놀라운 구절을 볼 수 있다. 소망은 생애 능력을 공급해 준다.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잠13:12)

최근에 어떤 사람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많은 그룹의 사람들에 대해서 연구를 했다. 그들 모두는 똑같은 일을 했는데 막바지에 이르자 어떤 사람들은 피로하여 흐느적거리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도리어 강한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곧 드러났다. 한 그룹은 그날밤 파티를, 주말 여행을, 또는 가정에서 무언가 즐거운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다른 한 그룹은 기대할 아무러한 일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소망을 가지고 싶어한다면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소망은 그것이 목적을 가릴 때라야 참된 것이다. 나는 꿈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음이 두 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1) 당신이 생애 가운데 참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2) 당신은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떻게 시작하는가? 이들 두 질문은 목적을 창조적인 행위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가 그것을 가질 때 모든 두려움은 자동으로 제거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우리의 힘 이상의 방법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서 기도드릴 때이다.

우리가 참으로 기도한다면 절망적인,불가능한,패배적인 말들은 우리의 생각 속에서 제거될 것이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 (요14:13) 이 약속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어서 어떤 사람은 믿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사람이 그것에 대해 주석한대로다. “하나님은 전에 말씀하신 어떤 약속도 깨뜨리지 아니 하신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 이것을 설명함에 있어서 우리는 네가지 사실들을 기억해야 한다.


(1)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우리가 잡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이미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다음날 시험에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정말로 간절히 기도했으나 그만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믿음을 상실한 채 쓴 웃음을 지으며 하나님의 약속이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다음해 그는 하나님이 필요 없었고 홀로 지내려고 결심했다. 그는 학습 과정을 반복해서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시험에 합격했다. 몇년이 지나서야 그 소년은 하나님이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그 소년에게 학습과정을 배우고 습득하여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주셨으나 첫 해에는 하나님의 응답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무엇이든지”소유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이다.

(2) 하나님은 우리보다 현명하시며 그는 우리가 참으로 바라는 것과 우리가 그 당시에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를 식별하실 만한 능력을 갖고 계신다. 어느 여름날 나는 거의 매일 뱃사람과 조그마한 배를 탔다. 그는 훌륭한 집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는 그것을 운전하는 게 그렇게도 좋았다. 9월이 닥쳐 왔을 때 나는 아버지께 뱃사람과 함께 일하기를 항상 소원해 왔으며 학교에 돌아가고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고 말씀드렸다. 만약 그때 나의 아버지께서 “좋아,네가 그렇게도 원하던 것을 하고싶어하니 네 좋아하는 대로 하렴”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어찌될 뻔 했겠는가? 그는 나보다 현명하시기 때문에 나의 일시적인 변덕과 내 마음의 진실한 갈망사이를 식별하실 수 있었다. 그는 나의 원하는 것을 거절하셨으나 그것은 타고르가 말한 것과 같았다. “주님은 완전히 거절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셨다.”

(3) 하나님은 그의 모든 자녀들에게 관심이 많으시며 나의 “무엇이든지”가 나 이외 다른 사람의 기도와 상치될 때,하나님은 사랑과 지혜가 무한하심으로 마땅히 응답하셔야 할 기도에만 응답하신다.
얼마 전에 비행기 예약 관계로 전화를 했었는데 여분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위해 기도했으며 이튿날 그들은 나에게 자리 하나를 남겨 놓았다고 전화상으로 연락을 주었다. 나중에 나는 텍사스주 달라스에 있을 때였다. 예약석을 얻을 수가 없어서 공항에 곧장 나가 좌석 얻기를 기도하였다. 나는 하나님께 나를 도와달라고 매우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러나 그 비행기는 나를 싣지 않고 이룩해 버렸다. 하나님은 나 말고 다른 어떤 사람을 태우시기로 조정하신 것이다. 이런 경우 그것은 과히 유쾌하지 못할 것이다.

(4) 미국 애국가의 몇 구절을 유의하여 보아라.
“우리는 가는 길 의롭다면
그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
‘하니님 우리 주 피나처니’
이것은 우리의 모토일세”
우리는 “무엇이든지”는 의롭지 못할 때가 흔히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님께서 기도하신 말씀을 유의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여기에 약속이 주어진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그것이 참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이라면,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목적과 뜻에 일치하는 것이라면,그대로 이루어지리라.”
우리는 적어도 이런 확신을 가짐으로써,두려움이 아니라 담대한 마음으로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치 지음 일부 내용 발췌

당신의 산을 옮기는 방법

당신의 산을 옮기는 방법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환경에서 승리감을 맛보고 싶어할 것이다.어느 누구라도 나약함이나 패배감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적인 약점이나 곤경에 처하게 될 때 우리는 생애 가운데 무력함이나 절망감을 느낀다.

예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능력 얻은 방법을 공식으로 보여주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라라” (막11:22~23)

이 공식은 우리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진실로”라는 말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려고하는 그 사실이 믿기는 매우 어려우나 진리임을 강조해주는 것이다.”누구든지”라는 것은 당신이든지 나이든지 어느 누구라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산에게 말하여….”라는 말은 특정적인 그리고 분명한 대상을 설정함이다. 당신의 생애 가운데 놓여있는 어떤 환경을 택하여 이 공식에 적용하여 보아라. “제거될 것이다.” 그것이 더 이상 해치지 못할 것이다. 바다에 던지워서 영원히 완전한 승리를 얻게 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해 사람들은 세가지 각기 다른 종류의 태도를 취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믿을 것이 못돼”라고 하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지금껏 알려진 책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는 책을 반박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뿐만아니라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들 중에 가장 현명한 선생님을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의 견해를 반박하기 이전에 그 사람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한다나는 그리스도의 아시는 것만큼 알지 못한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1955년 3월호에 어떤 기사가 실렸는데 그것은 미국 라디오 방송협회 이사장이며 세인에게 가장 존경받는 과학자인 데이비드 사노프씨가 기고했던 것이다. 그는 기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초창기에는 현대과학이 종교와 사이가 좋지 않는 것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표밖에 되지 못한다. 우리 세대에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우주의 신비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과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이들은 과학의 제한된 지식으로 말미암아 종교를 가진다는 것이다. 원자나 전자,유전자와 같은 우주의 구성요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생각하지 못한 점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과학의 결과는 무한히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무한히 큰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에서 놀랍도록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히 나타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내가 만일 “믿음의 능력을 믿을 수가 없는데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현대과학의 증거에도 반대하고 있다. 과학은 “텔레비젼이 일을 한다”라고 말하며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사서 그것이 일함을 본다. 그리스도와 과학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것을 믿는 자는 그것을 시도할 것이며 혼자서 그것을 목도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만일 하나님을 믿으면 너희 앞길에 놓여있는 태산도 제거할 수 있으리라고 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믿음의 능력에 관해서 취하는 두번째 태도는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요.그것은 나의 지각을 벗어 나는 것이네요”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믿는 것도 아니고 안믿는 것도 아닌 결국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인생의 자포자기하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이다.”나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사람이 약하고 보잘 것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할 수 있는 능력도 사용하지 못하고 패배하고 만다. 이따금씩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인간은 매사에 비판적이거나 냉소적이기 쉽다.

얼마동안 나는 아틀란타 은혜교회에서 매우 훌륭한 심리학 박사와 동사한 적이 있다. 주일 밤이면 그는 강단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살펴보곤 했다. 그는 나에게 이때가 심리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사람들을 살펴보는 몇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나는 쉽사리 여러가지 유형을 구분하였다. 당신도 거의 모든 회중 가운데서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다.

이를테면 불신앙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교회에 나온다고 하자.그는 참석한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위선자들인가를 생각한다. 그는 노래부르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거기에 마음을 같이하지 않는다. 그는 설교를 듣는다기보다도 목사가 설교한대로 행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더 있다. 어떤 사람이 예배에서 영감을 받은 것같이 보이면 그는 감정주의라고 말한다.

한편 어떤 사람이 믿음의 태도를 갖고 교회에 나온다고 하자. 그는 사람들이 교회 건축에 헌금을 많이 했다는 말만 들어도 큰 감명을 받는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수세기 동안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제단 위에 바쳐졌는가를 생각한다. 그는 잠재의식에서 묻는다. 순교자가 믿음 때문에 죽었단 말인가! 성경이 어떻게 살아있는가? 사람들이 기도는 어떻게 하는가? 그는 그들의 신앙을 보고 감동을 받는다. 그는 찬송을 부르고 설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에 역사하시는 음성을 듣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상기해 보자.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눅19:26) 이 원리는 삶의 여러가지 분야에 적용되나 특별히 믿음에 적용된다. 교회 공중 예배중에서 믿음을 팔아먹는 자는 그가 가지고 온 보잘 것 없던 믿음도 빼앗긴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활용하는 자는 새로운 힘과 능력을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믿지 못한다.어떤 사람들은 믿기는 믿으나 그것이 그들과는 상관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제3의 그룹이 있는데 이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믿음을 활용하여 가지고 있는 믿음을 사용하여 그렇게 할 때에 그들의 믿음은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인간의 심령과학에 대해서 많은 것을 듣고 있다. 그것은 어떤 상태나 환경,심지어는 물질에까지도 인간 심력을 적용시킨다. 그러나 성경은 심령과학을 훨씬 능가한다. 성경이 비록 심력을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또한 인간의 약함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했지,그냥 너 자신을 믿으라고는 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산을 옮기는 믿음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불굴의 믿음을 개발할 수 있는가? 해야하는 두 가지가 있다.

1.하나님의 존전에 있음을 인지하라.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나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 교회라고 본다. 나는 다른 어떠한 장소에서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인재하심을 더 완전하게 느낀다. 건물이나 음악이나 설교,기도 등 이와 같은 모든 요소들은 상당하게 도움이 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서 나의 예배에 도움을 받는다.
나는 매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해 배웠다. 영적인 천재였던 헨리 드럼몬드는 “매일 그리스도의 존전에 십분간이라도 아니 2분만이라도 보내는 자가 있으면 그는 온 종일 다르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집에서 교회에 있는 사무실에 차를 몰고 가노라면 사자로를 거쳐나가게 된다. 나는 거의 언제나 붉은 신호등이 켜져 있는 것을 보며 이 도시에서는 가장 더디게 푸른 신호등으로 바뀐다고 믿고 있다. 거기를 거쳐서 공원을 낀 언덕 아래에 또 하나의 더디게 바뀌어지는 신호등이 있으며 반구획도 못가서 또 하나의 신호등이 있다. 그 다음에도 한길에 나와서 그것이 있다. 나는 네게의 신호등이 지체케 함으로 신경질을 내곤 하였으나 지금은 거기에서 경건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나는 네가지 질문을 가지고 매 신호등을 지날 때마다 자문자답한다. 첫째 신호등에서 ‘오늘 내가 가장 감사할 일은 무엇인가? 둘째 신호등에서 ‘내가 지난 24시간 동안 했던 일 중에서 부끄러운 일은 무엇이었나.?’나는 그것을 24시간으로 제한했는데 그것은 교통 신호등이 아무리 길어도 24시간을 가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지난 날들을 생각할 시간은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구한다. 세째 신호등에서는 ‘ 이 한날 나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를 자문한다. 그리고나서 마지막 신호등에서 ‘나는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를 자문해본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전에 서는 영적인 순간들을 스스로 맞이할 수 있다.

2.믿음을 키우기 위해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당신으 논증으로써가 아니라 행위로써 믿음을 얻는다. 우리는 신뢰함으로써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생활에 지나치게 지성적이 되려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나 그전에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나 그전에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마22:37) 당신은 믿음에 관해서 논쟁을 하기 이전에 믿음을 체험해야 한다. 그리고나서 그는 우리의 생애 가운데 놓여있는 어려움의 산을 제거하기 일을 부지런히 하여야만 한다고 하셨다.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을는지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히 전진해야 한다. 예수님은 ‘마음에'(지성과 마음이 아니라) 믿어 의심치 아니하면 승리를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무슨 일을 해도 실패를 맛본 어떤 사람이 이 말씀을 읽는다고 한다면,나는 그 사람에게 지금 당장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수 있도록 믿으라고 촉구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당신이 지금 이 순간 믿는다면 완전한 승리를 가져다 줄 필요한 힘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신령한 사지를 펼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라. 그에게 당신의 모든 생애를 맡겨라. 그는 “능히 당신을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 (유24절)하실 수 있다.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내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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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단 두마디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가장 심각한 물음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어떠한 형태로이건 우리 모두의 심층의식 저변에는 이러한 문제가 내재해 있기 마련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지 못한다면 당신에게 있어서 인생의 의미는 보잘 것 없는 것일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한번도 물어보지 못한 존재도 있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개.돼지와 같은 자들은 인생의 아무 목적이나 의미도 갖지 못한 채 허둥지둥 돌아다니다가 그들의 욕망을 만족시킬만한 것들을 만나면 주워 먹기나 한다. 이것은 동물적인 사고 방식이다. 보다 고차원적인 인생은 삶의 이유를 궁구한다. “내가 왜 사는가?” 당신에게 이보다 더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가 또 있겠는가? 당신 삶에 있어서 진정한 성공이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았느냐 못 찾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아버지께서 내개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요17:4),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생애에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계획이 무엇인지 아셨으며 자기가 이것을 할 수 있음도 아셨다. 이것은 우리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 모든 인간은 여기에 우연히 혹은 어쩌다가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 생애 가운데 당신이 할 수 있는 계획을 갖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개인에게 선택권과 자유의지를 주셨다. 우리 주님께서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눅22:42)
이 기도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진리를 가르쳐 준다. 먼저는 사람이 그 자신의 생애에 하나님의 뜻과는 정 반대의 뜻을 갖고 있다. 둘째는 자기의 뜻을 따르다가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 두 요소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기도는 한낱 농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 모두는 이와같은 선택에 직면한다. 모든 물음에 언제나 정답을 들려주는 한 현자의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한 소년이 이 현자를 골탕먹이려고 하였다.그는 손에 살아있는 새 한마리를 잡고서 “존경하는 선생님,내 손에 있는 새가 살아 있을 것입니까? 아니면 죽어 있을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만약 현자가 죽는다고 말한다면 그 소년은 당장 손을 벌려 날려 보낼 것이고,산다면 그는 손으로 눌러 죽은 새를 보일 것이다.

놀라웁게도 그 현자는 소년의 손을 전혀 보지 않았다. 대신에 그의 눈을 한참 보더니 조용히 말하기를, “얘야,그것은 네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란다.”라고 했다. 이와같이 우리 각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란,하나님의 길로 갈 것인가, 그 밖의 다른 길로 갈 것인가 자기가 선택하는 뜻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갖고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순간에라도 “내가 왜 사는가?”라는 문제에 해답을 얻지 못한다. 당신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그 문제를 물으려고 찾아왔다. 개중에는 의심하면서,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의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하나님의 자기 뜻을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가?

존 옥센함은 동호인지(미국종교보급협회,1913)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 일생 동안
길을 찾아 헤매었지
이제 나 알고 있는 것 한가지 있으니
생명 주시고 앞길 인도하실 이 말이네.
그러므로 나는 가겠네. 보장된 길을.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주장하기를 나는 그 길을 알지 못했으며 그래서 망설였다고 한다.
우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셨을 때 그 길을 상당하게 보여주셨다. 우리는 어떠한 재능이나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셨다. 또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인간에게 기회를 제공하시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젊고 예쁘장한 내 교회 여자 성도 중 하나가 나의 사무실에 찾아와서 말하기를 “저는 산다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내 생활은 허무하기 짝이 없거든요”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하기를 “교회성가대에서 찬양드리는 것이 선생님에게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당장 그녀는 반문했다. “목사님은 어떻게 그걸 아시지요?””선생님은 노래 부르는 재능을 가졌고 또한 성가대가 선생님같은 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요.”능력과 기회,이들 두기지가 동신에 찾아온다면 그것이 다소 막연하든 분명하든 하나님의 명백한 뜻임을 말해준다.
둘째,가끔씩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직접적으로 역사하심으로써 그의 뜻을 나타내신다. 모든 세대 중에 가장 훌륭한 크리스챤의 하나로 손꼽히는 슈바이쳐 박사의 생애를 생각해 보자.그가 자기 생활 안정을 구가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음악,의학,교육 등 다방면에 훌륭한 능력을 가졌었다.오늘날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방면에 대가였다. 그에게는 안정을 누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그는 무엇을 해야 된단 말인가? 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어느날이었다. 그는 책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서류 가운데 파리선교협회에서 발간된 조그마한 잡지 하나가 눈에 뜨였다. 이것은 이웃 사람에게 배달되어야 할 것이 그만 실수로 그의 우체통에 넣어졌던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잠깐 훑어 보기 시작했을 때 “콩고 선교의 필요성”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대하였다. 그는 그것을 다 읽고 “나의 연구 활동은 끝났다.”라고 말했다. 그는 콩고로 가서 우리 모두가 상상으로밖에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생애를 거기서 살았다.

나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우편 배달부가 그 소책자를 잘못하여 틀린 우체통에 넣었다는 것이 우연한 일이었을까? 슈바이쳐 박사가 지시하심을 받아들일 때까지 며칠 동안 발견되지 않고 거기 있었다는 것이 단순히 우연히 된 일이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손길이 그 사람 생애를 주장하고 계셨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것은 어는 찬송가 작사자가 “하나님의 역사는 신비하도다”라고 말한대로이다.

그러한 경험이 나타날 때 그밖에 다른 방법을 취할 수 있다. 슈바이쳐 박사는 “나는 너무 많이 배웠기에 그것을 멀리 떨어진 콩고에서 썩힐 수 없노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을 송두리채 바치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는 자는 찾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신 대로였다.

나는 생애 가운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나는 방금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나의 재능과 기회를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시를 통해서이다. 그 밖에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최선의 판단을 내린다. 푸른 목장이란 연극에서 어떤 사람은 “주님은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도록 하셨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어떤 남자가 “나는 충고를 얻기 위해 기도했으나 어떠한 응답도 받지 못했어요.그래서 나는 상식대로 했지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남자에게 상식을 주는 이는 누구인가?

어느날 한 남자가 나를 만나기 위해 나에게 왔는데 그는 매우 당황해하는 병적인 사내였다. “아무도 나에게 무얼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 미칠 것만 같아요.”나는 문제에 대한 정황을 알기까지 대답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는 그가 이야기할 때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가 이야기를 마치자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나는 그에게 답을 하기 전에 수분 동안 생각했던 것을 그 사람에게 이야기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야기가 훨씬 길었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에 대하여 그가 나에게 이야기 했던 것 중에서 나는 그의 생각을 제안했다. 그는 잠시 망설였으나 “제가 생각했던 것이 최고란 말이지요?”라고 말하고서 놀랄만한 해결을 보았다. “저것이 선생님의 문제에 대해선 가장 좋은 해답인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일어나서 나에게 뜨겁게 감사하더니 내가 지끔까지 자기가 이야기 해본 상대 중에서 가장 지각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그의 생각을 고무시킨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해답을 내릴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공포와 두려움이 그의 이성을 압도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가끔 우리는 욕망의 소리로 인하여 우리의 최선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생각하고 추리하기 보다는 우리의 열정이나 이기적인 욕망에 지배당하기 쉽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염두에 두어야만 할 것이다. 최근에 남편을 잃은 한 아릿다운 부인이 나에게 말하기를 남편이 유서를 남겨 놓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 즉시 망설이지 않고 결정을 했다. 그녀는 나에게 “저는 그이와 40년 동안 함께 살아왔어요.그이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그이가 어떻게 할 것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지요”라고 말했다. 남편이 유서를 써놓지 않았지만 그녀는 남편의 뜻을 잘 알았다. 그녀가 어떻게 그것을 알았을까? 남편과 매년을 매일같이 동고동락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서 성령으로 감동된 성경을 읽고 기도로 이야기 하고 교회 예배 시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와 함께 일을 한다면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므로써 우리는 그의 뜻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그의 뜻을 행하고 싶어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교제하시고 친분을 나누심으로써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다.

당신이 기도한다며? 밥 핏츠 지음 일부 내용 발췌

기도의 방법

기도의 방법

“주여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눅11:1)라고 제자들이 에수님께 물어 보았다는 사실이 약간은 이상스럽게 생각될는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엄격한 종교적인 가문에서 성장했을 것이다. 이들은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교회에 줄곧 다녔고 기도를 해왔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제자들의 이 질문이 있기 1년 전에 제자들에게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라고 물어 보았다면,그들은 매우 분개하여 다음과 같이 대꾸했을지도 모른다. “아니,그걸 말씀이시라고 하세요.우리는 수년 동안 거의 매일 같이 시간을 내어 규칙적으로 기도해왔는데 그것 하나 모른단 말씀입니까?”

제자들은 아마 당신에게 성경 속에 있는 요절들을 인용해 가며 입이 닳도록 답변했을 것이다.그들은 아마도 기도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고 또 기도해야 할 이유를 타당성있게 설명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자들이 막상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들은 자기네들이 참으로 기도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서 얼마나 많이 기도하셨는지,그리고 이 기도가 주님의 생애가운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주님께서 수차에 걸쳐 기도하러 나가시고 들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기도가 제자들에게는 형식에 지나지 않았으나 주님께서는 능력이 있었다.

이 제자들이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들은 주님의 기도가 자신들이 지금까지 기도해 왔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들은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자신들이 참으로 기도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여,우리에게도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간청했던 것이다. 그들이 간청했던 것은 이날 이후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제자들의 간청에 대한 답변으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즉 기도할 때의 첫 단계는 이러하다. 먼저 당신은 하나님을 믿고,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시켜야 하고,당신이 하나님의 존전에 있음을 인지해야 하고, 당신의 마음과 생각에 성령의 충만함과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대 문호 톨스토이에 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그는 부유했고 존경받았으며 사방에서 칭송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는 이때까지 인생의 죄의 두려움에서 자유를 얻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왔으나 이제는 그 모든 두려움이 그를 괴롭혀 잠시도 안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어느날 그는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한 농부를 보고서 그의 얼굴에 비친 평화와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윽고 톨스토이는 중얼거린다.”이 농부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이다지도 기뻐하누나” 그는 잠시 동안 그 농부를 응시한 후에, 이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 자이기에 기쁨을 지닐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리하여 톨스토이도 하나님을 만났으며 그때부터 마음 속에 쌓였던 불만족과 고민을 해결한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체득한 결과로서 다음과 같이 위대한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인생을 아는 것이다.”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셔들이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모셔들이는 수용적인 마음으로 기도해야 함을 의미한다.
당신은 아침에 그날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서 일어난다. 당신의 생각은 활동적이고 공격적이며 매 시간마다 직장에서,과외활동에서 생각과 시간과 정력을 소비한다. 그날 밥 당신은 음악 연주회에 참석한다. 그러나 당신이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기분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음악 연주회라면 공격적이고 활동적인 것보다 수용적이 되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를 시작한다면 수용적이 되어야 한다. “잠잠하라 그리하면 내가 하나님임을 알리라.”고 시편 기자는 말하였다.

기도의 첫 단계는 하나님을 모셔들이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공격적인 마음을 수용적인 마음으로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대부분 “이것은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이고 저것은 내가 하려고 작정한 것이다.”라고 기도하는,이를테면 기도를 하나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부차적인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기도는 여분의 타이어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타이어가 못쓰게 망가졌을 때 사용코자하는 기타의 어떤 것에 불과하다.당신은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하면서 당신이 바라던 것을 얻지 못하고 결정한 일을 할 수 없게 될 때 “하나님 제게 저것을 주십시오” 혹은 “하나님,제가 저것을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기도를 기업정신으로 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방법으로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신다. 예를 들면, 어느 좋은 날 아침 일어난 당신은 매우 기분이 상쾌했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맑았다. 당신은 횟바람을 불면서 그날 일어날 좋은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당신은 “내가 살아있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감사는 누구에게 한 것일까? 하늘에 대해서인 가? 그것들은 당신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가족과 친지들에 대해서 감사했겠는가? 그들은 당신에게 많은 것을 의미하지만 당신의 삶의 깊은 면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 자신에 대해서인가?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감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당신은 찬사를 표현하는 것이지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으며 실제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비극이 우리의 삶 속에 찾아 왔다고 하자. 대부분 우리의 첫번째 반응은 원망이다. 우리는 “이것은 합당치 못합니다. 나는 이것을 원망합니다. 내가 이런 곤욕을 당해야 함은 부당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벽을 향해서 말을 했다고 한다면 벽은 사람이 아니기에 말을 들을 수가 없다. 어떤 친구에게 생각을 표현한다고 하지만 그 사람에게 실제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사람이 비극을 일으킨 장본인은 아니다. 우리는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는 어떤 능력이 우리 일상 삶 속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있기 때문에 부끄러워 하는가?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사람들이 보고 있지 않았지만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부끄럼움을 느낀다. 우리가 발각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밖에 어떤 분으로 인하여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그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자신을 인지하게 하신다.

능력의 역사는 우리의 마음을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열고 그의 존재에 대해,성령에 대해,음성에 대해,뜻에 대해 수용적이게 한다.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시는 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시느리라”고 말씀하셨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께 많은 말을 하는데 있지 않다. 먼저 예수께서 말씀하셨던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참으로 기도하는 마음은 힛티어가 마음 속에 생각하고 있던 바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던 것과 같다고 본다.

우리의 온갖 수고를 다할 때까지
주님의 고요한 음성을 들으라.
우리의 정한 생명 다할 때까지
주님의 평안한 모습을 보아라.

만약 어떤 사람이 그의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시켜 기도한다면 두가지 결과가 따라 나올 것이다.

첫째로,그렇게 하는 기도는 부정적이 아니라 적극적인 결과를 가져다 준다. 어떤 사람이 수차에 걸쳐서 나에게 “나는 기도했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어떤 버릇을 고치기 위해,어떤 곤궁을 극복하기 위해 기도할 때 아무 것도 못했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아파서 낫기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자.그 사람은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저는 지금 몹시 아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아픈 것 같지 않은데”라고 말씀하신다면 “아니어요,주님은 제 사정을 잘 모르셔요. 제 이마를 한번 만져 보셔요. 그러면 저의 체온이 어떠한지 아실 거여요. 저의 맥박을 짚어 보셔요. 그러면 제가 얼마나 허약한지 아실 거여요. 저는 앉아 있고 싶지 않아요. 먹은 것은 모두 토해내고 싶어요. 저를 낫게 해 주시고 건강을 되찾게 해 주셔요”

이러한 종류의 기도는 병든 사람을 고칠 수 없게 한다. 당신 생활의 좋지 못한 버릇을 이렇게 적용시켜 보라. 당신이 이런 식으로 기도하면 할수록 그것은 당신 생각 속에 굳어질 것이다.만약 어떤 사람이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하나님과 함께 시작한다면 그는 마음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충만히 받을 것이다. 죄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충만히 받을 것이다. 죄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것이다. 삶의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체험할 것이다.

둘째로,하나님이 우리 기도의 모든 것이기에 우리는 낙심치 않고 기도한다. 우리가 낙심하게 되는 이유는 소망을 잃었기 때문이며 소망을 잃은 이유는 하나님을 잃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한다. “너희는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능히 해결하실 능력을 갖고 계시며,하나님은 모든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하실 능력을 갖고 계신다

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좋은 기도의 모본인 시편 23편을 한번 살펴 보자. 거기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행위를 믿는 아홉가지 간구하는 말들이 있다. 다윗은 그의 생애에 문제와 약점이 많았다. 그는 때때로 어둡게 보이는 세상에,살고 있었으나 긍정적인 기도를 드렸다. 그는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그리고 그의 존전에 있음을 인지했다. 다윗은 기도를 마치면서 두 가지 결론을 내린다. 첫째는,내일은 좋다는 것이다. “선함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라고 그는 기도한다. 둘째로,내일이 지난 다음에도 역시 좋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여호와의 집”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기도문을 반복해서 읽어 보아라.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며 낙관적인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한다.그것은 하늘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함을 보여 주며 우리의 일용할 물질적인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믿게 해 준다. 우리 죄는 용서받을 수 있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시험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이다.

무어 주교는 고층빌딩 창문에서 뛰어내려 투신 자살한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그 빌딩 문지기인 늙은 흑인 자살자에 대해서 그 주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때에는 자살하는 게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흑인이 하나님을 찾았다면 해야 할 그 밖의 일이 있었을 것이다. 어제가 아무리 불행했고 오늘이 어쩌고 해도 하나님과 함께한 내일은 좋을 것이다.기도에서 첫번째의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다. 그것은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생을 아는 것이다. “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내용 발췌

기도에 용기를 주는 것들

기도에 용기를 주는 것들에 대해 알아 보자

다음에 나오는 것들은 나의 생애와 기도 생활을 풍성하게 했던 항목들이다. 이 항목들은 당신의 기도 생활에 새로운 가능성을 심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경 읽기와 기도를 위해서,당신에게 주어진 날 중에 가장 여유있고 좋은 시간을 떼어서 바치라.성경 읽기와 기도를 하기 위해서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황금 시간을 바치라는 것이다. 잠 자기 전 몇 분을 대강 바치는 것은 이러한 중요한 사역을 하는 데에 적당치 못하리다.

일반적으로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바람직할 것이다. 말씀을 읽음으로 당신은 기도하기에 좋은 마음가짐을 갖게 될 것이다. 이따금씩 하나님은 말씀을 읽는 자의 마음을 격동시켜서 당신의 기도가 열정적으로 상달되도록 한다.

기도의 시간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만 통하도록 은밀하게 하라.합심 기도는 역사하는 능력이 있으나 이것이 개인기도나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통은 대신하지 못한다. 예수님은 친히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다. 그는 수없이 아버지와의 기도 시간을 홀로 보내셨다. (막 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기도를 그날의 가장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로 여겨라.만약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기도 사역에 몸 바치고 있는가를 의심해 보아라. 만약 나에게 이 땅에서 단 하루가 남겨져 있다면 그리고 이 하루를 가장 값있게 보내고 싶다면,하나님께서 특별히 어떤 것을 하라고 인도하시지 않는 한 하나님과 기도하면서 그 하루를 보낼 것이다.

한날을 온전히 기도하라. 당신은 일을 하면서 혹은 기다리거나 길을 걸을 때, 잠시 잠깐이라도 기도하라. 문제를 하나님께로 가져와 그에게 온전히 맡기라. 그러면 그가 이루신다. (시 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 우리가 맡기고 신뢰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가로 5인치,세로 3인치 정도의 규격으로 된 작은 카드나 노트로써 기도목록표를 만들라.당신이 기도한 날짜를 기재하여라. 당신의 기도가 응답되었으면 응답받은 기도를 통해서,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도 목록표로 인하여,우리의 진실한 믿음은 돈독해지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간증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요구사항을 명백히 하라. 요점이나 목적없는 흐릿하고 막연한 기도를 중언부언 드림으로 당신 믿음을 사장시키지 마라. 세목을 따라 기도하라. 그러면 당신의 믿음과 기쁨은 급속도로 성장한다.

기도모임에 참석하라. 그룹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개인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많다면 단체기도는 한층 더하다.

기도에 관한 훌륭하고 영감있는 서적들을 읽으라. 기도와 관련된 책들로서 내가 읽은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소책자는 토레이가 지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이다.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 나로 하여금 기도를 많이 하게 했다.
또 하나 훌륭한 책이 있다면 라이스가 지은 [기도,간구 그리고 응답]이다. 죠지 뮬러가 지은 기도의 응답 또한 추천할만하다

기도하여 받은 응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져라.축복이 넘쳐 흐름은 단지 우리에게서 단절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다윗은 말한다. “내가 큰 무리들 중에서 주의 기사를 선포하리이다.”

무엇보다도 기도하고 싶은 감동에 순종하라. 사탄이나 육체는 결단코 당신으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역사하지 않음을 기억하여라.만약 당신에게 기도하고픈 마음이 생긴다면 이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인줄 알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도하여라.“이 세상이 창작해낸 것보다 기도로 말미암아 되어진 역사가 더 많다.”란 말은 아직도 참이다.

“내가 지극히 높은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시 57:2)

능력의 하나님 예수님 성경말씀

능력의 하나님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아멘”(에베소서 3:20)

하루는 내가 기도하고 있노라니까 매우 많은 것을 간구하고 있었다고 생각되어졌다. 나의 뇌리에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구하고 있지나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얼핏 떠올랐다.
그러나 또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하나님 말씀 속에 있는 이 구절 때문에 상당한 격려를 받아서 나의 기도 목록표에 더 많은 새로운 간구들을 추가하였다.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능히 이를 이루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너무 많아서 하실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동시에 많은 것을 구할 수 있다.
그는 “우리의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실”분이시다.
우리가 아무리 하여도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에는 못미친다.그는 “우리의 생각과 지각”을 뛰어 넘어 풍성하신 분이시다.
보다 더 큰 것 ,보다 더 위대한 것,보다 더 나은 것을 하나님께 구하라.은혜의 보좌 앞에서 우리가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위대한 선교 사역자 윌리엄케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즐겨 사용하였다.
“하나님께 위대한 것을 구하라.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것을 기대하라.” 그는 능히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기에 불가능한 것을 간구하고 싶지 않는가? 너무 커서? 너무 어려워서? 당신에게 하시는 그의 말씀을 들어 보라.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당신은 구하는 물질이 너무 시시하거나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함으로 작은 것을 하나님께 구하지 못한 적이 없는가?
‘큰 문도,작은 돌쩌귀를 축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라.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모든 것은 기도로 말미암아’라고 말씀 하셨다. (빌 4:6)

놀랄만한 것들을 하나님께 구하도록 하라. 그에게 위대한 것을 해 달라고 하라. 당신이 요구하는 세목을 명확히 하되 담대히 하라.그는 능력이 많으시다.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드리는 기도에 책임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로 이룰 수 없다는 어떤 생각 때문에 보다 큰 것을 구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능치 못함이 없다라는 확신을 가질 때까지는 우리 마음 속에 어떤 것은 하나님에게 너무 어렵다 라는 의아심이 생긴다. 그는 우리 맘 속에 자신을 강하게 부착시키신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기도에 응답을 받다

어느 날 나는 300명 이상이나 되는 어린이들과 함께 풍성하고 복된 여름 수양회를 마친 후, 만약 산에 캠핑 시설을 갖추고 있다면 어린이들에게 우리의 전도사역을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 시설물을 세를 얻어 사용해 왔었다. 나는 이것을 큰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몇몇 나의 동역자들과 함께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후 나의 기도 목록표에 그것을 삽입시키기로 했다.
“아버지,우리에게 어린이 전도용 캠프를 주십시오.”나는 조그만한 카드 한장에다 이 내용을 기록했다.
그 당시 우리는 캠프용 대지를 구입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1달러도 없었다. 사실상 어린이 전도 협회의 가까운 몇몇 친구를 제외하곤 아무도 이러한 요구를 알지 못했다.
시시때때로 우리는 캠프 시설 비용이 5,000달러니 10,000달러니 혹은 그 이상이니 하는 소리를 들어왔다.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했다.

내가 이것을 얻기 위한 기도를 시작한지 1년이 조금 못된 어느날 전화 한통을 받았다. “내가 듣기로는 목사님께서 어린이 전도용 캠프를 사려고 한다면서요.”
나는 이러한 계획에 필요한 돈이,손에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합해도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네,그렇습니다만.”하고 대답했다.
“우리는 단돈 12,500달러로 100명의 어린이를 숙박시킬 수 있는 캠프 하나를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라고 한 남자가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나는”현금으론 아무 것도 지불하실 필요가 없고 다만 매년 캠핑 절기 마지막에 12,500달러의 얼마씩을 지불해도 좋다는 조건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한동안 너무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이것은 우리가 하고 있던 기도의 응답이 기적적으로 일어난 것임을 알았다.
우리는 그와 몇번 만난 후에 타결책을 얻었으며 6년 후인 오늘 그 캠프 대금은 완전히 지불되었다. 수백명의 어린이들이 매년 여름이면 산 버나디노 산장의 아름다운 곳에서 예수께서 헌신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배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작은 것은 무론하고 큰 것도 구하길 원하신다.그는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다.
당신 생애 가운데 하나님으로 하여금 보다 큰 것을 하실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도록 하여라. 당신이 은연 중 기대했으나 결코 당신 생애 가운데 일어나리라고 생각지 않았던 보다 큰 것을 오늘 하나님께 요구하라.
만약 이 소원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심어진다면 당신이 그에게 요구할 때 그는 분명코 이루실 것이다.
그는 당신이 요구하길 기다리고 계신다.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 내용 발췌

편백나무 황토 볼 발바닥 지압기 발마사지기

발바닥 지압기

리프엔젤 편백나무 황토 볼 발바닥 지압기 발마사지기

리프엔젤 편백나무 황토 볼 발바닥 지압기 발마사지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누구나 발이 제2의 심장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또한 우리 몸의 건강의 척도 또한 발의 혈 자리로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장시간 일을 할 때 다리가 욱신 거리고 저리고 하는 경험을 해 보셨을 것이다.
누가 내 다리 좀 주물러 달라고 하고 싶은데 이럴 때 좋은 지압기가 없을 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종아리가 아파 종아리마사지기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예로 부터 우리 선조들은 돌맹이를 이용하여 지압용으로 사용하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그것을 가정으로 들여온 것이 발바닥 지압기인 것이다.

발바닥 지압기 마사지기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이 나와있는데
이 편백나무 황토 볼 발바닥 지압기 발마사지기는 아직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이 없다.

티비를 시청하면서 책을 읽거나 하면서 발바닥을 지압해 보자.
아마 건강을 위해서도 짜투리 여가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그럼 편백나무 황토 볼 발바닥 지압기 발마사지기가 왜 좋은 지 알아보자.

첫째 : 우리 몸에 좋은 황토 볼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겔라이트 바이오볼을 이용하여 만든 제품이기 때문이다.
겔라이트 바이오볼이란? 황토의 미립자 사이에 무수한 빈 공간에서 원적외선이 방사되며 체내 흡수되고 체온을 높이고 혈액 순환을 촉진시켜 노폐물을 배출하는 검증된 제품이기 때문이다.

국내(보온,고창,경주 등)에서 생산되는 원료로서 100% 국내산이다.
유해원소 12종 불검출 확인되었으며 원적외서 방사,신진 대사촉진에 용이한 장점이 있다.

단단한 겔라이트 황토볼이 경혈을 자극해 혈액순환과 노폐물 배출을 도와준다.

둘째 : 자연의 피톤치드가 풍부한 편백나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피톤 치드 편백 향이 가득한 천연 편백나무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일본 산 편백나무 만을 사용합니다.
원래 편백의 수종은 일본이 최고로 손꼽히긴 합니다.

셋째 : 자연의 피톤치드가 풍부한 편백나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가볍고 공간 차지가 없고 아담한 사이즈로 제작하여 보관이 용이합니다.
심지어 중량은 700g정도 입니다.
사이즈는 400mm x 120mm x 18mm(두께)입니다.
볼의 크기는 15mm의 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발이 편해야 마음도 편합니다.
편백나무 황토 볼 발바닥 지압기는 발을 편하게 하는 지압기 입니다.

간혹 이 지압기를 사용하면 발바닥이 아파요 합니다.
발바닥이 아파야 지압기 입니다. 안 그러면 평평한데 무슨 지압이 되겠습니까?

발 지압시 통증(아픔)을 느끼는 것은 내 몸의 막힌 혈 부위가 지압되어 느끼는 통증이므로 이는 각 개인마다 느끼는 통증의 차이는 다를 수 있음을 염두해 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들 건강 챙기시고 행복한 하루 하루 되시길 바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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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째, 허준이 죽을 때까지 당부했던 최고의 건강 비법 10가지를 알아보자

첫째, 배를 자주 문질러 줍니다.
옛부터 엄마 손은 약손 이라는 말은
결코 헛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배를 쓰다듬어 주면 실제 효과가 있는 데요.
스웨덴 노벨 연구팀은 엄마의 손이 아이의
고통을 줄여 준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손 테라피
(기치료법이나 마사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해요.
손으로 배를 만져주면 자율신경을 자극하여
장운동이 활성화 된다고 합니다.
배 마사지는 양손을 포개어 배꼽 주위부터
나선형으로 배 전체를 둥글게 돌리며
10여분 간 주무르면 좋습니다.

둘째, 항문에 힘을 줍니다. 
동의보감에서 말하길 “곡도” 는
안으로 끌어 들이라 하였습니다.
이 곡도가 바로 항문을 칭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항문의 힘이
점차적으로 줄어 든답니다.
옛 선조들은 항문을 보고
건강한지를 판단했다고 합니다.

셋째, 귓볼을 자주 주물러 줍니다. 
귀는 장기 중에 신장을 뜻한다고 하네요.
귀가 잘 생긴 사람은 비뇨생식기와 신장 기능
이 건강해지며, 소화가 잘되는 등
많은 점이 좋다고 합니다.

넸째, 머리카락을 손으로 자주 빗어줍니다.
손으로 자주 빗어줍니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빗어 주면,
두피에 자극이 되어 머리가 맑아지며,
탈모 증상이 개선되고 머리카락에 
윤이 난다고 합니다.

다섯째, 입안에서 혀를 자주 굴려 줍니다. 
잇몸 쪽도 핧아주고, 입천장도 핧아줍니다.
그러면 침이 생기겠죠.
침은 회춘을 하게 해주는 비타민이라고도 합니다.
소화도 잘되며,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다니,
습관적으로 혀를 굴려 침이 풍부하게 하세요.

여섯째, 치아를 두드려 줍니다. 
이를 ‘고치법’ 이라고 합니다.
치아 단련을 위해 딱딱 아래 위로
조금씩 두드려 줍니다.
아랫니, 윗니를 계속 부딪히면 머리가 울리며,
전선에 떨림을 줍니다.
잇몸과 이 주변의 질병예방, 울리는 떨림이
전신으로 퍼지면서 기혈의
흐름까지 원활하게 합니다.
이와 잇몸건강 뿐 아니라 뼈와 신장,
뇌의 신경 순환을 원활하게 합니다.

일곱째, 등을 따뜻히 합니다. ​​​​​​​
여름에는 등목을 하고, 추울 때는 등골이
오싹하다는 표현을 합니다.
이는 등으로 체열 발산을 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체열을 잃으면 건강에 좋지 않으므로,
가능한 등을 따뜻히 합니다.

여덟째, 탁한 것은 버리세요. ​​​​​​​
침은 좋은 것 이라 삼키라고 하지만,
가래는 해로우니 뱉어야 합니다.
가래는 색깔에 따라서 상태를 결정하며,
흰색, 노랑색의 가래로 나뉘며,
기관지 상태가 나빠진 것을 의미하는
신호일 수도 있다합니다.
​이런 가래들은 노폐물이니 뱉어 내야합니다.

아홉째, 눈을 자주 굴려서 움직입니다. ​​​​​​​
눈을 감고 눈동자를 돌려줍니다.
위 아래, 양 옆으로 굴려줍니다.
눈이 맑아지며, 정신이 또렷해지고
집중력도 높아집니다.

열째, 얼굴을 자주 만지고 두드려주세요. ​​​​​​​
얼굴만 자주 만져 주는 것 만으로도
동맥경화나 고혈압 등과 같은 혈관 질환의
치료를 도울 수 있다고 합니다.
허리가 아프신 분들은 인중을
두번째 손가락으로 문질러주세요.
콧물날 때 닦듯이 문질러주면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고 합니다.

앞에서 기록된 건강 방법을
실천해 보세요…
나이가 들면 우리 몸에 노화가
증가하게 되는데…
노화를 늦추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자주 하세요
사랑은 신이 내린
최고의 보약이자 선물입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부요하신 하나님

부요하신 하나님이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로마서 10:12)

당신은 한때 이 약속을 반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내가 주님을 찾지 않는다면 그는 나에게 부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종종 깨닫는다.
그는 자기에게 구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의 신령한 부요함을 주시지 않는다. 당신은 이것을 체험함으로써 사실임을 찿는다면 당신은 그의 자원이 얼마나 풍족하고 부요한지를 깨달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기도 중에 그를 찾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답답하고 컬컬하고 메마름을 경험할 것이다.
이전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았을 때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셨는가 생각해 보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했던 것을,그리고 다윗,여호사밧,아사,삼손,예수 그리고 즈 제자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성경을 통독하면서 성경에 나와 있는 기도를 연구하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한다면 필연코 당신은 기도할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당신이 기도할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당신이 기도할 용기를 얻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를 시작하는 일이며 일상생활에 큰 것에는 무론하고 작은 것에도 기도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얼마나 부요하신가를 당신이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받았던 가장 유익한 조언은 친구에게서 받았는데 그것은 간구하는 기도의 내용을 기록해서 그것을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기도하고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 가를 지켜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 냉냉하고 기계적이어서 하나님과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서 처음에는 매우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나의 친구는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철저하게 기도하는 일을 계속해 나간다면 년말 쯤에는 하나님이 그를 위하여 역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일세.”
그래서 나는 수년 동안 ‘기도목록표’를 사용해 왔으며 그것은 계속적으로 기도할 용기를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수백 가지 특정한 간구에 문자 그대로 응답받고서 기쁨을 누렸다.
얼마 전에 내가 서류뭉치를 뒤적더리다가 2,3년 전에 작성했던 낡은 기도목록표를 발견했다. 12가지 간구한 내용들을 쭉 읽어보니 그들 모두가 응답받은 것임을 알았다. 나는 간구한 내용들을 잊어 버렸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당신의 부스러기 시간이라도 이용하라.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요구하라. 그는 지각이 있으시며 우리가 깨닫는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주시고 싶어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매일 당신을 위해 일하시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리는 것을 잊지 말라.


우리의 요점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간구해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우리의 참된 선이 되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우리가 간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을 위해서 다소 부족하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간구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의 자비와 공로로 말미암아 간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가 간구하는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며 능히 주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네번째로, 우리는 응답이 주어지는 시기나 때애 관심을 두지 말고 축복이 주어 질 때가지 계속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다섯째 응답이 오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면 수천가지 기도에 응답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이 응답에 관련하여 새롭게 변모되며 활성화 될 것이다. — 죠지 뮬러 –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내용 발췌

맡기는 기도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편 37:5)

맡기는 기도는 업무처리를 할 때의 그것과 같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 문제를 완전히 맡기는 것이며 그가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신뢰하는 것이다. 결과에 대해서는 다만 그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우리는 ‘맡기고신뢰하는‘ 것 뿐이나 주님은 ‘일을 하신다‘이것은 훌륭한 진리이며 그것은 실제로 역사를 일으킨다.

그것은 인간의 매일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서도 적용된다.
만약 한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기에 체포되어 구금된다면 그에게는 변호사가 있어야 한다. 변호사는 그에게 확신시키기를 그의 소송을 자기에게 완전히 맡기고 신뢰하면 자기가 해결해 줄 것이라고 한다. 피곤인이 초조해 하거나 걱정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결과는 소송사건에 한번도 져본 적이 없는 유능한 변호사의 손에 달렸다. 이와 같이 그가 맡기고 신뢰하면 그의 변호사가 그를 위하여 해결해 준다.

한 사람이 심장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는 이 병을 세계적으로 알려진 심장병 전문의에게 맡기기로 한다. 그 외과 의사는 여러 경우 심장이식을 성공적으로 했던 사람이었다. 그 의사는 그에게 안심시키기를 만약 그가 이 병을 완전히 의사의 손에 맡기고 신뢰하면 그는 새로운 심장을 가짐으로 완치될 것이라고 한다. 이 경우 병든 자가 외과의사를 도우려고 한다면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이처런 그 사람이 맡기고 신뢰하기만 하면 유능한 의사가 그를 성공적으로 치료해 줄 것이다.

우리가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거나 넘겨 버릴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그 문제가 결론에 이르기 전에 확신에 가득차서 우리의 역활 – 맡기고 신뢰하는 것 – 을 다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역활 – 일을 이루시는 것 – 을 틀림없이 하시고야 만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위하여 행하시는 것을 통해서보다 자신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역사를 통해서 더 많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가 맡기는 기도로 기도하면 우리는 맡긴 그 문제를 인하여 더 이상 계속해서 간청하지 않는다. 우리가 확실히 믿기로는 하나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셨으며 그 일은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당신이 이런식으로 기도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맡긴 것을 잡으려고 되돌아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 것을 위하여 또 다시 기도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하고픈 모든 유혹을 단연코 무리쳐야 한다. 당신이 맡긴 것은 이제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그는 일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당신이 맡긴 것을 생각하는 때에 그것을 얻기 위하여 또 다시 기도하지 말고,일을 하고 계시는 그에게 감사를 돌려야 한다. 비록 그것이 아직 응답받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하나님은 자기의 역활을 하실 거라고 확신해야 하며 당신은 믿음으로 미리 앞질러 하나님께 감사 드릴 수 있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혹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어떤 것이 당신에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받으면,그 문제를 하나님께 당장 맡겨버리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는 분명히 그것을 완수하실 것이다.

농부가 예상하는 수확을 얻기 위하여 씨앗을 땅에 심을 때에 그는 씨앗이 발아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며칠 사이에 한번씩 땅을 파서 씨앗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가 그렇게 한다면 수확은 거두지 못할 것이다. 그는 노동의 대가를 얻기까지 인내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소망 가운데서 기다리며 물을 줄 것이다. 마침내 시간이 경과하면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계획을 하나님께 이루어 달라고 맡겨 버리면 그것이 즉각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초조해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의 약속이 신실하다는것을 안다. 그는 말씀하셨다. “내 손에 맡겨라 그러면 내가 이룰 것이니라.” 우리는 씨앗이 발아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땅을 파 보지 않는다. 우리는 맡기고 조용히 신뢰한다. 그가 일을 하고 계실 때,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때에 완전히 성취시켜 주시는 것을 알고 그를 찬양한다.

7년 전에 나는 어떤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믿음으로 나는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에 따라서 두 눈을 고침받고 그것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감사드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내 눈에 아무 변화가 없었다. 도수 높은 안경을 끼지 않고서 나는 일상적인 활동을 거의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내가 아직까지 보지 못하는 어떤 장벽이 가로 막혀 있을지라도 나는 믿음으로 행할 때 변화가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내가 ‘맡기고”신뢰했던’ 1973년 2월 18일 오후 3시의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주님의 손에 맡길 것이다.
나는 그가 일하시고 계심을 진심으로 믿는다. 그는 그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는 동안 나는 믿음과 시련이 금보다 더 귀하게 되어 내가 수확을 기다리는 동안 금을 쌓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맡기는 기도는 문제를 전가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를 우리의 손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전가시킨다.
그리고서 우리는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문제를 전가시킨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한다.
그는 그의 말씀에 신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역활을 이루신다.그는 “너희는 맡기고 신뢰하여라 그러면 내가 그것을 이루어 주리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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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다려라.인간들이 너무나 조급하고 건방지고 분을 잘 낸다. 그것은 큰 실수이다. 모든 것은 기다릴 수 있는 자에게만 찾아온다.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니라.’당신은 여호수아가 아직도 손년이었을 때 가졌던 능력과 지혜와 축복의 환상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실제로 깨닫지 못한다. 당신이 세우는 모든 계획은 실패하고 만다. 모든 문은 닫혀져 있는 것 같다. 세월이 흘러가고 당신은 세상에서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한채 절망에 사로잡힌다.이제는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그의 뜻을 받아들이고 당신 꿈의 실현을 위해 그에게 맡겨 버려라.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 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예레미야 애가 3:25~26) — 작자 미상 —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 내용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