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흘러 내릴 때

눈물이 흘러 내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사역 중에 가장 위대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보다 많은 시간을 책을 읽는 데에 보낸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읽는 데 보냈다는 점이다. 그의 설교는 실제 생활 가운데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를, 진주를 찾는 상인을, 들판에서 경작하는 소작인 농부를, 길가에 자라나고 있는 백합화를, 땅에 떨어지는 참새를 보고서 영원한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일상생활에서 이 모든 것들을 사용하셨다.

나는 몇가지 할 일이 있어서 마이애미에 간 적이 있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휴가를 얻어 즐기기 위하여 거기에 와 있었다. 어는 휘영청 달밝은 밤 거리를 걸어 내려가다가 어떤 큼지막한 건물 앞을 막 지나려 하는데 한 여자 사원이 혼자서 전보쪽지를 손에 쥐고서 구슬피 울고 있었다. 달빛은 땅위를 더 없이 밝게 비추고 미풍은 간간이 불어오는데 그녀의 슬퍼하는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다시 걸어나갔다. 그러면서 그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녀에게 육신의 병이 있다면 의사한테 가서 치료를 받아야만 하지 않을까? 만약 그녀가 나를 보고서 내가 누군지를 알았다면 “선생님은 목사님이시지요?나는 지금 슬픔에 복받쳐 울고 있어요. 내 눈에 눈물 좀 씻어주셔요”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찾아와서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내가 신문,라디오,T.V.방송을 통해서 인간의 슬픔이나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수많은 편지가 날아오며 전화통도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때마다 전파자는 무릎을 끓고 자기의 지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한다.

마이애미에 있던 그 여인이 나에게 찾아와서 상담을 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고통이란 죄의 결과이지요.선생님은 바르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께서 벌을 주고 계십니다. 무릎을 끓으시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올리십시오.: 내가 어떤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하나님의 용서가 임함으로 고통이 물러가고 마음의 노래가 되살아 나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것은 정답이 못된다.

나는 또한 그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선생님의 고통은 오직 마음 속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린다면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일어나서 해변을 거닐며 달을 바라보셔요. 잔잔히 흐르는 파도 소리를 들어 보셔요.” 때로는 그게 정답이다. 우리는 어떤 조그마한 문제를 갖고 너무 깊이 상심한 나머지 사실보다 더 악화되는 경우를 종종 바라 본다. 그러나 이러한 처방도 언제나 정답은 될 수 없다. 고통은 보다 리얼하다. 누군가가 몇 줄의 시를 남겨 놓았다.
“고통이 사실이 아니라 하지만 바늘을 세우고 그 위에 앉아보렴. 그것이 네 살을 찔러서 피를 낼 때 아파서 싫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통이란 인간 생활의 한 부분이지요.당신은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 어린 소녀가 길가에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다. 꼬마는 엄마에게 ” 이 세상이 온통 방석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방석이 아니기에 이따금씩 넘어져서 다친다.

나는 그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리라.”고난이란 선생님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찬 바람 북풍이 자작나무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리게 하는 것처럼 선생님께 당하는 고난은 영혼에 활력을 주며 인생을 보다 성숙케 합니다.”
그녀가 나에게 상담했다면 나는 아프리카 원시족 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믿기를,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선과 행복을 주려고 하지만 하나님에게 좀 모자란 친구가 있어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방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마귀가 있어 많은 고통을 인간에게 준다고 믿지만 그것 역시 정답은 못된다.
그러면 정답은 무엇인가?
그 여인이 나에게, 처음부터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먼저 밖에 나가 실컷울어버리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결코 슬퍼해 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는 어리석은 방법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울 수 있는 동물로 만드셨으며, 눈물은 정상적인 인간의 일부분이다. 인간 내부에서 슬픔을 억제하는 일은 잘못이다. 그러나 나는 그 여인에게 울음이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는 아니므로 그만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 여인이 흘리는 눈물의 원인을 알고 싶다. 아마도 그녀는 외로왔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으나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홀로 지내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에 못이겨 슬퍼한다. 아마도 그녀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휴가 때를 위하여 1년 내내 저축한 돈을 갖고 왔으나 생각했던 것보다 값이 엄청나게 비싸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녀는 매우 사랑했던 누군가가 죽었음을 알리는 전보를 이제 막 받고서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결혼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을 잃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는 장래 아무 소망도 없이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 무엇이건간에 나는 그녀에게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눔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그녀를 도와주고 싶을 따름이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절망은 없다. 모든 문제에 해답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보여 줄 수 있다. 유명한 전령이었던 어니 파일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해변에서 생겨났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주었다. 전투에서 죽어 넘어진 소년들의 소지품들이 모래에 흩날리고 혹은 파묻혀 있었다. 사진이랑,편지랑 책들이 마구 어질러져 있었다. 한 소년 옆에 키타가 놓여 있었고 또 한 소년 옆에 반쯤 모래에 파묻힌 성경이 한권 보였다. 어니 파일은 그것을 주워들고 길을 재촉한다. 반 마일 쯤 왔을 때 그는 다시 돌아와 그가 성경을 처음 발견했던 그 장소에 와 소년 옆에 그것을 놓았다.

나중에 그가 말하였다. “내가 왜 이 책을 집어들었는지 또 내가 왜 되돌아 갔는지 나는 모른다.” 아마도 그는 성경을 그 소년의 보모에게 보내어서 그들이 위로받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가 되돌아갔던 것은 그 소년이 성경을 갖고 있다가 죽었기에 성경책은 영원히 소년과 함께 있어야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이러한 체험은 이 사람이 성경을 인간생명의 해답으로 보았음이 분명하다. 이 여인에게 나는 성경을 읽어 주었으리라.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니라.”(계21:4) 그렇지 않으면 이 성경을 읽어 주었으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1)
그러나 나는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 이 여인에게 시편 28:7을 읽어 주었을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창조주이시며 무한하신 인격적 존재자가 계시고,그리고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사셨고,능력으로 세계를 붙드시고, 그의 자녀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아시는 분이심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님은 나의 힘이시니”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난다 해도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분이시다.

어느날 나는 켄퍼노키 늪지대 위를 비행하였다. 저지대로 내려오니까 물 위에 푸르스름한 보기 추한 더껑이가 보였다. 거기에는 더럽고 불결해서 인체를 해치는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을 것이다. 한 때 그 늪지대의 물은 높은 산에서 흘러 나오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었다. 그러나 저지대에서 흐르는 것을 멈추기 때문에 부패하고 만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당신이 저지대에 살면서 멈추면 생애도 부패하기 시작한다. 때때로 당신의 눈물이 눈을 흐르게 함으로 앞길을 바라볼 수 없게 할 때에도 전진은 계속해야 한다. 의사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여러가지 목적을 위해서 두뇌의 여러 부분을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사람이 걱정하거나 상심할 때면 윗 부분의 두뇌 세포를 사용한다. 두려움도 마찬가지, 윗 부분에서 이루어진다. 아랫부분 두뇌 세포는 육체의 근육활동을 작동시킨다. 활동을 하고 있을 때면 일상생활에서 쌓인 긴장이 윗 부분 두뇌 세포에서 풀어지며 이들이 정상적으로 기능을 다하게 한다.

뉴 잉글랜드에서 한 사람이 마음에 큰 슬픔과 고통 가운데 처해 있을 때 누군가가 그에게로 와서 “밖에 나가 꿀벌에게 고통을 말해 보셔요”라고 말했다. 저것은 참으로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흔히 “벌처럼 부지런하라”고 한다.
사람이 쉬지 않고 일하는 꿀벌을 바라보노라면 아래쪽 두뇌 세포가 작동하는 자극을 받으며 마음을 상심케 하는 긴장도 풀어진다. 당신이 상심하여 눈물을 흘릴 때 먼저 생각나는 것은, 침대로 가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 맘속에 하나님이 계셔 그의 믿음을 활용하면 그 능력이 당신에게 흘러 넘쳐 현실 가운데 역사한다. 이렇게 계속해 나가노라면 마음 속에 고통도 이길 수 있게 된다.
시편 기자는 ” 내 마음이 하나님을 신뢰하니… 내가 노래하여 그를 찬양하나이다.”라고 했다. 최근에 유행되는 대중가요 “빗속을 거닐면서”라는 노래가 있다. 수년 전에 유행되었던 대중가요 중에 “빗속에서 노래하며”라는 게 있다. 이들 두 노래는 장단이 맞는다. 당신 앞길에 비가 내리고 모든 것이 어둡고 침울해도 걷기를 계속하며 멈추지 말라. 걸을 때 노래가 나온다. 우리는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써,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그의 능력을 가짐으로써 빗속에서도 노래부를 수 있으리라.
“내 마음이 심히도 기뻐하나이다.”라고 시편 기자는 말한다.
상심이 비통과 분개와 자기 연민에 빠지게 하면 그러한 때 인간은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늪과 같이 되어 버린다. 그러한 때 얼굴을 찌푸리고 싶고, 불평하고 싶은 곳에 빠진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신뢰하면 마음 속에 생겨나는 노래가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할 것이다.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 내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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