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산을 옮기는 방법

당신의 산을 옮기는 방법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환경에서 승리감을 맛보고 싶어할 것이다.어느 누구라도 나약함이나 패배감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적인 약점이나 곤경에 처하게 될 때 우리는 생애 가운데 무력함이나 절망감을 느낀다.

예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능력 얻은 방법을 공식으로 보여주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라라” (막11:22~23)

이 공식은 우리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진실로”라는 말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려고하는 그 사실이 믿기는 매우 어려우나 진리임을 강조해주는 것이다.”누구든지”라는 것은 당신이든지 나이든지 어느 누구라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산에게 말하여….”라는 말은 특정적인 그리고 분명한 대상을 설정함이다. 당신의 생애 가운데 놓여있는 어떤 환경을 택하여 이 공식에 적용하여 보아라. “제거될 것이다.” 그것이 더 이상 해치지 못할 것이다. 바다에 던지워서 영원히 완전한 승리를 얻게 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해 사람들은 세가지 각기 다른 종류의 태도를 취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믿을 것이 못돼”라고 하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지금껏 알려진 책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는 책을 반박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뿐만아니라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들 중에 가장 현명한 선생님을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의 견해를 반박하기 이전에 그 사람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한다나는 그리스도의 아시는 것만큼 알지 못한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1955년 3월호에 어떤 기사가 실렸는데 그것은 미국 라디오 방송협회 이사장이며 세인에게 가장 존경받는 과학자인 데이비드 사노프씨가 기고했던 것이다. 그는 기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초창기에는 현대과학이 종교와 사이가 좋지 않는 것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표밖에 되지 못한다. 우리 세대에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우주의 신비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과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이들은 과학의 제한된 지식으로 말미암아 종교를 가진다는 것이다. 원자나 전자,유전자와 같은 우주의 구성요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생각하지 못한 점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과학의 결과는 무한히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무한히 큰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에서 놀랍도록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히 나타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내가 만일 “믿음의 능력을 믿을 수가 없는데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현대과학의 증거에도 반대하고 있다. 과학은 “텔레비젼이 일을 한다”라고 말하며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사서 그것이 일함을 본다. 그리스도와 과학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것을 믿는 자는 그것을 시도할 것이며 혼자서 그것을 목도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만일 하나님을 믿으면 너희 앞길에 놓여있는 태산도 제거할 수 있으리라고 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믿음의 능력에 관해서 취하는 두번째 태도는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요.그것은 나의 지각을 벗어 나는 것이네요”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믿는 것도 아니고 안믿는 것도 아닌 결국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인생의 자포자기하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이다.”나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사람이 약하고 보잘 것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할 수 있는 능력도 사용하지 못하고 패배하고 만다. 이따금씩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인간은 매사에 비판적이거나 냉소적이기 쉽다.

얼마동안 나는 아틀란타 은혜교회에서 매우 훌륭한 심리학 박사와 동사한 적이 있다. 주일 밤이면 그는 강단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살펴보곤 했다. 그는 나에게 이때가 심리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사람들을 살펴보는 몇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나는 쉽사리 여러가지 유형을 구분하였다. 당신도 거의 모든 회중 가운데서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다.

이를테면 불신앙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교회에 나온다고 하자.그는 참석한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위선자들인가를 생각한다. 그는 노래부르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거기에 마음을 같이하지 않는다. 그는 설교를 듣는다기보다도 목사가 설교한대로 행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더 있다. 어떤 사람이 예배에서 영감을 받은 것같이 보이면 그는 감정주의라고 말한다.

한편 어떤 사람이 믿음의 태도를 갖고 교회에 나온다고 하자. 그는 사람들이 교회 건축에 헌금을 많이 했다는 말만 들어도 큰 감명을 받는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수세기 동안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제단 위에 바쳐졌는가를 생각한다. 그는 잠재의식에서 묻는다. 순교자가 믿음 때문에 죽었단 말인가! 성경이 어떻게 살아있는가? 사람들이 기도는 어떻게 하는가? 그는 그들의 신앙을 보고 감동을 받는다. 그는 찬송을 부르고 설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에 역사하시는 음성을 듣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상기해 보자.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눅19:26) 이 원리는 삶의 여러가지 분야에 적용되나 특별히 믿음에 적용된다. 교회 공중 예배중에서 믿음을 팔아먹는 자는 그가 가지고 온 보잘 것 없던 믿음도 빼앗긴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활용하는 자는 새로운 힘과 능력을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믿지 못한다.어떤 사람들은 믿기는 믿으나 그것이 그들과는 상관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제3의 그룹이 있는데 이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믿음을 활용하여 가지고 있는 믿음을 사용하여 그렇게 할 때에 그들의 믿음은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인간의 심령과학에 대해서 많은 것을 듣고 있다. 그것은 어떤 상태나 환경,심지어는 물질에까지도 인간 심력을 적용시킨다. 그러나 성경은 심령과학을 훨씬 능가한다. 성경이 비록 심력을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또한 인간의 약함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했지,그냥 너 자신을 믿으라고는 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산을 옮기는 믿음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불굴의 믿음을 개발할 수 있는가? 해야하는 두 가지가 있다.

1.하나님의 존전에 있음을 인지하라.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나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 교회라고 본다. 나는 다른 어떠한 장소에서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인재하심을 더 완전하게 느낀다. 건물이나 음악이나 설교,기도 등 이와 같은 모든 요소들은 상당하게 도움이 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서 나의 예배에 도움을 받는다.
나는 매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해 배웠다. 영적인 천재였던 헨리 드럼몬드는 “매일 그리스도의 존전에 십분간이라도 아니 2분만이라도 보내는 자가 있으면 그는 온 종일 다르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집에서 교회에 있는 사무실에 차를 몰고 가노라면 사자로를 거쳐나가게 된다. 나는 거의 언제나 붉은 신호등이 켜져 있는 것을 보며 이 도시에서는 가장 더디게 푸른 신호등으로 바뀐다고 믿고 있다. 거기를 거쳐서 공원을 낀 언덕 아래에 또 하나의 더디게 바뀌어지는 신호등이 있으며 반구획도 못가서 또 하나의 신호등이 있다. 그 다음에도 한길에 나와서 그것이 있다. 나는 네게의 신호등이 지체케 함으로 신경질을 내곤 하였으나 지금은 거기에서 경건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나는 네가지 질문을 가지고 매 신호등을 지날 때마다 자문자답한다. 첫째 신호등에서 ‘오늘 내가 가장 감사할 일은 무엇인가? 둘째 신호등에서 ‘내가 지난 24시간 동안 했던 일 중에서 부끄러운 일은 무엇이었나.?’나는 그것을 24시간으로 제한했는데 그것은 교통 신호등이 아무리 길어도 24시간을 가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지난 날들을 생각할 시간은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구한다. 세째 신호등에서는 ‘ 이 한날 나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를 자문한다. 그리고나서 마지막 신호등에서 ‘나는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를 자문해본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전에 서는 영적인 순간들을 스스로 맞이할 수 있다.

2.믿음을 키우기 위해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당신으 논증으로써가 아니라 행위로써 믿음을 얻는다. 우리는 신뢰함으로써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생활에 지나치게 지성적이 되려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나 그전에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나 그전에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마22:37) 당신은 믿음에 관해서 논쟁을 하기 이전에 믿음을 체험해야 한다. 그리고나서 그는 우리의 생애 가운데 놓여있는 어려움의 산을 제거하기 일을 부지런히 하여야만 한다고 하셨다.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을는지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히 전진해야 한다. 예수님은 ‘마음에'(지성과 마음이 아니라) 믿어 의심치 아니하면 승리를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무슨 일을 해도 실패를 맛본 어떤 사람이 이 말씀을 읽는다고 한다면,나는 그 사람에게 지금 당장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수 있도록 믿으라고 촉구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당신이 지금 이 순간 믿는다면 완전한 승리를 가져다 줄 필요한 힘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신령한 사지를 펼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라. 그에게 당신의 모든 생애를 맡겨라. 그는 “능히 당신을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 (유24절)하실 수 있다.

당신이 기도한다면? 밥 핏츠 지음 일부내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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