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정의 생활

주택

동굴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동굴이 많이 있다. 특히 사해에는 가는 곳마다 굴이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주하기 전부터 있던 것으로써 자연적인 것과 혈거민 호리인이 인공적으로 만든 것도 있다. 또한 적의 약탈을 피하기 위해서나 다른 일시적인 필요에 따라 동굴을 만든 일도 있다. 이러한 동굴은 유랑인과 도적들의 은거소가 되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에도 동굴을 은거지로 하고 있던 기록이 남아 있다.(삿6:2,삼상22:1,삼상24:3)

가옥

예나 지금이나 팔레스틴 농민의 집은 대개 담으로 두른 앞 마당에 가축이 산다. 집에 들어서면 마루가 두 층으로 되었는데 무릎 찰 만큼 높은 층에는 가족들이 살며 음식을 만들어 먹고,낮은 층에서는 밤이나 비가 올 때 가축이 먹고 산다. 그래서 한 지붕 밑에서 가족들과 짐승들이 의좋게 산다. 예언자 나단이 다윗 앞에 나와서 말한 중에 한 가난한 자가 그 암얌을 아이들롸 같이 한 방에서 기른다고 했다.(삼하13:3) 물론 이러한 집은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다. 여유가 있는 집은 보통 마다을 중심으로 해서 그 주위에 집을 지었다. 그러므로 가옥은 바깥으로 향하기 보다는 안으로 향했다는 것이 적당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가옥이라도 외부는 보잘 것 없고 몇 개의 창문만 보일 뿐이다. 들어가는 입구가 대한히 침침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가옥이 양편으로 잇달아 있는 거리를 지나가면서 보면 마치 성벽과 성벽 사이를 걸어가는 것 같다.

문과 마당

문은 정면 중앙에 있다. 어떤 때는 훌륭한 장식을 하는 일도 있지만 대개는 볼만한 것이 없다. 이는 히브리인들이 그런 장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잠17:19).문은 네부분, 곧 문짝,문지방,인방,문설주로 되었다.문을 나무로 짰으며,쇠나 가죽으로 만든 돌쩌귀에 달려 열리고 닫혔다. 대개 한 짝 문에 쇠로 장식을 했으나 성전문들 만은 금으로 장식했으며,두 짝이었다.문지방은 대개 돌이었으며 특별히 신성하게 생각했다. 문설주는 돌로도 했으나 대개 나무요,신명기 6:4-9,11:13-21을 양피지에 써서 나무나 쇠로 만든 메주자라고 하는 작은 함이 문설주에 달려 있었다. 문에서 가운데 마당에 이르는 통로는 밖에서 들여다 보이지 않도록 칸막이를 세우는 일도 있다. 방은 마당을 중심으로 있기 때문에 어는 방이든지 마당을 향하여 문이 나 있다. 마당은 보통 한 개이지만 그 집의 크고 작은 데 따라 2개나 3개가 있는 집도 있다. 상류 층의 집 마당은 대리석으로 깔고 우물을 파고 화단을 만들어 화려하게 꾸미는 일도 있으며 연못을 만들기도 한다. 또 마당에는 2층과 지붕에 올라가는 층층대가 설치되어 있고 밖에 층층대를 두어 지붕에 올라가게 된 집은 하류층 사회에서 볼 수 있다.

건축 재료와 기초

가옥의 건축 재료는 장소에 따라 일정치 않지만 팔레스틴 지방은 돌이 풍부하므로 대개는 석조 건물이다. 석재가 없는 곳에서는 벽돌이나 진흙을 사용했다. 목재는 팔레스틴에 잘 나지 않으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사용하지 않도록 힘썼다. 그러므로 노송나무로 천정을 짓는 일은 사치한 장식의 하나였다. 예레미야는 이것 때문에 유대 왕을 견책한 일이 있다. 학개서에는 ”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라 고 하였다. 집을 건축하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기초를 튼튼히 할 필요가 있으므로 반석과 같이 다졌다.(마7:24-25)

창의 구조

창은 유리도 끼지 않고 종이도 바르지 않고 창살로만 만든 것인데 자유로 옆으로 밀어서 열고 닫고 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통풍과 햇빛을 받기에 편리하도록 된 것이다. 혹 어떤 것은 창이 외부로 튀어 나와서 길쪽에 달리는 것도 있다.창살은 틈이 조금 나게 열면 안에 있는 사람은 밖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으나 자기는 바깥 사람들에게 보이지 안흔다. 다윗왕이 법궤를 맞으면서 기뻐 뛸 대 미갈은 이것을 창살 틈으로 엿보았다고 하였다. 또 창으로 사람을 달아 내린 일이 가끔 기록되어 있다. 창에 앉은 일도 있었으몰 실수하여 그 곳에서 떨어진 사람도 있었다.

지붕의 구조

지붕은 보통 평면으로 되었는데 이것을 만들려면 먼저 견고한 목재를 늘어놓고 그 위에 석회석을 깔고 다시 흙을 덮고 그 후에 이것을 다져서 비가 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혹 그 흙 위에 풀이 자라는 수도 있기 때문에 지붕에 산양이 올라가서 풀을 먹는 진기한 모습도 있다 (시129:6) 어려운 사람의 집은 종려나무의 잎이나 밀짚 또는 풀로써 지붕을 만들로 그 위에 흙을 얹는다. 그런데 다가 지붕이 평면이므로 비가 새는 것이 예사였다. 잠언에 “다투는 부녀는 비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고 하였고,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라고 하였다. 이렇게 집에 물이 새는 것이 귀찮은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잠19:13,27:15)

지붕의 이용

그러면 왜 지붕을 평면으로 짓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지붕을 여러 가지 용도로 쓰기 위해서이다. 여름철에는 사람들이 지붕에서 낮잠을 잔다. 또 친교의 장소로도 쓴다. 고요히 묵상하기 위해서도 좋은 장소이다. 다윗은 또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그 곳에 올라갔다. 베드로는 기도하기 위해 올라간 일이 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도 옥상에서 하신듯 하다. 느헤미야 시대에는 사람들이 옥상에 나무가지로 초막을 치고 장막절을 지킨 일이 있다. 기생라합은 두 사람의 히브리 정탐꾼을 널어 놓은 삼대에 숨겼다는 것이 있다. 또 곡물과 같은 것들을 볕에 쬐여서 말리는 습관도 있다. 또는 무슨 이상한 일이 일었났을 때나 화재가 있을 때 구경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가기도 한다. 다윗과 압살놈의 전쟁 때 파숫군이 망대로 사용한 일이 있다. 옥상은 또한 선언의 장소로도 사용하였다. 예수가 그의 제자들을 향해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하신 말씀은 이러한 풍습에서 온 명령이다. 요사이도 지방 관리가 옥상에서 명령을 내리는 일이 있다. 또한 옥상에 탑 모양으로 방을 만들어서 더위를 피하도록 사용한 일이 있다. 열왕기에 수넴 여인이 예언자 엘리사를 위해 지은 “작은 방”이 이러한 방이었다. (왕하4:10) 지붕은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쓰이는 곳이므로 옥상에 오르는 사람의 위험을 막기 위해 난간을 만들라는 한 가지 율법이 생기게 되었다. 즉 “네가 새 집을 건축할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가 흐른 죄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고 한 것이 이것이다.(신22:8)

화로와 연통

집에는 연통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다만 옥상에 작은 구멍을 뚫어 놓은 것 뿐이다. 이러한 시설도 없은 집에는 방 한가운데나 한모퉁이를 우묵하게 파고 철판을 깔고 불을 담는 것이 보통이다. 연료로서는 나무,지푸라기,가축의 마른 똥(겔4:15) 또는을 사용했다.

실내의 좌석

방의 필요한 곳에 방석을 두어 이것을 깔고 앉게 하였으며, 부잣집은 이것을 대리석으로 만들고 여러가지 모양으로 장식하였다.낮에는 좌석으로 쓰고 밤에는 그 위에 침대를 놓은다. 이것은 왕족이나 귀족의 일이고 보통으로는 침대를 못쓰고 돗자리 같은 것을 깔고 배개를 배고 자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로는 가장 간편하다고 하겠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자리와 베개만 가지고 오면 몇명이라도 잘 수가 있다. 까는 것이나 양탄자는 상류 사회에서만 사용하였다.또한 어떤 때에는 의자를 사용한 일이 있었지만 보통으로는 방석에 앉는 것이 이들이 풍습이다.

등잔과 촛대

등잔은 기름을 부어 쓰는 것인데 부자들의 것은 금,은,놋쇠,청동과 같은 금속으로 만든 비싼 것 이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흙으로 구워서 만든 도자기 같은 것을 사용했다. 그 모양은 가지가지어서 예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지만 대개 우리나라에서 쓰던 접시보다 좀 오목한 것을 썼다. 그 가운데에 기름을 붙고 등잔에 심지를 넣고 불을 켰다. 이것을 상 위에 놓으면 방안을 두루 밝힐 수 없으므로 높은 대, 즉 촛대를 만들어서 그 위에 놓았다. 촛대는 보통 나무나 놋쇠와 같은 재료로 만들었지만 금이나 은으로 만든 것도 있다. 또 방안이 항상 어둡기 때문에 작은 등잔을 밤낮으로 켜 놓았다.

의복과 장신구

옷 감

유대인은 의복을 만드는데 여러가지 재료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모직,무명,삼베들이다. 이외에 후대에 이르러 명주까지 사용했다.그러나 두 가지 이상의 실로 짠 옷감은 율법으로 엄금하였다. 곧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했다. 이것은 다만 단일한 것은 선이고 혼합 한 것은 악이라는 그들의 사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그들의 옷은 세 가지가 있는데 내의와 그 위에 입는 옷과 상의이다.

내의

내의는 직접 살에 닿는 것으로써 가장 단순한 형은 소매가 없고 그 길이가 무릎까지 혹은 발 뒤꿈치까지 닿게 되어 있다. 이것보다 좋은 것은 소매도 있고 길이도 발뒤꿈치에 닿게 된 것이다. 남녀가 같이 이것을 입었다. 그러나 모양은 다르다. 율법에는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고 했다.(신22:5) 더울 때에는 하류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은 다만 이 내의만 입었지만 귀족들은 실내에 있을 대만 이렇게 입고 외출할 때는 반드시 겉옷을 입었다. 성경에는 내의만 입는 자를 벗은 몸이라고 했으나 이것은 완전히 벌거벗은 몸은 아니다. 마가복음 겟세마네가 기록된 부분에 ”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라고 한 기사도 이 풍속을 따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막14:51-52)

하의

이것은 내의 위에 입는 것인데 성경에는 여러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그냥 옷 또는 속옷,겉옷이라 한 곳도 있다. 그러나 모두 하의를 가리킨 것이다.예수가 입고 있던 하의는 “호지않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통으로 짠 것이다”그러므로 군사들은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고 했다. 이것은 머리와 두 팔이 나갈 곳을 내고 아래를 터 놓은 것이다.

허리띠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허리 띠인네 남녀가 같이 이것을 썼다. 그 재료는 가죽,무명,삼베 등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소박한 것은 가죽 띠이다.선지자들은 이것을 띠고 있었다. 훌륭한 것은 삼베로 만든 것으로 금이라든가 보석의 장식이 있었다. 예레미야서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 말라”라든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띠가 사람의 허리에 있는 것 같이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집과 유다 모든 집을 내게 있게 하고 저로 하여금 내 백성도 되고 내 이름도 되고 내 명예도 되고 내 영화도 되리라”고 한 것을 보아 이들이 띠를 얼마나 중하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다. (렘13:1-13) 제사상의 복장에 대한 기록 중에 띠에 대해서는 “금실,은실,자실,홍실과 삼베를 가지고 이것을 지으라”고 했다. 어떤 때는 값비싼 대로 예물을 하는 풍습도 있었다. 띠를 허리에 매는 것은 노동의 준비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활발한 노동을 할 때 또는 달음질할 때는 띠를 단단히 매지 않으면 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러므로 띠를 띠는 것은 힘,준비,경계 등의 기호가 된 것이다. (욥38:3,눅12:35-37,엡6:14,벧전1:14)

상의

세째로 입는 옷이 상의인데 4방 아홉자가 되는 천이다.옷단 네 귀에 푸른색 노끈을 달고 그 아래에 술을 달았다. 이것을 다는 이유는 성경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이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쫓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 말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술을 크게 하는 것은 종교적 열심을 표시하는 기호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이것이 외식화하고 말아서 예수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 상의는 낮에는 입고 밤에는 침구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율법은 채권자가 채무자의 상의를 야간에 전당잡아 두는 것을 금했다. 즉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 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신24:13,출22:26-27)

경문

신구약의 과도기로부터 그들은 출애굽기 13장 6절,신명기 6장 4절 ~9절,11장과 18절을 문자 그대로 지키기 위해 경문을 만들어서 이것을 매었다. 그들은 4매의 양피지에 출애굽기 13:2-10,11-17,신명기 6:4-9,11:13-22의 4귀절을 써서 적게 접어서 4개의 작은 통에 넣고 또 이 네 개의 아주 작은 통을 두꺼운 가죽에 붙여서 이것을 이마 가운데에 놓고 실로 잡아 매었다. 또 이것을 한 개의 통에 넣어서 사두개파는 손목에 붙이고 바리새파는 신명기 6장 6절의 말씀을 쫓으려고 될 수 있는 대로 심장 가까운 곳을 택해 왼쪽 팔에 이 통을 실로 매어서 소매로 덮었다. 이 통은 깨끗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고 이것을 검은 색으로 바른 것이다. 탈굼이라는 경전이나 랍비의 저술에 의하면 유대인은 이것을 테피림 즉 “기도”라고 했다. 이것은 기도하기 위해 붙이기 때문이다. 일반 유대인은 다만 예배 때만 이것을 붙였지만 바리새파는 항상 붙이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종교적 열심을 표시하기 위해 경문을 넓게 하고 가죽의 폭을 넓게 해서 이마에 잡아 매었었다.

신 발

신은 가죽이나 나무로 만들로 끈으로 발에 맨다. 그러므로 이것은 다만 발다닥만을 보호할 뿐이다. 그러나 앗수리아인의 신은 발바닥 뿐만 아니라 그 옆이나 발뒤꿈치를 싸고 또는 장식까지 하였다. 히브리 귀부인들도 이와 같은 것을 신은 듯하아. 아가서에 “그대의 여자들이여 너희들의 발은 신 가운데 있어서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한 것은 이것을 가리킨 것이다. 버선과 양말은 이 나라에서 신는 일이 없다. 사람이 집에 들어가면 반드시 신을 벗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종은 주인의 신들메를 풀고 물을 가지고 발을 씻는 의무를 가졌다. 여러 종이 있는 경우에는 가장 낮은 종이 이것을 하는 예가 있었으므로 들메를 푸는 일, 발을 씻어 주는 일은 겸손의 상징이 된 것이다. 또는 신을 벗는 것은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성전에서 그 직무를 행할 때는 반드시 신을 벗고 발을 씻었다. 신에 관한 기이한 풍습은 형이 아들을 두지 못하고 죽은 때에 동생은 형의 처를 취할 의무가 있다. 만일 동생이 이것을 원치 않을 경우에는 형의 처는 이것을 마음 장로에게 일러서 동생을 설득하여 주기를 신청한다. 그의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하기를 ” 그 형의 집을 세우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대접할 것이라”고 한다. (룻 4:7-8) 그리고 그 동생의 이름을 ” 신 벗긴 집”이라 부른다.(신25:5-10) 또한 신을 집어 던지는 것은 그를 낮게 보고 또는 천한 일을 맡기는 뜻을 표하는 것으로 여겼다. (시60:7-8)

머리와 수염

머리와 수염은 애굽인들과 같이 깍지 않고 길게 기르며 이것을 꾸민다. 그 뿐만 아니라 수염을 깍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로 인정했다. 그러나 마음에 근심이 있을 때는 그 수염을 꾸미지 않았다. 또 다른 사람이 수염에 손대는 것도 매우 싫어했다. 그러나 다만 친한 벗과 입맞출 때는 특별히 예외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인장과 목거리

인장은 목으로부터 가슴 앞에 느리기도 하고 혹은 가락지에 새겨서 끼기도 한다. 요셉이 바로에게로부터 받은 가락지에는 왕의 인이 있었다. 금,은 보석의 목거리를 귀족들은 귀중한 장식품으로 걸고 다녔다.솔로몬이 아버지의 교훈과 어머니의 법도를 중히 여길 것을 청년들에게 권할 때 ”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라고 말한 것은 이 습관으로부터 나온 비유이다.(시 73:6,잠1:9)

기타장신구

신부가 신랑 앞에 나올 때 겸손과 복종의 정신을 표하기 위해 사용하던 너울이라든지 방울을 단 발장식이라든지 금,은,황동,상아,뿔,산호,진주,보석,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귀거리,팔찌,코거리,반달 빗,목거리,뺨의 머리 땋은 장식,화관들의 장신구가 있다.

눈과 눈썹에 바르는 분

코올이라는 흑색 분으로 눈과 눈썹을 바르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을 말할 것도 없이 그 얼굴을 아름답게 보이돌록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여인들이 너를 경시하여 네 생명을 찿느니라”는 공격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렘4:30)

의복의 색

의복의 색갈은 흰색을 청결의 표로 하고 검은 색으로 비애와 고통을 나타내었다. 왕후와 귀족은 자주,청,홍색의 의복을 입는 풍습이 있다. 또는 채색 옷 혹은 수 놓은 옷도 입었다. 요셉이 어렸을 때 채색 옷을 입었다고 하는 것이 한 예이다. 또한 느헤미야는 다니엘이 놓은 자리에 올라간 때에 자색과 홍색의 의복을 입은 것이 기록되어 있다.

제사장의 복장

제사상의 복장에 대해서는 출애굽기 28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설명을 약하기로 한다. 그러나 한 마디 붙일 것은 그 옷은 일일이 특별한 정신적 의미가 있으며 제사장의 특권과 책임을 상징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음식과 식사

주식

유대인의 주식은 떡이다. 떡을 제조 판매하는 자를 구약에서는 보지 못하겠으나 신약에서는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가지시고 5천명을 먹이신 사실 중에서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하신 말이든지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옵소서”우리가 가서 200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는 말을 보아서 떡 판매자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요6:5,마6:35-36) 떡을 만드는 데는 먼저 밀이나 다른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느 집이든지 한 개나 두개의 절구를 두고 가루를 쓸 일이 있을 때마다 절구에다가 곡식을 빻는다.가루를 미리 만들어 놓지는 않았다. 그래서 종일토록 절구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솔로몬의 잠언 중에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 하느니라”하는 말이 있다. (잠27″22) 절구 외에 가루를 곱게 하는 기구는 맷돌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것과 같은 것인데 돌을 매우 단단한 것으로 사용했다. 그 돌의 크기는 보통 직경은 40cm 정도이고 두께는 12cm가량이다. 그러나 나귀의 힘으로 돌리는 연자 맷돌도 있었다. 맷돌을 가는 것은 부인의 일거리였으나 삼손과 같이 포로된 남자를 시켜 맷돌을 갈게 한 일도 있었다. 맷돌을 갈 때는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하는데 둘이 할 때는 마주 앉아서 한다. (삿16:21) 앞에 말한 것과 같이 유대에는 매일 맷돌 가는 소리가 들리고 절구질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활동의 소리를 뜻하는 것이다. 즉 번영의 소리를 말하며 이 소리가 나지 않을 때면 패망으로 향하는 징조로 알았다.(렘25:10,전12:4) 맷돌은 이와 같이 매일 쓰는 것이므로 히브리인은 이것을 전당 잡는 것을 급하였다. 즉 “맷돌을 전당 잡지 말지니 이는 그 생명을 전당 잡음이니라.”하였다. (신24:6) 가루를 개는 데는 판을 사용했다. 이것은 나무로 만든 것과 가죽으로 만든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가죽으로 만든 것은 쓰지 않을 때는 접을 수 있도록 간편하게 만들었으므로 이것을 귀한 물건으로 여겼다. 또 여행할 때에는 가루와 떡을 넣는 그릇으로도 썼다. 가루는 물이나 양유를 넣고 손으로 갠다. 또 떡에는 누룩을 넣은 것가 넣지 않은 것이 있다.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은 손쉽게 될 수 있다.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한 떡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이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두껍게도 만들고 얇게도 해서 화로에 굽는다. 누룩을 넣은 것은 얇게 자르지 않고 그냥 뜯어 먹는 것이 보통이다. 또 떡에는 밀로 만든 것과 보리로 만든 것이 있는데 밀떡을 좋은 것이라고 여겼다. 예수가 5천명을 먹이실 때 그 아이가 갖고 있던 떡은 보리떡이었다.(창18:6,요6:9) 떡 외에 주식으로는 육식을 했다. 그러나 새나 가축을 일반적으로 먹기는 했지만 많이 먹는 것은 아니다. 생선은 호숫가에 사는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먹었지만 물고기 날 만한 강이 적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음식물이 되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먹는 데 대해서는 엄밀한 제한이 있었다. 즉 짐승은 소와 양 같은 새김질하는 것으로 또 발굽이 둘로 갈라진 것이라야 되고 생선은 비늘과 지느러미가 갖추어진 것을 한했다. 새는 수리와 매같은 육식 조류와 참새와 까마귀같은 잡식 조류를 금했다. 벌레는 메뚜기와 같이 날고 뛰는 긴 다리가 있는 것에 한했다. 그러므로 토끼와 돼지,뱀장어,낙지,문어 같은 것은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었다.고기는 찌거나 구워서 먹고 말려서 먹기도 했다. 산양이나 양을 그 어미의 젖으로 찌든지 복든지 하는 일은 율법으로써 엄금하였다.(민11:32,신14:21) 메뚜기를 먹는 일은 상류사회에서는 거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으로 사용했다. 세례 요한이 메뚜기를 먹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찌고 혹은 기름에 복고 가루를 내어 과자를 만들고 또 소금에 저려두고 혹은 말려서 오래도록 보존하고 때에 따라서 음식에 넣어 먹었다.

부식

보통 부식물은 팟죽이었다. 창세기에 보면 그 빛은 붉다고 했다. 또 열왕기에는 야생 오이를 솥에 썰어 넣고 끓인 이야기도 있다.(창25:29-34,왕하 4:38-41) 소금은 요리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으로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이것을 사해 근방의 산에서 파내어서 썼다. 떡과 소금을 같이 먹는 것은 우정의 상징이 되어 있다. 음료로는 술이 사용되었는데 술은 포도 또느 과즙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발효한 것과 발효하지 않은 것이 있다. 또한 소와 양,산양의 젖이 음료로 사용 된 것은 물론이다.

세수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은 그들의 습관이었다 (막7:3-4) 식사할 때는 때를 따라 바로 앉기도 하고 비스듬히 앉기도 한다. 주님의 만찬 그림에서 주님과 제자들이 몸을 비스듬히 앉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습관이 구약 시대 때부터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히브리인은 특별한 집회에서 비스듬히 앉고 평일에는 바로 앉은 듯하다.

식탁

히브리인의 앉은 의자는 긴 의자로서 보통 세 사람이 앉아도 충분하다. 혹은 세 사람 이상이 앉는 일도 있다. 식탁을 중앙에 놓고 긴 의자를 세 군데 놓고 한 곳은 열어두어 심부름하는 사람이 편리하게 했다. 앉는 데는 몸의 왼쪽을 아래로 하고 머리를 조금 들고 두 발을 충분히 뻗거나 조금 굽히고 앉는다. 그러므로 첫재 사람의 발은 둘째 사람의 등 뒤에 있고 둘째 사람의 머리는 첫째 사람의 가슴 앞에 있게 된다. 요한복음 13장 23절에 요한이 예수님의 가슴에 의지하였다고 한 것은 요한이 예수의 바른 편에 앉은 까닭이다. 발은 신을 벗은 대로 뒤에 뻗기 때문에 누구든지 쉽게 그 발에 닿게 되었다. “예수의 뒤로 그 발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우니”라고 한 것은 이러한 방법으로 앉아서 식사를 한 유대 풍속을 증명한 것으로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눅7:38,요13:2) 또한 누구든지 식사 중에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했다. 좌석에는 상하의 구별이 있다. 상좌에 앉는 자는 가장 귀한 사람이었으므로 바리새인들은 그 자리에 앉는 것을 원했다. 식사할 때 상좌는 주인의 자리 옆에 앉는 것이다.어떤 성서학자는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서 앉은 순서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음식을 집는 데는 왼손을 사용했다. 젓가락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한 것은 그와 같은 습관에 의한 것이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종은 그릇에 물을 담아 가지고 와서 부은 사밧의 아들 엘리사”라고 기록한 것은 엘리사가 엘리야를 위해 이 일을 한 것이다. (왕하3:11)

청결례

그들이 식사 전후에 손을 씻는 일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지만 이거은 다만 청결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청결하면 너희도 청결하라”함과 같이 문자 그대로 실행하려 하는 종교적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같은 손을 씻는다고 할지라고 이것은 쓸 만한 그릇,물을 부을 만한 사람,손을 씻는 방법들이 학자의 연구거리가 되어 있다. 이외에도 그들은 여러 가지 씻는 예식을 행했다.그들은 물건 중에 깨끗한 것과 불결한 것을 가리고 손을 씻고는 물건을 깨끗하게 하고 목욕할 물까지 가려서 썼다. 완고한 유대인 중에는 술에 빠져 죽는 지극히 작은 벌레도 혹시 삼킬까 봐 두려워 해서 이것을 걸러 먹는 일도 있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라고 책망하신 것은 이러한 습관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막7:1-5,마23:24)

교제와 여행

인사

유대인은 서로 인사하는 습관이 있는데 상대방의 신분에 따라 머리만 숙이거나,허리를 굽히건,땅에 엎드려 예를 표시한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세명의 여행자를 보자마자 곧 몸을 땅에 굽혀 인사하며 말을 했고 또 그의 처 사람의 묘지를 찾을 때에도 헷사람 앞에서 몸을 굽힌 일이 있다. 야곱은 그의 형 앞에서 일곱 번 몸을 굽혔다고 했다. 또한 지극히 높은 사람 앞에 나온 때에 땅에 엎드려 절한 예는 요셉의 형제들이 애굽의 총리인 요셉에게 절한 것이다. 신약에도 그리스동게 타원하러 온 자들이 그의 앞에서 끓어 엎드린 일과 요한이 하늘의 사자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려 한 기사를 볼 수 있다. 친한 사람과 만날 때에는 몸을 굽히는데 그치지 않고 서로 목을 안고서 입맞추는 풍습이 있었다. 이와 같은 풍습은 부자간 혹은 친족과 친한 벗 사이에 행해졌다. 또한 제자가 그 선생에게 입맞추는 것은 사랑과 경의를 표시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만찬식을 행할 때 먼저 입맞추는 예가 있었다고 옛글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인사에쓰이는 용어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즉 “여호와가 당신들가 같이 계실지어다. “여호와가 당신을 축복할지어다.””평안할 지어다.” “당신의집이 평안할 지어다.””당신이 가진 모든 물건이 평안할지어다”라고 했다. 가장 보편적인 인사는 “평안하시기 바랍니다.(shalom)”샤롬이요 그 대답은 “당신에게도”였다. 여러가지 긴 인사는 사무에 분주한 사람에게는 귀찮을 정도였다.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경우 즉 여행에서 돌아올때,식사 전후,경조의 경우,조석,심지어는 새 옷을 입을 경우까지 판에 박은 듯한 인사와 대답하는 말이 있다. (룻2:4)

유대인과 오락

오락에 대해 기록된 곳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데 아이가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통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한 말 가운데 아이들이 혼례와 장례를 흉내를 내면서 놀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외에는 별로 말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오락이 있었던 것은 물론읻. (마11:26-27) 유대인들이 대중 오락을 한 일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안디옥,에피파네 시대에 제사장 야손이라는 자가 헬라풍의 오락을 거행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운동장을 설치하고 그 후에 헤롯은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와 베레스에 극장을 설치하였으나 유대인은 자기들의 풍습에 위반되므로 일반인들은 이것을 피했대, 헬라와 로마의 대중 오락은 규칙이 있고 승부를 결정하는 심판관이 있어 우승자에게는 이를 표창하였는데 그 승리자의 명예는 매우 귀한 것이었다. 신약 성경에는 이것을 인용하여 신앙상의 전승을 기대하였다. (딤후 2:5,엡6:12,고전9:26,히12:1-4,딤후4:7-8)

여행

유대인은 여행 할 때 남녀를 막론하고 대개 나귀를 사용했다. 안장은 다만 나귀 등에 모포 같은 것 하나만 얹은 것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제자들이 “옷을 그 위에 얹고”예수를 타시게 했던 것이다. 이들이 먼 곳을 여행할 때 그 첫째 날은 다른 날에 비해 극히 단거리에 숙박하는 것이 통례였다.이것은 충분히 여행 준비를 했다해도 떠나온 후에 혹 잊어버리고 온 것이 있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또는 동행할 사람이 뒤에 떨어졌어도 빨리 쫓아 오도록 이렇게 했다. 이러한 풍습으로써 예수가 12세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하루를 지나 그 부모가 예수께서 같이 없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간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이 하루 걸리는 거리 곧 36km 온것이 아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루살렘 북을 향에 떠난 사람이 그 날에 숙박하는 곳은 옛날 벧엘이라는 곳이라 한다. 이 땅은 예루살렘 북방 10~12km 되는 곳으로서 불과 3시간의 거리에 지나지 못한다하며 옛부터 이 이땅을 예수의 양친이 숙박했던 곳이라고 전해 온다. 이외에도 유대인의 여행에 대한 기이한 풍습은 안식일의 노정이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1장 12절에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고 했다. 이것은 그들이 안식일에 관한 모세의 율법을 엄중히 지키려는 정신으로부터 나온 것으로서 그 거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고 대개 900m이다. 팔레스틴은 기후가 몹시 덥기 때문에 폭양에는 여행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행인들은 해뜨기 전과 해지고 난 후에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눅11:5-8)

객사=나그네의 집

여행자들이 숙박하는 객사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단순히 자신을 위해 설치한 초막으로 다만 여행자나 비나 이슬을 피하게 한 것 뿐이다.(렘9:2) 또 하나는 비교적 좋은 것으로 높이가 6m가량의 벽을 사방에 둘러 쌓고 그 주위에 다락과 같은 높은 방을 지어서 여행자가 쓰기에 편리하도록 했다. 입구에는 아취형의 문이 있다. 그 방은 다만 잠만자기 위한 곳으로서 전혀 부속 시설이 없도 음식도 여행자 자신이 휴대한 것을 먹을 뿐이다. 그러나 여행자가 병에 걸리는 때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 있는 것 같이 여관 주인이 그 사람을 맡는 풍습도 있었다.(눅10:35) 말,낙타,나귀,짐 등은 넓은 마당에 두는 것이다. 가운데 마당에는 우물이 있고 마굿간의 경우 지붕있는 마굿간을 짓는 일도 있다.보통 마굿간은 객실 아래에 짓는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구유는 동굴이 아니고 이와 같은 구유라는 말이 있다.

*팔레스틴 풍습 이모 저모 윤두혁 목사 편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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